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매카시즘을 경계한다

등록 2012.06.06 09:24수정 2012.06.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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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바로, 내 손에! 205명의 공산당원의 명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무부에서 미국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2월 9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힐링에서 울러퍼진 이 두 문장은 미국 사회를 약 4년 동안 휩쓴, 우리말로 표현하면 '빨갱이잡기' 광풍 서막이었다. 발언 당사자는 조셉 매카시(Joseph R McCarthy)였다. 그럼 매카시는 명단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가 던졌던 종이뭉치에는 공산당 명단이 없었다. 말은 '공산당 명단이 있었다'였지만 증거는 없는, 한 마디로 미연방공화국과 미국시민을 속인 것이다.

매카시 "내 손에 205명 공산당원 명단 있다"... 하지만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이를 믿었다. 아니 시대 상황이 믿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약 넉 달 전인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장제스가 이끈 중국 국민당과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거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그리고 매카시가 "공산당원 명단 있다"고 외친 넉 달 후 6월 25일 북한 남침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화는 미국 시민들에게 '빨갱이' 공포감을 각인시키에 충분했다. 원래 거짓말도 반복하면 믿는다고 하지 않던가.

매카시 광풍이 얼마나 거셌는지는 국무부-연방정부-시민단체를 넘어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장군과 함께 2차대전 영웅으로, 트루만에 이어 미국 34대 대통령을 지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대통령까지 붉은 덧칠을 했다.

매카시, 아이젠하워까지 붉은 덧칠... 결국 몰락

전쟁 영웅까지 붉은 물이 든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조금만 진보적인 발언을 하면 "너 빨갱이지?"라는 분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나중에는 미국 육군장교들과 공무원들을 체제전복 기도로 고발한다. 하지만 갈수록 발언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고, 결국 195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에서 패배함으로서 매카시는 조사위원회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곧이어 상원은 67 대 22로 매카시가 '상원의 전통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다는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1957년 5월 2일 48세로 사망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매카시는 갔지만 '매카시즘'은 수구세력이 비판세력을 단죄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대한민국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반대세력을 옭아매기 위해 '간첩'를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언론들은 열렬히 보도했다. 독재권력은 자신들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간첩을 생산해냈다. 언론들은 조금만 더 심층취재를 했다면 그것이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서슬퍼린 독재권력이 굴종할 수밖에 없었다.

박홍 "주사파 1만5천명!" 하지만 물증이 없네...

나에게 매카시 광풍을 각인시킨 사건은 1994년 7월 18일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이 김영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이 함께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주사파와 우리식 사회주의가 일부 학생들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 있고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 사노맹 뒤에는 북한의 사노청, 사노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유학생이 교수로 있다", "정당·언론에도 주사파 있다",  "87년부터 7년 동안 대학이 배출한 주사파를 1만5000명에서 3만명 정도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따위를 쏟아내며서 불었던 '주사파' 광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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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 20일자 <한겨레> '박총장 발언 증거 못대'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최환 대검공안부장은"구체적 사실에 대해 박 총장 자신도 제3자 로부터 들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혀 수사의 단서로 삼기는 어려웠고, 박 총장이 제시한 자료들 도 그동안 공안수사기관에서 대부분 확보하고 있던 것이며 수사 단서로 될 만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그럼 박홍 총장은 주사파 실체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다. 1994년 8월 20일자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 '박총장 발언증거 못대' 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최환 대검공안  부장은 면담 결과 "구체적 사실에 대해 박 총장 자신도 제3자로부터 들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혀 수사의 단서로 삼기는 어려웠고, 박 총장이 제시한 자료들도 그동안 공안수사기관에서 대부분 확보하고 있던 것이며 수사 단서로 될 만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또 "박 총장은 그간 국내외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과 운동권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거나 사제 또는 대학총장의 입장에서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그러한 발언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박 총장은 이 자리에서 "접촉한 사람이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박 총장이 "여당에도 주사파가 침투해 있다"는 최근 발언과 관련해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북한의 장학금을 받은 대학교수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세미나에서 만난 북한 학자에게 들었으나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최 공안부장은 "현재 박 총장에 대해 추가로 조사할 계획은 없으나,새로운 자료가 나타나는 등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박 총장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증 제시 못해놓고, 끊임없이 '주사파' 의혹만 제기

그래도 매카시는 205명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박홍은 1만5천~3만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증거를 대지 못했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연일 맹공했다. 박홍 총장 발언 직후인 94년 7월 19일 중앙일보는 <병균은 색출해야 한다>는 제목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한 지난 1년의 대학가였지만 그 평온 속에서주사파들은 北의 지시와 지령에 따라 학생회 이름으로 어떤 파괴, 분열작업을 획책했을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주사파 학생들에 대한 수사는 보다 엄정하고 신속해야만 한다. 병인(病因)을 찾아야 하고,병균을 색출해야만 병을 고칠 수 있고,그 병을 퍼뜨린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아야만 남(南)과 북(北)이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다.

증거를 제하지 못한 박홍은 이후에도 주사파를 끊임없이 퍼뜨렸다.

"주사파(主思派)의 숫자가 줄었을 뿐,아직도 존재한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적화통일과 계급투쟁의 본심을 감췄을 뿐이다.-(2003.06.20 <중앙일보> 박홍 신부 "주사파는 아직도 존재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간첩 활동을 방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펌프질하고 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라가고, 남한은 미제국주의 식민지라고 하는 얼빠진 녀석들이 북한 뿐 아니라 남한에도 있는데, 여야는 이를 색출하기 보다 엉뚱한 문제로 싸우고 있다"-(2006.10.31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장성민입니다'와 인터뷰)

"(통합진보당)주사파와 관련 있다. 좌익들이 부익부 빈익빈 같은 올바른 이슈를 가지고 선전선동으로 국민들 속이려 한다"-(2012.05.09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 인터뷰)

매카시즘 핵심은 증거도 없어, 죄 없는 사람을 붉은 덧칠해 증오하게 만드는 것임을 박홍은 증명해주고 있다.

"너 빨갱이지"와 "김정은 개xx"는 매카시 광풍

그리고 이제 또 다시 주사파 다잡기가 시작되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가 주사파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정선거는 책임 여부는 오간데 없고, "국가관" 운운하면서 주사파를 국회에 들여놓을 수 없다는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때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막말' 파문이 주사파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매카시 발언 이후 62년, 박홍 발언 후 18년에 만에 또 다시 매카시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매카시는 죽었지만 매카시즘은 그 질긴 생명력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진보당 부정선거는 분명 민주적 절차를 훼손했고, 임수경 의원 발언 역시 과했다.

하지만 이것이 "너 빨갱이지?"라거나 "김정은 개xx해봐"로 가면 안 된다. 이는  매카시즘으로 사상검증이기 때문이다. 사상검증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 비극은 오롯이 시민들 생각의 자유를 빼앗겼다. 언제쯤 이 나라는 매카시즘에서 자유로워질까?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 때만이 정신과 사상을 죽이는 매카시즘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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