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구부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예요

경직성 뇌성마비에도 물리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밝음이

등록 2012.04.29 20:03수정 2012.04.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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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받는 중 새끼손가락 물리치료 중 ⓒ 고기복

운동하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꺾이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뼈를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금방 낫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사나흘 정도 계속해서 물리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했었습니다. 보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새끼손가락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새끼손가락이 어딘가에 닿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손이 붓고 통증이 심해서 책상 위에 가만히 손을 얹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들고 오는 결재 서류에 서명하는 것도 힘들 때가 있었고, 몇 번인가 식사 시간에 들고 있던 젓가락이 힘없이 떨어져 민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가 의식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다쳤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도 통증이 크지 않았습니다. 사실 독수리 타법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자판을 두드릴 때 열 손가락을 다 쓰지 않는 처지라 새끼손가락을 쓰지 않는다 해도 크게 문젯거리가 될 게 없었습니다. 지금은 처음 다쳤을 때와는 달리 붓기가 가라앉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검게 들었던 멍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새끼손가락을 완전히 구부릴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구부려 보려고 왼손으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살짝 누르면 심한 통증이 찾아옵니다. 여전히 세수할 때마다 다섯 손가락을 모아 물을 떠 올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손가락이 모이지가 않고 구부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악수를 청하면 오른손을 받쳐서 살짝 잡도록 유도하지만, 내 뜻과는 달리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악' 소리가 나며 저절로 무릎이 굽혀집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세월이 약이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손가락을 다 구부릴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기대하며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보름이 넘도록 물리치료를 받으며 드는 걱정은 '혹시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친 엄살일지 모르지만, 2주 동안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걱정이 들더군요.

고작 새끼손가락 하나가 구부려지지 않는 것도 이토록 불편한데, 온몸이 굳는 고통은 어떨까요?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는 부모 마음은 또 어떨까요? 여기 온몸이 굳어가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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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이 모녀 5세인 밝음이는 발달지연으로 아직까지 스스로 서거나 걷지 못한다. 현재 경직성 뇌성마비와 간질 증상이 있고 시력상실 위기에 처해 있다. 물리치료를 통해 마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 고기복

온몸이 굳어가는 밝음이

'밝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챌맥은 5살배기 몽골 아이입니다.

밝음이는 중증의 경직성 뇌성마비로 양쪽 다리가 점점 굳어가고 있어서 스스로 서거나 걷기가 불가능합니다. 병원에서는 적극적인 재활치료와 약물치료를 주기적으로 하면 뻣뻣한 다리가 다소간 풀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밝음이는 물리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밝음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엄마는 요즘 밝음이 걱정, 아빠 걱정으로 한숨만 늘어갑니다.

밝음이가 걸을 수만 있다면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딸을 치료해 주고자 했던 아빠는 살고 있던 아파트와 차를 팔고 군 복무 중에 장기 휴가를 신청하여 2010년 7월에 한국에 왔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다 돼 갈 즈음에 군대에서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은 아빠는 몽골로 혼자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몽골에 돌아간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빠가 근무했던 부대에서는 아빠가 군무이탈로 불명예제대를 했다고 했습니다. 주위에선 아빠가 밝음이와 엄마를 떠나고 싶어서 연락을 끊었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연락이 끊긴 아빠가 걱정입니다. 아빠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신장이 아팠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산, 저체중으로 태어날 때부터 발달 지연이 있었던 밝음이는 현재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간단한 물리치료와 진단을 받기조차 어렵습니다.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아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밝음이 때문에 달리 움직일 수가 없는 엄마는 지하방에서 신장투석을 받는 몽골인 환자를 돌보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하방에서 힘겹게 생활하지만, 엄마는 밝음이가 환한 세상을 스스로 걷는 날이 있기를 바라며 날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밝음이가 물리치료라도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몸이 굳는 것을 막아 주세요. 눈 수술을 빨리 받게 해 주세요. 환한 세상을 스스로 걷는 날이 빨리 오게 해 주세요."

덧붙이는 글 | 밝음이를 후원하실 분은 http://happylog.naver.com/smwcdhildren/rdona/H000000065580에서 모금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밝음이를 후원하실 분은 http://happylog.naver.com/smwcdhildren/rdona/H000000065580에서 모금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경직성 뇌성마비 #물리치료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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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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