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범하는 비민주적인 오류들

[주장] 시민의 이성적이며, 민주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등록 2012.05.16 17:54수정 2012.05.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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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내 비례대표선정 경선 부정 의혹으로 시작된 자체조사가 통합진보당 내 계파 간 분열을 넘어 이제 당내 당권파의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다. 당권파는 진보의 정체성 자체를 파괴하고, 자기 이익 수성에 집중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사태를 직접 일으킨 장본인인 당권파들은 심상정 의원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 사태에 얽힌 당권파들의 입장과 행동을 보면, 결코 이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당권파가 범하고 있는 비민주적 오류 및 비이성적 오류를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정치는 신념이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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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일부 당원들이 단상으로 뛰쳐나와 회의진행을 방해하자 심상정-유시민-조준호 의장단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우선, 정치와 운동을 동일시하는 오류다. 근본적으로 정치는 운동과 다르다. 운동은 변화 그 자체가 지향점이지만, 정치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운동은 신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치는 운동보다 좀 더 큰 틀이 필요하고 신념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가야 한다.

특히 통합진보당과 같이, 서로 다른 세 개의 분파,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민노당 주류와 신념을 달리하는) 구 민주노동당 세력이 연합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는 오직 자신과 신념을 공유한 사람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신념의 공유에서 신뢰는 필수적이다. 실제, 이정희 전 대표는 몇 차례나 통합진보당 내 신뢰를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의장직을 사퇴한다고 말해놓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사회권만 넘긴 것이라고 번복하는 식의 발언으로 어떤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갈등하는 다수와 소수가 있다면 신뢰를 먼저 주어야 하는 쪽은 다수라고 말했다. 소수자에게 신뢰까지 먼저 내놓으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간디는 신뢰를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를 자기희생이라 말했다. 자신이 지닌 것을 먼저 내려놓을 때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통합진보당 내 다수는 당권파다. 간디의 말을 따르자면, 신뢰를 형성하는 주체는 당권파여야 한다. 조금은 억울해도 책임을 져야 할 일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쪽도 일단은 당권파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들 집단 내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기이한 패턴은 항상 목격되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자기 이익만을 우선으로 고수하려는 성향이 이번 사태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 정당은 투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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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지난 12일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중앙위원회 개회직전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힌뒤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뜨고 있다. ⓒ 남소연


두 번째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정당의 투명성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투명해지면 대중 정당이 되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말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설사 대중 정당이 아니더라도 민주사회의 정치정당은 투명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성의 본질은 공개성이다. 푸코는 민주사회든 전체주의사회든 구성된 방식은 판옵티콘과 똑같다는 말을 했다. 두 사회의 차이가 있다면 그건 갑시탑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런 점에서도 공개성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정당은 절차에서건 내용에서건 투명해야 한다.

이 투명성과 관련하여 대표자들의 정치적 성향 역시 시민에게 명백하게 공개돼야 한다. 이 부분은 사상검열과 그 차원이 다르다. 일반 개인은 누구나 양심의 자유에 따라 자신이 믿는 바를 믿을 권리가 있다.

일반인과 달리 시민이 선택하는 선출직으로서 대표자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시민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 대표자의 정치적 지향점은 시민의 선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당권파들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도 솔직하게 문제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다르다

세 번째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정치적 책임에 관한 부분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 사태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했다. 미안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무슨 죄를 지어서 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1993 대학입시문제 답안지 유출 사건으로 당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교육부 장관이 뜻하지 않게 사임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의 사임은 명백한 절차상의 오류와 관리에 대한 책임이지 유출자 개인의 범죄에 가담해서 사퇴한 것이 아니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부실로 인해 빚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진 행위였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가 드러났을 때, 이정희 대표에게만 사퇴하라고 한 게 아니라 당 공동대표 전원이 책임지고 물러나자고 한 것이었고 계파를 가리지 않고 비례 대표 전원이 사퇴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절차상의 오류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미디어 인터뷰에서는 국민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정치인 이정희'가 책임지는 부분은 바로 "국민에게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와 이번 사태를 동일하게 본 것은 정치인으로서 이정희의 자질마저 의심스럽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검찰이 법이 그어놓은 여러 사안을 위반하며 여기저기 흘린 정보에 언론이 동조하며 혼미하게 당한 것이었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자체도 동의한 당내 자체 조사단의 조사 보고서를 받고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노무현은 명확한 법의 틀 내에서 사안이 진행되고 있었던 반면, 통합진보당 사태는 처벌이란 법의 테두리 안에 명확히 들어가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통합진보당 당내선거과정의 절차적 문제로 누구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법과 정치는 다르다. 법은 죄에 대한 책임이지만, 정치는 죄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과정과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행위다. 설사 이정희 전 대표의 말대로 부정이 아니라 부실이었대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부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절차가 내용을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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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 당원들이 심상정-유시민-조준호 의장단의 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붉은 끈으로 묶어 출입구를 막고 있다. ⓒ 남소연


네 번째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그 자체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당권파의 실세로 등장하고 있는 이석기씨는 어떤 나라의 선거도 100%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발언에 일일이 답변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답해야 한다면 우선 묻고 싶다. "문제 없다"는 뜻이고, "괜찮다"는 의미인가? 도대체 이 발언을 통해 말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흔히 절차적 민주주의의 약점을 비판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절차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내용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전한 절차를 밟지 않은 의사결정은 날치기가 되어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올바른 절차를 밟지 않은 선거는 무효가 된다. 심상정 의원이 자신들에게 충분한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당권파들이 광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절차의 문제다.

의사발언 기회의 공정한 분배에 그토록 광분하면서 선거과정의 부정과 부실에 이토록 관대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당권파들은 이런 절차의 문제가 잘못된 부분을 짚었던 것이다. 이런 절차들이 잘못된 부분을 잘 짚어 절차를 하나씩 견고하게 만들 때 우리는 제도화가 잘되었다고 말한다.  

한편, 우리가 이러한 절차의 잘못된 점을 찾아 원칙에 따라 교정하고 때로 처벌하고 온전히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현재의 일을 판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언제나 오늘의 과오가 내일의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저지른 실수를 관대히 넘어갈 때, 우리는 오늘의 실수를 진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있으며 미래에 똑같은 실수, 나아가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조그만 잘못이라도 찾아 끊임없이 교정하고 수정하는 작업은 제도화 과정의 일부이자 미래에 일어날지 모를 똑같은 과오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00% 완벽할 수 없을지 몰라도 100%를 목표로 일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폭력과 결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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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 중앙위원과 참관인들이 의장석이 있는 단상으로 뛰쳐올라 회의중단을 요구하며 유시민-심상정-조준호 의장단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진행요원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당권파의 폭력이다. 잘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절대 같이 갈 수 없는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실제 정치적 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이나 집단의 반응을 보면, 자신들이 연루된 폭력을 두 가지 전형적인 방식으로 정당화한다. 그 첫째는 폭력이나 물리적 힘의 행사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의미다. 폭력이 정의의 논리를 차지할 때, 그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며, 옳은 일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써야 하는 상황이며, 자신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말한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두 번째 논리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고 외부 요인이나 세력 때문에 모든 폭력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선한데, 우리와 맞서는 이들이 악의 존재이며, 이 모든 폭력이 사악한 외부인 때문에 일어났다는 논리다.

당권파는 폭력의 원인을 심상정 의원이 자신들에게 공정한 의사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폭력이 일어난 당시를 회의를 지켜본 대부분의 객관적 증언을 보면 당권파의 조직적 방해로 정상적인 회의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실제 모든 동영상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 생생한 동영상을 당권파 자신들이 스스로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보고도 스스로 여전히 이 모든 잘못이 심상정 의원이 발언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제 과학의 객관적 근거로서 가시성이 더이상 의미가 있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도 좋을 듯하다. 주디스 버틀러는 로드니 킹 사건 재판 당시 경찰이 무자비하게 킹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고서도 킹이 잠재적 위협일 수 있다고 판단한 백인위주의 배심원단에게 어떻게 이 장면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한 인간에 대한 무자비한 집단 공격이 경찰의 자기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 본다는 것은 더이상 객관적인 사실 판단의 잣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버틀러는 흑인남자들의 검은 몸에 대한 백인들 사이에 공유된 공포야말로 이 폭력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이런 버틀러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당권파를 둘러싼 권력 상실의 공포가 자신들의 무자비한 폭력행사를 정당하다고 여기는 요인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자세와 지지로 사태를 해결하자


현재까지 당권파들이 보여준 발언이나 행위, 그들이 지닌 신념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적인 진보와도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당권파는 자신들의 행위만이 정의로우며 올바르다고 믿는 듯하다. 정의는 혼자만 믿는다고 정의로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의는 폭넓은 타자가 공감할 때 가능하다. 오히려 현재 많은 시민의 눈에 당권파는 진보정치를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지금 현재 당권파의 모습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의 파괴자라 해도 별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에 대한 해결이 폭력 사태까지 치달은 지금, 이런 문제조차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좌절과 울분을 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보와 민주주의 파괴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좀 더 이성적이며 좀 더 민주적인 대처여야 할 것이다. 매우 어렵고 힘들어도 민주적 과정과 발상, 행동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서 민주주의의 힘을 보이는 동시에 진보가 민주주의를 담보하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이를 위해 민주적 시민, 민주적 여론의 이성적인 자세와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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