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움튼 새싹을 보며 자연을 배운다

군데군데 싹이 터 희망을 바라본다

등록 2012.04.21 17:54수정 2012.04.2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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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사롭다. 일 년 중 이렇게 좋은 날이 며칠이나 될까. 날이 참 맑다. 완연한 봄날이다.


늘 해 떨어진 뒤에야 집에 오는 아내가 모처럼만에 일찍 퇴근하였다. 마당에 핀 하얀 목련꽃을 보고 호들갑이다.

"어! 목련꽃이 활짝 피었네! 참 예쁘다! 그런데 꽃잎이 죄다 한쪽으로 인사를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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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꽃봉우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순백의 꽃잎이 참 아름답다. ⓒ 전갑남


그러고 보니 목련 꽃봉오리가 예사롭지 않다. 아내는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순백의 꽃잎들이 한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다. 마치 차렷 구령에 맞춰 모두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조화가 있는 건가?' 알다가다 모를 자연의 심리가 궁금하다.

새싹은 희망이다

목련은 겨울에 모진 추위를 견디려고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눈으로 버티었다. 그러다 따스한 봄기운에 기운을 차려 눈에서 잎이 자라고, 꽃을 피워낸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생명을 이어가는 경이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봄기운에 기지개를 펴는 게 어디 나무들뿐이랴! 새봄과 함께 온갖 잡풀들도 돋아났다. 어떤 녀석은 어느새 꽃이 피었다. 밭둑에 핀 냉이꽃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린다. 돋아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하얀 꽃을 피웠다. 노랑 민들레도 화사한 얼굴을 들어냈다.

마당에 듬성듬성 자란 제비꽃도 나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몇 년 전 습작으로 쓴 <제비꽃> 글 한 편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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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의 제비꽃.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박하다. ⓒ 전갑남


마당 가장자리에 보라색이 눈에 띕니다.
군데군데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이 슬쩍 건드린 걸까요?
가느다란 허리를 자꾸 흔들어댑니다.
춤추는 꽃이 예쁩니다.

새싹이 자라 클 땐 무슨 풀인가 했지요.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꽃이 피고 나서야 제비꽃인 줄 알았습니다.
밟고 지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비꽃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꽃잎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들려주는 듯싶습니다.
겸손하고 고운 마음이 전해집니다.
양보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라 합니다.

햇살 좋은 봄날,
아내는 소녀처럼 머리에 제비꽃을 달고선 예쁘지 않느냐고 하네요.

- 전갑남의 <제비꽃> 전부

자연이 만들어낸 새싹에서 작은 지혜를 배운다. 또 새싹을 보며 사람들은 꿈을 키운다.

밭에 뿌린 씨앗에도 새 생명이…

"여보, 우리 밭에 심은 것들은 싹 안 나?"
"싹? 나지!"
"내 눈엔 하나도 안 보이는데…."
"건성으로 보면 뭐가 보여?"
"감자싹 묻은 지, 한 보름 남짓 되지 않았나요?"
"가물면 좀 늦지만, 지금 삐죽삐죽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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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월 초순 이웃 어르신들과 함께 씨감자를 심었다. ⓒ 전갑남


아내가 내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감자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밭이랑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뭔가를 발견한 듯 말을 꺼낸다.

"그러고 보니 땅이 뜰썩뜰썩해요. 순이 올라와요! 녀석들 소리 소문이나 좀 내지!"
"땅 벌어진 거가 소문이지, 뭐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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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뚫고 올라온 감자싹. 신비함이 느껴진다. ⓒ 전갑남


아내의 얼굴에 기쁨이 감돈다. 소중한 게 올라온다는 사실과 또 거기서 기대하는 게 있다는 것이 기쁨으로 다가오는 듯싶다.

무거운 짐을 이겨내며 고개를 쳐든 여리디 어린싹이 참 대견해 보인다. 바짝 힘을 쓴 곳엔 흙이 갈라지고,  벌써 빠끔이 고개를 내민 싹도 있다. 어떻게 연약한 싹이 무거운 흙을 뚫고 올라오는 것일까. 생명의 싹이 튼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웃집아저씨가 우리 밭에 둘러보러 왔다. 씨감자를 묻을 때 일을 도와준지라 아저씨도 우리 감자밭이 궁금한 모양이다.

"잘 올라오네요! 작물은 거짓말을 안 하고, 진득이 기다리면 때를 맞춰 올라오게 되어 있어! 올핸 감자 꽤나 캐겠는 걸!"

자연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맞춰주고 순리대로 지켜보면, 사람에게 반드시 거짓 없이 보답한다는 말을 곁들인다.

2주전에 씨감자를 땅에 묻었다. 좀 더디게 싹이 올라오나 싶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아 기쁨이 크다.

군데군데 올라오는 봄의 향기

아저씨와 우리 부부는 밭을 둘러본다. 씨를 뿌린 곳을 둘러보는 모습에 기대가 섞여있다.

10여일 지난 완두콩도 어린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참 신기하다. 쭈글쭈글 마른 씨가 땅속 물기를 머금고 불어서 싹을 틔우는 이치가 놀랍다. 세상 밖으로 생명을 내민 어린 녀석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아내와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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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의 어린 싹이다. 녀석들은 지주를 세워주면 몸을 지탱하며 자란다. ⓒ 전갑남


"아저씨, 요놈들 언제나 자라 제구실을 할까요?"
"걱정 마세요. 때가 되면 다 제몫을 할 테니까요."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처음 싹은 가냘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제몫을 하게 마련이란다.

완두콩은 자라면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큰다. 팔을 벌릴 때 지주를 세워주면 몸을 일으켜 감고 올라간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에는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어린싹은 소중히 돌보고 북을 돋우어주면 나중에 반드시 제몫을 한다. 세상사는 사람들도 자연에서 배운 지혜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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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어린 새싹들이 자라났다. ⓒ 전갑남


아내는 상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밭에서도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연신 즐거워한다. 그리고 기분 좋게 말을 건넨다.

"여보, 아저씨랑 막걸리 한 잔 하시지? 첫물부추 베다 전 부칠게요!"
#봄 #제비꽃 #목련 #감자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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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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