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에서 보는 미사는 어떨까?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기

등록 2012.05.08 10:58수정 2012.05.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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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특히 쉬는 날이 많았다. 성 주간(Semana Santa) 동안에도 쉬고, 그 이후에도 무슨 무슨 성자의 날이 계속되었다. 4월 23일은 성 조지의 날(San Jorge Martir)이라고 또 어학원을 쉬게 되었다.

 

3월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보였다. 그런데, 4월이 되더니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이미지는 어디 가고 여기 살라망카에는 매일매일 비가 온다. 바람도 워낙 많이 불어서 사람들은 다 겨울코트를 입고 다닌다.

 

스페인으로 올 때, "그래 '태양의 나라'에서 무슨 코트람"하며 챙길까 말까 했던 겨울옷들을 다 프랑스에 놔두고 온 바람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바짝 움츠려 종종걸음을 하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강 주변을 조깅한다는 처음의 다짐도 한 달 내내 부는 비바람에 처참히 무너졌다.

 

날씨가 이런 탓에 여행을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마침 4월 23일 월요일과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 남부로의 여행 패키지가 있어서 옳거니 하고 신청했다. 3일 동안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코르도바(Cordoba)와 그라나다(Granada)를 가는 패키지였다. 어찌 보면 일정이 빡빡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버스로 살라망카에서 코르도바에 가는 시간이 8시간(516km)인 걸 고려하면 그리 만만하지도 않은 일정이다.

 

출발 날, 부지런히 일어나 새벽 6시에 약속장소에 다들 모였다. 관광버스에 올라타니 웬걸, 같은 어학원을 다니고 있는 내 중국 친구와 나를 제외하고는 평균 연령 60세 정도의 스페인 연장자분들 사십여 분 정도가 버스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올 거라는 기대에 그 이른 아침에 화장까지 하고 왔는데…, 알고 보니 마을 단위로 부부를 모아 단체로 오신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지라 버스가 출발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벌써 첫 번째 휴게소.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아시아 여학생 둘이서 버벅 거리는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것이 신기하셨는지 먼저 말을 걸어 오셨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시고, 자기들도 오늘 일찍 일어났는데 왜 우리들만 자느라 정신이 없냐며 장난을 치신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부슬부슬 오던 비도 그치고 따듯한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가이드분의 마이크소리에 잠을 깼다. 주변을 돌아보니 오던 비는 그치고 하늘에는 구름이 줄지어 있다. 첫 번째 종착지는 코르도바였다. 도시에 가까워지니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9세기에 이슬람 세력에 정복되었던 코르도바는 그 당시의 이슬람 사원을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이런 덕분에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세비아, 말라가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코르도바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곳은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질러 보이는 로마교(Puente Romano) 앞이었다. 고대 로마시대에 지어진 이 다리는 1953년에 산 라파엘 다리(Puente de San Rafael)가 지어지기 전까지 20세기 동안 코르도바의 유일한 다리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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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를 건너서 보이는 곳은 메스키타. 코르도바는 스페인 안의 이슬람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 이주리

로마교를 건너서 보이는 곳은 메스키타. 코르도바는 스페인 안의 이슬람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 이주리

다리 넘어서는 9세기 이슬람 왕국의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Mezquita)가 보인다. 여행 가기 전에 내가 코르도바를 여행한다는 말을 들은 스페인 선생님이 흥분하시며 'maravillosa'하다고 말하셨던 바로 그곳이다. 그때까지 'maravilloso/a'의 뜻을 몰랐는데 선생님이 이 메스키타를 설명하면서 열 번도 더 말하셔서 찾아보니 '경이적인, 굉장한, 훌륭한'이라는 형용사였다.

 

코르도바에는 반나절만 있기 때문에 서둘러 메스키타로 발길을 옮겼다. 메스키타의 외부는 약한 재료로 지어져서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렌지 나무 파티오(patio de los naranjos)를 지나야 하는데, 15세기에 야자나무들을 오렌지 나무들로 바꾸어 심은 게 이 이름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파티오는 스페인식 정원, 안뜰을 뜻하는데, 사실 스페인식 파티오는 이 모스크가 건설되고 확장된 8, 9세기에는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스크 안에 파티오가 있는 이유는 칼리프 주권 시절에는 이 파티오가 'Patio de las Abluciones'라고 불렸다는 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Ablucion'은 세정식을 의미한다. 파티오 중간 있는 분수에서 당시에 신도들이 모스크 안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는 세정의식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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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세정하기위해 사용 되었던 분수와 모스크 탑. ⓒ 이주리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세정하기위해 사용 되었던 분수와 모스크 탑. ⓒ 이주리

메스키타의 입구 옆에는 하늘로 높게 뻗은 탑이 있다. 이슬람 세력이 코르도바를 지배했던 그 시절에는 저 탑에서도 하루에 다섯 번씩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알라는 위대하도다'라는 뜻)'로 시작하는 아단 소리가 코르도바에 울려 퍼졌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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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의 내부.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눈을 땔 수가 없다. ⓒ 이주리

메스키타의 내부.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눈을 땔 수가 없다. ⓒ 이주리

사원 안을 들어가자마자 흰색과 적색의 아치가 눈길을 끈다. 아치의 기둥은 85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사원은 785년 건설을 시작하여, 확장을 거듭한 끝에 10세기에는 2만5000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되었다. 그 시절에는 이 지방에 이슬람 사원이 천 개도 넘게 있었다니, 모든 모스크를 가득 채웠을 질레바를 입은 신도들을 상상하니 그때 번창했을 이슬람 문화가 조금이나마 느껴진다.

 

사실 언어에서 또한 800년간의 이슬람 세력의 지배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스페인어에서 'al(아랍어의 정관사)'로 시작되는 단어는 거의 아랍어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랍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1300개도 넘는다고 한다.

 

아치와 기둥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사원 내부를 걸어 다니다 위를 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가만 보니 달려있는 조명에 십자가 모양이 보인다. "분명히 여기는 모스크인데?"

 

이 사연은 1236년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를 점령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이슬람 세력에 밀렸던 그리스도교 신앙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이슬람 세력의 지배로 끊겼던 그리스도교의 맥을 다시 잇기 위해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고, 카를로스 5세 때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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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안의 그리스도교 식의 예배당. 현재는 대성당으로 미사가 열린다. ⓒ 이주리

메스키타안의 그리스도교 식의 예배당. 현재는 대성당으로 미사가 열린다. ⓒ 이주리

사원 중심부로 가면 그 예배당을 볼 수 있는데, 어떤 대성당의 내부보다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현재 메스키타의 공식 명칭은 코르도바 대성당(La Catedral de Cordoba)이고, 지금은 대성당만의 역할을 하여 여기서 미사가 열린다. 미사 시간표는 사원의 출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슬람 사원에서 지내는 미사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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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욎미다.
#코르도바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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