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꽃' 피우며 귀농꿈 영그는 산골마을

[탐방여행-명덕마을①] 남덕유 아래 육십령고개 생태촌에 사는 귀농인

등록 2012.05.09 11:49수정 2012.05.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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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 실패로 '디지털 문맹'으로 전락할 뻔 했던 여행. 칠흑 같은 밤 찾아온 전희식 추진위원의 '고물로 지은 궁궐' 앞 밤풍경. ⓒ 최방식



남덕유의 청정 육십령고개 아래 나무와 풀, 산과 들, 그리고 바람을 도반삼아 사는 이가 있습니다. 거기 어머니와 함께 '똥꽃'을 피우며 사는 이죠. 농업인, 시골사람, 귀촌·귀농인, 아니면 뭐~ 우주인이라 불러도 좋고요. 분명, '밝은나라'에서 왔거나 그런 세상을 찾는 이죠. 지난 주말 잠깐 들러 엿본 건 그의 '용기'였습니다.

긴 하품과 함께 잠깐의 '춘곤증 터널'을 막 벗어난 시골 꼬마. 땟구정물에 얼룩진 밥풀떼기 묻은 볼록한 아랫배를 박박 긁으며 막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만화책 한 권이 툭 떨어집니다. '붉은 여왕' 궁궐 어딘가를 헤매다 잠에 빠졌었나 봅니다. 웬 조화람. 토끼굴을 막 벗어나는 꿈을 꿨으니. "밥 먹어" 소리에 꼬마는 안방으로 건너가며 '이상한 나라 앨리스', 그 꿈과 현실의 부조화에 머리를 세차게 한 번 흔듭니다.

청정자연 속 밝고 맑은 삶을 동경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허용돼 있죠. 하지만 모두가 누리는 건 아닌가봅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 선택할 수 있기에. 그러니까, '여행생활협동조합'(이하 여행생협) 추진위원 몇이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를 찾은 건 그 용기를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전희식(54, 남)씨가 주인공. 6년여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에 터를 닦았는데, 추진위 공동대표를 맡겠다며 일행을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용기·사랑·소통으로부터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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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전희식씨 댁. 치매 어머니를 돌보려고 8년 전 구입·이주한 농가 안에서 그가 어머니와 대화중입니다. ⓒ 최방식


기자가 그를 마주한 건 8개월여 전입니다. 여행생협 추진위를 띄우던 날이었죠. 지리산 밝은마을 활동가 셋이 참여했는데, 그 중 한 분. 장대한 기골,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안광, 우렁찬 목소리에 제 곁에 앉았던 분이 '포스 장난 아니다'고 귀엣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까닭이었나요? 그가 자랑하던 지리산 '밝은마을' 공동체를 거쳐 마침내 그의 안식처까지 온 것이었죠.

여왕의 계절 첫 토요일. 어린이날에 사흘 뒤 어버이날을 낀 주말인지라 다들 가족행사가 바쁠 때 여행생협이 탐방여행을 떠났습니다. 온 가족의 원성을 뒤로 한 채요. 또 하나, 글쎄 6백리길을 안내할 차량 항법장치(내비게이션, 이하 내비)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라'던 말씀 곱씹으며 지도정보를 갱신하는데 그만 '에러'가 나고 말았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내비 자체가 작동을 멈춘 것이죠.

사당역에서 모두 넷이 출발하는데 차를 가져가기로 한 기자가 꼴찌로 당도했습니다. 차량 탓을 해가며 양해를 구하고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 그 산골마을 찾아갈 일이 걱정입니다. 도착할 즈음 깜깜할텐데 큰 낭패입니다. 포털을 뒤져 경로를 한 번 봐두긴 했는데 '네비' 믿고 대충 지나쳤으니 이거 생고생 좀 하게 생겼습니다. 우선, 일행에 이실직고부터…

조옥화 추진위원이 한 말씀 하십니다. "참 세상 많이 바뀌었어요. 기계가 길을 안내하는 세상이니. 그거 없으면 이제 어디 한 곳도 찾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니… 작동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일행에게 걱정까지 끼쳤으니, 시작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하지만 진무가 필요한 때. "괜찮아요. 포털지도로 봐뒀거든요. 정 안되면 현지에 가서 몇 번 물어 가면 되고요." 병 주고 약 준다더니 딱 그 모양입니다.

'디지털맹신'은 '디지털문맹'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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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자 '고물 궁궐' 상량에 쓰인 글씨. '내가 살고, 서로 사는, 밝은세상'이라 써놨습니다. ⓒ 최방식

자가 치유부터 해야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았으니까요. 집착을 먼저 내려놓아야죠. 어떻게든 찾아가면 되지 뭐… 맘을 고쳐먹으니 그제야 석양녘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휴 첫날 늦은 오후라 그런지 길도 수월합니다. 밑져야 본전. 갱신(업그레이드) 실패한 저장장치를 꽂아 다시 시도해 봅니다. 안 되면 말고… 서너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죠.

실패를 대여섯 번 거듭. 세상에, 내비가 환하게 밝아옵니다. 디지털 문맹? 아니 디지털 맹신이 인간을 어떻게 황폐화할지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어른세대는 '디지털 소통'을 못한다고 구박받는데, 청소년은 만나면 제각각 쭈그려 앉아 저만의 '디지털 소통'을 하느라 '얼굴 맞대는 소통'을 할 줄 모르는 희한한 세상.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세 시간여를 달렸나 봅니다. 현지로부터 주문이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읍내 어딘가에 맡겨둔 게 있는데 그걸 찾아오라는 것. 내비가 작동하기에 망정이니 안됐으면 정말 고생 좀 할 뻔 했습니다. 물건을 찾고 보니 바로 앞이 농협매장. 막걸리며 음료수 등을 사들고 다시 차에 오릅니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벗어나 30여 분 달렸을까요. 드문 산골 농가의 전열 등을 얼마나 지나쳤을까요. 명덕리 나들목입니다. 칠흑 같은 산길. 콘크리트로 신작로를 따라 10여 분 굽이굽이 산길을 오릅니다. 내비가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하는데, 눈앞 서너 가구 중 어느 집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때마침 전등불이 들어오고 키가 큰 사내 한 명이 얼굴을 내밉니다.
엔진을 끄고 차 문을 여니 그제야 자연의 소리가 귀 한가득 밀려옵니다. 개구리와 소쩍새 울음소리, 집 앞 계곡 물소리, 정신을 맑게 하는 시원한 바람소리. 드디어 여생 추진위원들에게 '강렬한 끼'를 날렸던 그 주인공의 집 마당에 당도한 것입니다. 가장 반가운 건, 구수한 된장 냄새. 잠시 잊었던 시장기가 돕니다. 김혜정 추진위원(온라인 이름 뚜란)이 지리산 밝은마을에서 내려와 저녁을 준비 중입니다.

엔진을 끄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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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천리 달려온 여행자에게 내놓은 생명밥상. 뚜란님이 여행자에게 맛난 음식을 대접하려고 지리산 밝은마을에서 내려왔습니다. ⓒ 최방식


상추·풋고추·오이 등 싱싱한 푸성귀, 8년 묵은 된장과 된장찌개, 도시에서 맛보기 어려운 시래기·김치·취나물(?)… 그리고 진한 향을 풍기는 두릅나물. 진수성찬에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방문자 4명과 초청자 2명이 마주앉습니다. 주인장 말마따나 '고물 모아 어머니 모시려고 지은 궁궐'에 화창한 어느 봄날 저녁 이렇게 발 개고 앉으니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저녁상에 한 분이 빠졌습니다. 이집 주인장의 어머니이자 그의 에세이 '똥꽃'(그물코 출판)의 주인공, 김정임(91)씨입니다. 인사를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상태가 좋으면 될 텐데 한 번 지켜보자는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따로 밥상을 차려드렸으니 걱정 말고 어서 밥숟가락을 들랍니다.

잠시, '똥꽃'의 주인공인 주인장 어머니 이야기. 노동운동에 이은 귀농운동에 바빴던 전씨. 8년여 전 큰형 집에 들렀을 때 봤던 기저귀를 차고 3층 다락방에서 밥과 약을 받아먹던 어머니.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를 쓰지 못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데 치매까지 앓던 어머니가 인사차 들른 막내아들에게 구원요청을 한 것일까? 그날 어머니를 보고 '꺼억꺼억' 울었던 그는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마음을 굳혔답니다.

당시 심경을 그는 '똥꽃'에 이렇게 적고 있죠.

"그 많은 자식(6남매)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먹었다… 살아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후배 소개로 장수군의 생태마을인 남덕유 자락 해발 650미터의 이곳 마을로  2006년 이주했습니다. 지인들 도움을 받아가며 십 여 년 비어있던 농가 한 채를 구입했고 반년 가까이 수리까지 마쳤습니다. 치매 어머니가 대소변과 뒷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집 구조를 바꾼 것이죠.

치매 어머니 '존엄'을 찾아 시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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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밥상을 차려놓고 둘러않은 여행생협 추진위원들. 여로에 지친 여행자들은 생막걸리로 갈증을 풀었습니다. ⓒ 최방식


그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산촌마을로 내려가며 머릿속에 각인했던 건 바로 '존엄'이었습니다.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썼고 집을 드나들 때는 절을 올렸으며,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알려드리고 허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관리나 치료 대상이 아니라 어른이자 주체로 모시는 것이었고, 좌절하고 부정당하는 어머니를 애초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었죠.

수시로 어머니를 보살피러 드나드는 그를 보고 든 의문 하나. 밥상을 받기 조금 전인데 그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여러 차례 양말을 신었다 벗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술자리에서 물으니 눈치가 빠르다며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존중하며 대화를 하기에 어머니가 양말을 신기거나 벗결 달라 말씀하시면 무시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여기 마을에 내려와 어머니와 살면서 쓴 시가 바로 '똥꽃'입니다. 수필집 제목이 되었고요. "감자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꽃 미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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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어렴풋이 비추는 귀농자의 모자. ⓒ 최방식

덧붙이는 글 |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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