'대머리'의 굴욕... 이 정도인줄 몰랐어요

[그건 아니죠② 부끄러운 대머리?] 제대하고 났더니 '아들' 생긴 이유

등록 2012.04.15 14:08수정 2012.04.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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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 말하겠죠? "변한게 하나도 없네" ⓒ 황주찬


할머니 : 방이 따뜻하고 좋아요.

나 : 네. 방값도 싸고... 좋네요.
할머니 : 근디, 방에서 청소하는 이는 아들이요?
나 : 예? (잠시 어색한 침묵.... 파란 하늘을 봅니다. 휴~)

17년 전 일입니다. 군대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습니다. 새학기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에도 대학 등록금이 미친 듯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지요. 만만치 않은 대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비를 줄이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선택한 방법은 자취방을 공동으로 얻는 일이었습니다. 후배와 동거하기로 하고 함께 적당한 자취방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며칠간 발품 판 덕분에 겨우 적당한 가격대 방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몸 누일 정도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방도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런 곳조차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졸업하는 선배가 조용히 이 집을 소개해줬습니다.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하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학교와 매우 가깝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게으름이 통하는 위치입니다.

후배와 간단히 끼니 때울 도구를 챙겨 그곳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지워야겠지요. 가져간 걸레를 수돗가에서 빨고 있었습니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부지런을 떨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잰걸음으로 다가옵니다.

"같이 사는 이가 아들이오?"... 복학생의 굴욕


그리고 넌지시 제게 묻습니다. 방안에서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는 후배를 고개 돌려 쳐다보더니 아들 같은데 참 똘망똘망하게 생겼답니다. 그 소리에 잠시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럼, 저는 후배의 아버지가 되는 건가요? 물론, 후배 얼굴이 젊어 보이는 건 인정합니다.

체구도 작아서 누가 보면 대학생으로 보지 않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얼굴 탱탱한 제가 어디를 봐서 후배 아버지로 보였을까요? 할머니는 정수리쪽 머리가 약간 부족한(?) 저의 뒷모습을 보고 아버지로 판단한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은 후배가 배를 잡고 뒹굽니다.

저는 자취방 할머니에게 또렷이 말했습니다. "할머니, 아들이 아니고 후배예요. 그것도 2년 후배." 상황을 이내 알아차린 할머니가 미안한 듯 말합니다.

"후배요? 나는 아들인 줄 알았소. 그런데 저 사람 참 어려 보이네."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조용히 할머니가 사라집니다.

그 뒤, 수돗가에 앉아 한참을 파란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아! '동안후배'와 자취하면 이런 상황에 부딪치는군요. 할머니의 오해를 받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제 머리카락은 정수리부터 빠지고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미 많이 빠진 상태입니다.

바람 불면 하늘하늘~ 제대하니 다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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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머릿결 친구따라 강남에 왔습니다. 저에게도 이렇게 잘 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 후 급격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 황주찬

가족들과 주변에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제 머리 모양을 보고 걱정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런 분위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잠시 이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이 더 컸지요.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만 빠질 거란 기대가 더 컸습니다. 실은 군 입대하기까지 저는 숱 많은 머리카락을 자랑했거든요.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머리카락에 여러 가지 젤과 스프레이를 바르고 넘긴 뒤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순간 말이죠. 바람 불면 손가락을 살짝 머리카락 속으로 넣고 쓰다듬어 올리면 그 흔적이 또한 참 멋스러워 보였죠. 그렇게 제 머리카락은 외모에 큰 힘을 실어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제 머리가 3년이라는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더군요. 물론 군 생활이 힘들고 고된 탓에 머리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이라 단언하진 못합니다. 분명한 건 제대하고 난 후부터 주체할 수 없이 빠졌다는 겁니다.

속절없이 제 머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을 군에서 고생한 때문이라 우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고민도 잠시, 제가 워낙 낙천적 성격이라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는데 그날 자취방 할머니가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할머니가 제 머리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워 준 거죠.

10년도 끄떡없다... 머리카락아, 좀만 더 버텨줘

그 사건이 있은 후 저는 공식적으로 '동안후배'의 아빠가 됐습니다. 물론, 온 학과에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고요. 후배와 잘 지내냐고요? 물론입니다. 끈끈한 혈연관계(?)를 맺은 덕분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통쾌한 일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동안후배는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세월에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안쓰러워하지요. 반면, 저는 얼굴이 항상 그대로라네요. 십 년 전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답니다. 그 소리에 은근 기분이 좋습니다. 젊은 시절 이미 나이든 모습을 제대로 갖춰놓은 터라 지금은 그 모습을 유지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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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머리 모양이 제 모습과 비슷합니까? 가끔은 '할아버지'로 오해받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 황주찬

다행인건 요즘 숫하게 빠지던 머리카락도 양심을 찾았는지 많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모습을 잘 다듬으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을 계속 듣겠지요? 제게도 이런 봄날이 오는군요. 한가지 걱정인 건 초등학교 갓 들어간 큰애입니다.

혹시 어린아이들 눈에 제가 큰애 할아버지로 오해 받으면 큰일이니까요. 그래서 요즘 큰아들을 만나러 갈 때면 일부러 젊어 보이는 옷을 챙겨 입지요. 구두도 가급적 피하고 산뜻한 운동화를 신습니다. 그나저나 세 아들은 나이 들면 저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뀔까요?

그럼 얼굴이 젊어 보이는 친구와는 가급적 함께 방 얻는 일을 피하라고 꼭 충고해 주렵니다. 아무래도 그런 황당한 일은 피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도 제 머리카락에 감사합니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은 아니지만 부족한 대로 추위와 더위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니까요.

내 머리 위에 다소곳이 붙어 있는 머리카락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이대로 십년만 더 버티자꾸나. 그럼 우린 그 누구보다 젊어 보일 테니까. 그리고 전국에 머리카락이 약간(?) 부족해서 고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함께 전합니다.
#대머리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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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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