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놀란 MB정권, '위장 조직' 만들었다

[진단] 불법사찰 '온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사실상 '사직동팀'

등록 2012.03.28 09:43수정 2012.04.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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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9일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검사)이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입주해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유성호

2010년 7월 9일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검사)이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입주해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유성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존재하던 '국무총리실내 조사심의관실'의 명칭을 바꾼 조직일 뿐입니다."


지난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다. 그는 특히 '국무총리실내 조사심의관실'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소리쳤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같은 조직이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민간인을 내사하고, 여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주변까지 뒤졌다. 그래서 정권 유지를 위해 운영됐던 과거의 '사직동팀'이 부활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폐지한 지 5개월 만에 부활한 '공직윤리지원관실'


공직지원관실과 비슷한 조직이 노무현 정부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영호 전 비서관이 기자회견에서 소리치며 강조했던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그것이다. 공식명칭이 '조사심의관실'이었지만 보통 '암행감찰반'으로 불렸다. '관가의 저승사자'라고 불렸을 정도로 공직사회에서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조사심의관실은 폐지됐다. 하지만 폐지 5개월 만인 지난 2008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묘한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를 강타한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달은 직후였다. 명분은 "고위 공직자 상시 감찰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원관실은 국세청·검찰·경찰 각 부처에서 파견된 20여 명으로 구성됐다가 나중에 40여 명으로 인력을 늘렸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당초 44명을 충원한다는 목표로 출발했고, 최종 42명까지 충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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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을 앞둔 지난 2007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옆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이영호 전 청와대고용노사비서관(이 후보 오른쪽)이 수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 권우성

2007년 대선을 앞둔 지난 2007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옆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이영호 전 청와대고용노사비서관(이 후보 오른쪽)이 수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 권우성

지원관에는 이인규 고용노동부 감사국장이 발탁됐다. 이 지원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서 가까운 경북 영덕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포항에서 나와 '영포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하지만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그를 발탁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 지원관은 '얼굴마담'이고 이영호 전 비서관이 '실세'라는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지원관실의 보고라인은 직제상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민정수석이다. 민간인 사찰이 벌여졌을 당시 공직기강팀장(현 공직기강비서관)은 경북 영일 출신의 이강덕 현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하지만 지원관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는 이영호 전 비서관이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이 전 비서관과 민정수석실이 심하게 갈등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비서관은 지원관실의 설치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직원들을 선발하는 데 직접 면접을 보고, 워크숍과 야유회, 회식 때에도 참석했고, 지원관실의 관용차를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직제상으로나 업무상으로 지원관실과 거리가 먼 그가 지원관실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은 그가 지원관실과 아주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은 국정원과 경찰의 정보를 꽉 틀어쥐고 '꼼짝 마라'고 한 이명박 정권의 군기반장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지원관실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비선으로 보고받아 '민정수석실 보고용'과 '직보용'으로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획총괄과에서 청와대 하명사건 처리?... 진경락 "그것은 오해"


지원관실은 기획총괄과와 점검팀으로 나뉜다. 기획총괄과는 행정지원 외에도 주요 사찰사건들을 각 팀에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 하명사건을 처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원관실의 한 직원은 지난 2010년 검찰에서 "(지원관실이) 청와대에서 하명받은 사건이 있었다"며 "기획총괄과에서 (청와대 하명사건을) 직접 챙겼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은 "기획총괄과는 인사·예산집행·서무·차량 지원 등을 하는 곳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기획총괄과에서 청와대 하명사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반박했다.


점검팀은 조사활동을 벌이는 부서로 총 7개팀이 활동하고 있었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불법사찰 사건으로 점검1팀의 활동만 드러난 상태다. 경찰 출신인 김충곤 점검1팀장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하지만 나머지 팀들도 민간인 사찰활동을 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원관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점검 1팀은 이영호 전 비서관과 강하게 연결된 곳이고 나머지 팀들은 정상적인 감찰업무를 수행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기획총괄과장이 위에서 주문을 받아 사건을 배당했다면 다른 팀들도 민간인 사찰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관실의 업무는 공직자 사기진작 지원, 공직자 고충처리 지원, 우수공무원 발굴, 공직사회 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분야 점검과 제도개선, 공직윤리 지원과 관련한 국무총리 지시사항 처리 등이다. 하지만 지원관실은 설립 직후부터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민간인 사찰에 나섰다.


점검1팀은 지난 2008년 9월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내사해 동작경찰서로 이첩했다. 이러한 민간사찰은 지난 2010년 6월 민주당의 문제제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김종익씨를 공기업 자회사 임원으로 오인하여 우발적으로 빚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을 공기업이라고 착각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결국 지난 2010년 7월 국무총리실은 지원관실을 '공직복무관리관실'로 이름을 바꾸고 조사활동을 벌였던 점검팀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이인규 전 지원관의 후임으로 경남 마산 출신의 류충렬 당시 일반행정 정책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장)을 공직복무관리관에 발탁했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마련한 5000만 원을 장진수 주무관에게 건넸다고 지목된 인물이다.


"참여정부 때 심의관실 폐지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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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당시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26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 스튜디오에서 진행자인 김종배 시사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010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당시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26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 스튜디오에서 진행자인 김종배 시사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참여정부 때에는 청와대 민정2비서관실과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에서 고위공직자 암행감찰을 맡았다. 그런데 심의관실이 민간인 차적을 조회한 사실 등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내부에서도 '조사심의관실 폐지론'이 나왔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심의관실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조사를 하다 문제가 된 적이 있어 2006년 중후반엔가 심의관실 폐지를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심의관실 기능을 대신할 조직이 마땅치 않아서 '심의관실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조건으로 존치시켰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심의관실은 조사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서 그쳤다"며 "각 부처의 감찰실이나 감사관실을 통해 '이런 첩보가 있으니 조사해 보고하라'는 소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심의관실이나 지원관실은 총리실 소속이면서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다"며 "특히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해야 힘이 생기기 때문에 청와대라는 타이틀을 활용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한 조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지원관실은 민간인을 내사하고, 소장파 여당 의원들의 주변을 캐고 다녔다. 심지어 대기업 회장들의 동향정보까지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암행감찰을 벌여야 할 지원관실이 민간영역까지 발을 넓힌 것이다. 이를 두고 "촛불집회에 놀란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사직동팀을 부활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2년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로 출발한 사직동팀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처리하던 조직이었다. 공식명칭는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였다.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안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서 '사직동팀'으로 불렸다. 주로 대통령 친인척, 고위공직자 등과 관련된 비위첩보를 수집했다. 형식상 경찰청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직할조직이었다. 하지만 권력남용의 문제점 등이 드러나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해체됐다.


그런데 그렇게 해체됐던 사직동팀을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시켰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촛불정국으로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 정부가 '지원관실 설치'라는 편법을 통해 사실상 사직동팀을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5일자 <한겨레>에 보도된 한 사정당국 관계자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지원관실이 청와대 명을 받아 움직였던 사찰조직이 맞는 것 같다.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 직제도 시선을 덜 받는 국무총리실로 빼놓아 위장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직 지원관실 인사는 "참여정부의 심의관실처럼 자체적으로 공직기강 확립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감찰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조직"이라며 "하지만 위에서 주문을 받아 일을 했다는 점에서 사직동팀의 부활이라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권 차원에서) 처음부터 완전한 사직동팀의 부활을 계획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동안 사직동팀을 이끄는 수사과장은 주로 대통령의 동향 출신이 맡았다. 지원관실의 핵심인사들도 현 정권 최대 인맥인 '영포라인'이었다. 이인규 전 지원관은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김충곤 전 점검1팀장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여기에다 지원관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이영호 전 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도 경북 포항 출신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지원관실 예산은 참여정부의 심의관실보다 훨씬 많았다. 심의관실은 연 4억7000만원이었지만 지원관실은 연 8억5000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많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직동팀 #이인규 #이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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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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