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합격자들 각양각색의 얼굴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치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등록 2012.04.02 11:35수정 2012.04.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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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그룹 출신 멤버 한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 SM엔터테인먼트


걸 그룹 출신 '신비'의 맴버 중 한명인 유나 양이 최근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화제입니다. 네티즌들의 반응 또한 '가수출신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멋지다' '연예인도 이런 경우가 있다니!' 등의 칭찬 글과 그녀의 새로운 변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비'의 맴버 중 니모(오상은) 양은 모 언론사를 통해 "유나가(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알려지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우리도 당황스럽다"며 "그가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어 택한 길이었기에 많이 속상해하고 있다, 지나친 관심을 자제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골서 학교를 졸업한 게 불이익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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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출신 세 자매가 사법고시 합격 보도자료, 4페이지 분량입니다. ⓒ 신광태


2010년 저는 한 건의 보도자료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한 가정에서 딸 셋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큰 딸로 가장 먼저 사법고시에 합격한 큰언니 이미경씨(가명)에게 전화를 걸어 넷째와 다섯째 동생의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었습니다.

'이씨 아버지는 1990년대 초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님 홀로 딸 다섯 명을 교육 시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자식들 교육을 시킨 결과 1997년 큰딸인 이미경씨가 그 어렵다던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아버지의 타계 후 5년만의 경사라 기쁨은 그만큼 더 컸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고생과 큰언니의 성공은 동생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막내가, 2년 뒤에는 넷째가 사법고사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것이 당시 취재를 통해 쓴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도자료를 쓴 그날 오후, 큰언니인 이씨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동생들의 출신지와 출신 중·고등학교 이름을 (이미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에서) 빼달라는 것과 아버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고생하시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는 사실도 삭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동생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요청에 대해 당시 화천군 부군수였던 최광철(현 강원도청 기획관)씨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얼마 전 시골 어느 한 가정에서 3명의 자매가 산촌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의 강한 요구에 따라 몇 시간 후에 인터넷 보도가 중단됐습니다. 그 이유는 보도내용 중에 학창 시절에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는 내용과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적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다는 것이 성인이 돼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또 시골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출세가도에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까요.

그동안 우리는 주변에서 선배나 동료들이 어려운 환경속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큰일을 성취하는 것을 부러워했고, 또 그것이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이런 '성공담'은 의례히 혹독한 시련을 수반해야 하고 그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가치관도 변한 것 같습니다. 현재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고시패스의 성취감이 지난 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구질구질했던 흔적으로 인해 훼손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렇다면 성공한 젊은이의 시각에는 현재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발버둥치는 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궁금합니다."

늘 초라한 어머님 모습, 부끄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게 어머님은 늘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아버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을 꾸리시느라 땟국물 흐르는 얼굴, 농촌에서 일하던 모습 그대로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느닷없이 어머님이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애가 4학년이 되도록 학교(담임)를 찾지 않는다는 건 부모된 도리가 아니다'고 생각하신 어머님은 햇살 때문에 교실안의 아들 모습을 확인할 수 없으셨는지, 손을 창문에 대시고 연신 교실 안을 두리번거리셨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신 선생님께서 창문을 여시고 "누구를 찾으세요?"라고 묻는 순간 어머님은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이들 보기 창피하니 제발 돌아 가주세요'라는 내 눈빛을 읽기라도 하셨던지, "내가 잘못 찾은 것 같네요"라고 선생님께 말씀을 하시며 돌아가시는 어머님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작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엄마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아까 왜 왔었어!"라는 철부지 아들 투정에도 "밥은 먹었니?"라며 당신을 창피해 하던 놈을 걱정해 주시던 어머님.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메어지는 아픈 추억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때 정말 잘못 했습니다"라는 말씀을 왜 못 드렸을까요.

가난이 치부라고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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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립 변호사, 그가 쓴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란 수기는 많을 고시 준비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 MBC스페셜


옛날 고시 공부하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필독서가 있었습니다. <어머님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등의 책은 고시생들에게 법 과목 외에 또 하나의 필독 도서였습니다. 어렵게 고시에 패스한 선배들의 수기를 접하며 때로는 용기와 위로를, 때로는 본인이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돼 합격한 듯한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인이 책속의 주인공보다 환경이 훨씬 낫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다잡아 단숨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던 시기였습니다.

지난해 한 방송사에서 '개천에서 용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냈습니다. 출연자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환경에서 고시를 합격했거나 자수성가해서 지금은 사회적 저명인사로 활동 중인 모습을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연자 모두 한결같이 과거 어려웠던 시절이 본인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상업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했던 이야기며, 법서를 살 돈이 없어서 영세민 취로사업장에 다니며 막노동을 하던 일 등을 대통령이 돼서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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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가난 때문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 MBC스페셜


당신의 이력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친구의 자수성가 사연을 기사화한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 개구리도 용이 될 수 있더라 - 소 판돈 100만원으로 일궈낸 어느 촌놈의 성공신화). 성공하기까지의 고난과 좌절 그리고 재기의 반복. '그렇다 보니까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능력과 종업원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생기더라'는 그의 말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 덕분에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릴 수 지혜를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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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시 합격자의 방 서재 한켠 시험을 합격 했어도 책들을 버리지 못하는 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각오 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신광태


그러면 이번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유나 양은 대체 무엇이 그렇게 당황스럽고 속상하단 말일까요. 네티즌들의 관심에 대한 부담일까요, 아니면 과거 자신의 가수의 이력이 본인의 출세가도에 방해가 된다는 말일까요.

어떤 연예인의 사법고시 합격과정은 세인의 관심을 모을 정도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것(합격)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한 일이기에 더 값지고 충분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 가수였다는 경력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말이라면 그 숭고한 가치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일입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세 자매들처럼 어린 시절, 촌 동네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엘리트 집단에서 도태된다는 생각과 비슷한 경우가 아니길 바랍니다. 자신의 과거 가난한 환경 때문에 국내 최고의 인권변호사가 된 어떤 사람의 경우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지난 이력일지도 모릅니다.
#사법고시 #유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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