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과 나무토막, 자연의 위대함 보여줘

등록 2012.04.30 08:40수정 2012.04.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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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지리산 폭우때 한 생명이 이곳까지 밀려왔습니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맨 처음 사용했던 사천해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 김동수


1998년 7월 31일, 장마가 끝나면서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국립공원 지리산 계곡에는 온 나라에서 온 피서객들도 가득했습니다. 지리산 계곡 물은 콘크리트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을 찰나에 씻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장마는 끝났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게릴라성 폭우가 31일 밤 10시부터 8월 1일 새벽 2시 사이에 하늘이 뚫린듯 내렸습니다. 그날 밤 내린 비는 약 300mm였습니다. 지리산 계곡은 한순간 아비규환이 되어버렸습니다. 인명 피해는 대원사계곡 23명(사망22, 실종1)을 포함해 90여 명이 넘었습니다.

1998년 지리산 홍수, 그 작은 흔적

14년 전 일어난 아픈 사건을 반추한 이유는 당시 희생자 한 사람이 고향 앞바다까지 떠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자는 지리산-경호강-남강-진양호-가야천-사천만까지 긴 거리를 떠 내려왔습니다. 아직도 그때 그 일이 생생합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고향 앞바다에 설 때마다 마음 한켠이 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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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때는 닫히고, 썰물때는 열리는 '수문'입니다. ⓒ 김동수


14년 만에 방파제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때는 자가용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형버스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 28일(토요일) 모판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방파제에 작은 '수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수문은 밀물을 때는 닫혀 바닷물이 방파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썰물 때는 조금 열려 방파제 안 민물이 밀려나옵니다.

수문,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 다칩니다


보기는 엉성하게 보여도 조금만 빈틈이 있으면 바닷물이 방파제 안 논으로 들어가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벼가 다 죽습니다. 이곳 수문은 아니지만 동네 다른 수문에 문제가 생겨 바닷물이 논에 들어가는 바람에 지난해 벼 농사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수문을 만만하게보다가 큰 코 다친 것입니다. 수문을 만든 건설업체가 농민들에게 톡톡한 보상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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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과 민물이 오가는 물길 ⓒ 김동수


바닷물이 들고, 민물이 나는 작은 물길을 볼 때마다 신비로운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합니다. 짧고, 얕은 물길이지만 밀물과 썰물은 지구와 달의 오묘한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와 태평양을 통해서만 자연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몇 십 미터 물길도 인간의 그 어떤 힘보다도 위대합니다. 사람 손길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물길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물길·돌층(흙층?)·나무, 자연의 위대함 보여줘

물길만 아니라 층층이 쌓인 돌(흙?)도 '나보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한 층, 한 층 쌓일 때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79.1세(남자 76세, 여자 82세)입니다. 의학이 발전되면 120살까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구약 창세기에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만큼 살아도 인간은 겹겹이 쌓인 저 시간만큼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데 교만을 달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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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돌들이 층층이 쌓여있습니다. ⓒ 김동수


이뿐 아닙니다. 나무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한 번은 빗물에 한 번은 바닷물에 씻기고 씻기다가 희게 변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비록 돌만큼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보다는 더 지났을 것 같습니다. 보면 이들은 흐르는 시간에 자기를 맡깁니다. 시간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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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가 오랜 시간동안 한 번은 빗물에 한 번은 바닷물에 씻기고 씻기다고 희게 변했습니다. ⓒ 김동수


물길 주위에 돌덩이들이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굴이 붙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를 석화라고 했습니다. 돌에 핀 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은 양식을 하기 때문에 석화는 생산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이 굴을 따 돌판 위에 구워 먹었습니다.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피자와 치킨이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이 주는 맛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만든 인공 조미료가 전혀 없는 굴과 돌판 그리고 불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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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붙은 굴(석화) ⓒ 김동수



굴도 만났고, 나무토막도 만났고, 달과 지구가 빚은 물길을 만났는데 바랐던 게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잠을 자는 것 같습니다. 그럼 게는 잠꾸러기입니다. 우리 동네 앞바다는 처럼 다양한 이들이 함께 동무가 되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참 아름답고 생명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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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게'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 김동수


#수문 #방파제 #사천만 #석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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