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술 해달라던 자폐아... 이젠 달라졌습니다

기타와 함께 새로운 삶 시작한 이상헌군... 그 뒤엔 엄마의 헌신

등록 2012.05.09 11:41수정 2012.05.0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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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모로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또 고단한 일일까. 여기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자폐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있다. 지난 22년간 사랑과 헌신으로 키운 아들, 이상헌(22)군은 지난해 평택대학교 클래식기타학과에 진학해 지금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다.


지난 5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어머니, 김경식(50)씨를 만나 그녀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아래 기사는 김경식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한 것).

"내 아이가 설마...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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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경식씨와 아들 상헌이 자폐 극복하고 예비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는 상헌이. ⓒ 박영미


지난 1993년의 어느 날, 김경식씨가 친정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상헌이가 왜 이렇게 말이 느리지?"
"얘야, 너도 옛날에 말 늦게 배웠단다."

김경식씨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때 상헌이 나이는 세 살. 김경식씨는 큰 딸과 다르게 말문이 늦게 트이는 상헌이를 걱정했지만,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종류의 물건을 질서정연하게 세워 놓는(자폐아 초기 증상) 상헌이가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다고.


그러나 상헌이의 상태는 유치원에 가서도 여전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흙놀이만 했다. 김경식씨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아동전문상담소로 갔다. 그곳에는 뇌병변장애 등 신체장애를 지니고 있는 장애아동들이 상담 대기 중이었다.

'신체 멀쩡한 내 아이가 이런 곳에 오다니...'

부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상담소에서 뛰쳐나왔다. '내 아이가 설마... 아니야, 아니야, 절대 그럴 일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버틴 몇 달. 갈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던 부부는 소아정신과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 '자폐아'라는 병명을 들은 부부는 이 병이 잘만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지하게도.

하지만, 김경식씨 부부는 '자폐아'라는 병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좌절했다. 아이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며 김경식씨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는 받아들이자. 그래야 산다'라며.

상헌이의 그림자 돼 살아온 삶

김경식씨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상헌이를 바라보는 것보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가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모든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 먼저 말했다. "우리 애가 자폐아"라고.

여덟 살까지 말문을 열지 못했던 아이는 부모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성장했다. 아빠는 매일 같이 상헌이를 산에 데리고 다녔고, 동물을 키웠다. 토끼, 닭, 뱀, 강아지 등을 키우며 집 안팎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매일 새로운 것들을 경험시키며 상헌이의 변화를 감지했다.

김경식씨 부부는 상헌이를 한 해 늦게 학교에 보냈다. 주변에서는 특수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김경식씨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상헌이가 정말 세상과 단절된 채 살 것만 같았다. 어렵사리 일반 학교에 진학한 상헌이를 위해 김경식씨는 매일 같이 학교에 갔다. 그녀는 입학을 허가해준 학교 측과 담임 선생님이 고마워 학교 청소를 자처했다. 상헌이의 나름 평탄한(?) 학교생활은 초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상헌이의 최대 시련은 중학교 때 찾아왔다. 상헌이는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했다. 오죽했으면 아이는 "뇌수술을 해달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 장애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그때 김경식씨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멍이 새겨졌다고 한다. 당시 김경식씨는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을까'라며 한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한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상헌이는 김경식씨의 유일한 낙이자 위로였다고.

다양한 경험이 빚어낸 선물... 기타를 만나다

상헌이 때문에 장사도, 직업도 수차례 바꾼 부부는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끊임없이 시도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과외를 했다. 사람들이 가르쳐서 뭐하냐고 했지만 일반 학교에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상헌이는 택견, 태권도, 레고 닥터도 각각 2~3년씩 배웠다. 나중에는 한자국가공인 3급,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도 땄다. 김경식씨는 일하러 나갈 때면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종이접기 책을 건넸다. 그후 종이접기 1급에서 3급까지 모두 섭렵한 아이에게 십자수를 건넸다. 이 또한 잘 따라왔다.

다음으로 김경식씨가 건넨 건 기타였다. 그때 상헌이의 나이가 15살. 첫 번째 학원에서는 한 달 만에 퇴짜를 맞았다. 정서 불안이 원인이었다. 기타를 포기하려던 찰나 상헌이는 한동현(미가엘음악학원 원장)씨를 만났다. 이전부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학생을 가르쳤던 한 원장은 흔쾌히 상헌이를 받아줬다.

상헌이는 처음 음계를 익히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불안 증세는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비장애 학생이 두어 달 걸리는 연주곡을 상헌이는 일주일 만에 외워서 연주했다. 심지어 평택에서 열린 전국 음악콩쿠르에서 전체 2등을 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정도의 집중력과 실력이라면 대학 진학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한 원장은 평택대 클래식기타학과에 '수시 1등'이라는 성적으로 상헌이를 진학시켰다. 당시 입학전형에서 상헌이는 비장애인 학생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했다. 그렇게 상헌이는 운명처럼 기타를 만났고, 그 기타와 함께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네가 있어 행복을 알게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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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로망스를 치는 상헌이 자폐를 앓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다. ⓒ 박영미

당당히 음대생이 된 상헌이는 현재 기숙사에서 홀로 생활한다. 혼자 버스도 타고, 체크카드도 사용하며, 매끼 식사도 사먹는다. 가끔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있지만 지난 세월과 비교해 보면 큰 발전이자 성장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군산에 내려오는 상헌이는 이제 김경식씨의 보람이자 자랑이다. 한동현 원장과의 인연도 여전하다.

매주 토요일 개인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가다듬고 있다. 상헌이는 이 와중에 음반도 발매했다. 음반에는 <사랑의 로망스> <카바티나> 등 총 7곡이 수록돼 있다.

이 음반은 상헌이를 알리고, 후원금을 모으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는 김경식씨는 넉넉치 않은 형편에 고가의 기타를 구입하려면 후원금이 절실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아직 기타를 구입하려면 멀었지만,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 상헌이는 저에게 너무 큰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헌이는 제게 감사의 대상이자 행복의 원천입니다."

상헌이 덕분에 낮은 곳에 눈뜨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다는 김경식씨. 그녀에게 바람이 있다면 두 가지다. 아들 상헌이가 비장애인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과 기쁨과 감동을 주는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자폐아들을 둔 한 엄마의 고백은 진솔했다. 그리고 상헌이의 기타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상헌이의 엄마, 김경식씨는 매순간 이렇게 되뇐다고 한다.

"상헌아, (수많은 장애가 너의 앞에 드리워진다고 해도) 그래도 사랑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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