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샌들 신고 산행? 그래도 청춘이더라!

[공모-여행지에서 생긴일] 대한민국 아줌마의 나홀로 여행기 (2)

등록 2012.06.20 09:44수정 2012.06.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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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만난 청산도의 아침 ⓒ 신정임


여행지에선 알람이 필요 없다.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꽃이 펴있다. '파란 하늘아, 반겨줘서 고마워'라고 아침인사를 전한다. 이른 아침의 바닷가로 나갔다. 전날 나만의 것이었던 그곳은 산책 나온 부부의 차지가 돼 있었다. 그 평화로움을 깨지 않으려고 멀리서 바다에 작별인사를 했다. 이따 해남에서 만나자, 바다야.

광주 어머니께도 가보겠다고 인사를 하니, 어머니가 다른 방에 묵었던 부부에게 나를 부탁한다. 차 좀 태워주라면서 범바위는 꼭 들렀다 가라는 관광안내도 곁들이신다.


"아가, 그분들 잘 쫓아다니면서 좋은 구경 많이 하거라. 선상님들은 나 덕분에 좋은 일 하시는 줄 아시요."

떠나는 차창으로 두 팔을 크게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광주 어머니가 보였다. 하룻밤 쌓인 정의 크기는 얼마 일까. 잴 수가 없다.

아빠와 아들의 '친해지기 바라' 프로젝트는 이상무

졸지에 낯선 이를 태운 부부는 별 어색한 기색이 없다. 둘이서 자주 여행을 다닌다는 50대 부부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슬로시티, 청산도에 걸맞게 차들이 천천히 달린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자동차 안 부부의 모습까지 겹쳐지니 마음에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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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범바위. ⓒ 신정임


드디어 차는 범바위 전망대 앞에 멈춰 섰다. 어떤 바위가 호랑이 모양을 한 바위인지 살피면서 잠시 오르니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건너편으로 안개에 덮인 제주도와 여서도가 보인다. 함께 차를 타고 온 여성분이 10년 전 여서도로 봉사활동 왔다가 며칠 동안 갇혔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과거와의 마주침,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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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범바위에서 바라본 남해. 묵었던 펜션의 광주 어머니는 청산도에 오면 이 풍경을 꼭 보고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신정임


범바위를 내려오면서 부부가 영상통화를 시도한다. 몇 달 전 세상에 나온 손주의 안부가 궁금한 터다. 부부를 보면서 여행을 떠난 후 집에 전화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너무 나만 좋아서 다녔나.

약간 미안한 맘으로 남편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블록놀이중인 아들이 나타나 "엄마, 동그란 블록은 3개인데 네모난 건 하나밖에 없어"하며 중계를 한다. 지난밤 무탈하게 잘 잔 것 같다. 아빠는 뭐하냐고 물으니 텔레비전 앞에 누워있는 남편이 핸드폰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부인님이 여행 가는 동안 애 좀 보라고 했더니 아이는 놀고 아빠는 정말 애를 '보고만' 있나 보다. 그럼 뭐 어때. '아빠와 아들의 친해지기 바라' 프로젝트는 앞으로 3일 동안 계속 될 테니 두 남자의 건투를 빌 수밖에.

서편제 촬영지에서 여행자의 초능력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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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 토요일 오전,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 신정임


부부 덕분에 차로 청산도를 일주하는 행운을 누렸다. 화창한 봄날의 푸르름을 머금은 청산도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번지는 드라마 속 미남 같았다. 아, 마음 푸근해.

바로 경기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부부와 선착장에서 헤어진 후 난 다시 걸었다. 청산도 여행의 필수코스라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를 차로만 지나친 게 아쉬워서다. 20여 분 걸어가니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언덕이 나타났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아~ 구부구부야아~ 눈물이 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서편제>에 나왔던 진도아리랑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온 언덕을 뒤덮는다.

맑은 날이어서 그런지 <서편제>에서의 애잔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과거로 여행을 떠나온 착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단체관람 가서 봤던 <서편제>도 떠올랐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던 것 같은데 어느 장면이었을까. 인생의 한 토막을 끄집어내는 힘이 저절로 솟는다. 어느새 내게도 여행자의 초능력이 생겼나 보다.

촬영지 입구에선 스피커 속 진도아리랑보다 더 멋진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함께면/님과함께 같이 산다면~" 여행객들에게 나물 등을 파는 어머니들이 여행객들과 '님과 함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흥겨움에 내 어깨도 함께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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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인의 향기> 촬영지에서 한 연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신정임


<서편제> 촬영지 옆엔 바로 드라마 <봄의 왈츠>와 <여인의 향기> 촬영지가 있다. 그곳도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여인의 향기>에 나온 김선아와 이동욱 패널이 세워진 곳에서 한 커플이 김선아와 이동욱 얼굴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다.

"너네 많이 싸웠나보다. 왜 그렇게 어색해."

사진 찍어주는 이의 타박에 커플은 실실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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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촬영지 입구에서 '님과 함께'를 부르고 있던 어머니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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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1번 코스는 사진 속 마을과 서편제 촬영지를 함께 걷는다. ⓒ 신정임


커플의 풋풋한 사랑이 잘 익길 기원하며 또 다시 걸었다. 서편제 촬영지와 연결돼 있는 슬로길 1번 코스 마을을 끼고 돌았다. 빨간, 파랑 지붕의 1층 집들이 이어진 시골마을의 정취가 자꾸만 여행객의 발길을 잡아끌었지만 독하게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번 배를 놓치면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기에. 아쉽지만 푸른 하늘 밑에 푸른 섬, 청산도를 두고 떠나왔다.

논길, 바닷길 달리는 버스 안에서 황홀한 전시회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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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마을로 가는 도중에 버스 기사님이 찍어주신 사진. ⓒ 신정임

다시 완도로 돌아가는 배 안에 누워 창문에 발을 걸치니 이런 한량이 없다. 발바닥을 파란하늘이 간질이는 나른함에 잠이 쏟아졌다. 잠깐 자고 일어나니 벌써 완도다. 다음 목적지는 땅끝마을, 해남은 생각보다 넓었다.
완도에서 탄 버스를 중간에 갈아타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소년은 땅끝마을로 가는 버스는 방금 지나갔다고, 다음 버스가 오려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 2만 원을 아끼기로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빨리 가면 뭐하나 싶었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읽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미저리>의 작가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로 나를 응원한다.

'어쨌든 시작은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1시간여 후 도착한 농어촌버스는 논길을 내달렸다. 곧이어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버스 안에서 창문을 액자 삼아 한 폭의 수채화들이 계속 펼쳐졌다. 이런 황홀한 전시회를 보다니, 땅끝마을에 가서 좋은 풍경을 보지 못하더라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버스 안 승객이 나 혼자만 남았다. 기사님이 신기한가 보다. "혼자 뭔 재미로 여행을 한데요?"라며 말을 건다. 땅끝마을에 가면 모노레일을 타고 꼭 땅끝 전망대에 올라가라며 관광 가이드도 잊지 않는다. 다시 바다를 낀 도로가 나오자 이번엔 사진사도 자처하신다.

"내가 사진 찍어 줄 테니까 저쪽에 가서 서 봐요."

버스를 아예 멈춰 세운 기사님의 호의에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번 여행에서 찍은 내 얼굴이 들어간 유일한 사진이다. 좀 더 젊었다면 사람들한테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을 텐데 그 정도의 열정은 사라졌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래서 더더욱 버스 기사님이 찍어준 사진 한 장이 소중했다. 여전히 내 인생은 청춘이라는 징표 같아서.

땅끝마을에서 마음의 땅 끝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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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님은 이 안내돌을 사진 찍고 땅끝 전망대로 올라가라고 설명해주셨지만 전망대에 가지는 못했다. 연휴라 땅끝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 신정임


친절한 기사님의 안내로 무사히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했지만 여러 난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모노레일이 고장 났다. 땅끝 전망대는 땅끝이 아니라 산 위에 있었다. 멘붕이 왔다. 샌들을 신고 산행을 할 자신이 없었다. 땅끝탑이라도 가려고 했다. 그 역시 1천 개가 넘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이번 여행에 산행은 계획이 없었다. 과감히 고행은 피하기로 한다. 대신 바다에 접한 땅 끝까지는 갔다.

땅끝탑에 오르진 못했지만 땅 끝에 선 느낌은 느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내 마음의 상태가 땅 끝이었으니까. 내가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난관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마음의 절벽을 이끌고 이 먼 땅끝마을까지 오면서 난 뭘 기대했을까. 아마도 그 사무친 마음을 똑바로 볼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 땅 끝에 서니 앞이 보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 않던가. 이 여행을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가면 아마 난 나의 내일을 살고 있을 거다.

얼마 전 읽은 세계를 돌며 장사한 이야기를 담은 코너 우드먼의 책,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에서 타이완의 옥 조각가는 말했다. "여행객은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인내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운명이 그를 구해준다는 거죠" 라고. 학창시절 체력장에서 오래 매달리기만큼은 늘 만점이었던 나로선 참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기에 내게도 운명이 구하러 올 것이다.

물론 지금은 강진으로 가는 버스가 날 기다려주는 인내를 발휘해주길 바라는 일이 더 급하다. 차 없는 여행의 한 가지 맹점은 버스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 게다가 왜 그리 막차시간이 빠른지 도시에선 초저녁인 7시만 돼도 농촌에선 이동하기 힘들다. 강진에 6시 전에는 도착해야 했다.

바삐 해남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강진행 버스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이미 차는 떠났고 다음 버스는 1시간반 뒤에나 있었다. 그 차를 타면 다산초당은 보기 힘들 것 같았다. 과감하게 택시비 2만 원을 쓰기로 한다. 유적지 근처에 가면 관련 설명을 해주는 똑똑한 내비게이션을 단 택시는 곳곳에서 관광안내를 해주면서 다산초당으로 달려갔다.

뿌리의 아픔을 밟으며 다산초당으로

늦은 오후여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은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입구엔 정호승 시인의 '뿌리의 길'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 지하에 있는 뿌리가 /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땅 아래 있을 뿌리가 땅 위로 올라오는 게 세상의 빛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려고, 밝음으로부터 위로받기 위함이라고 노래하는 시에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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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은 대나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 신정임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뿌리의 길'답게 소나무 뿌리들이 땅 위로 뻗어 나와 길을 이루고 있다. 그 길을 한발 한발 정성을 쏟으며 걷는다. 강진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나랏일하는 이들이 지켜야 할 덕을 걱정(<목민심서>)하고,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숲 속의 맑은 공기가 한층 상쾌하게 다가온다. 숲길의 고즈넉함에서 유배시절 다산의 외로움이 전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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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다산초당. ⓒ 신정임


15분 정도 걸으니 두 채의 기와집이 나타났다. 다산초당과 서암이다. 원래 작은 초가집이었는데 허물어져서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단다. 여행객들이 다산 선생의 기를 받겠다고 다산이 기거하며 글을 썼다는 다산초당 툇마루에 앉는다. 난 그의 제자들이 묵었다는 서암에 걸터앉았다.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보단 열심히 수련하고 정진해야 하는 때니까.

서암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강진여행'을 검색하니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길의 풍광이 그만이라는 증언들이 상당했다. 샌들에도 불구하고 산길 오르기를 시도하고 싶을 만큼. 문제는 버스시간이었다. 백련사까지 1km여의 산길을 걸어갔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1시간은 족히 필요할 것 같은데 시곗바늘은 벌써 마의 7시로 향하고 있었다.

백련사도 그렇고 근처 정약용의 다른 유적지 등 강진에 이렇게 볼 게 많은 줄 몰랐다. 잠깐 들릴 곳이 아니었다. 무작정 여행의 허점에 발목 잡혀 고민하다 계획대로 보성에 가서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강진은 다음에 꼭 다시 와보기로 하고 다산초당을 검색해서 봤던 정약용의 글귀 하나를 마음에 간직한다.

「생각은 마땅히 맑게하되 맑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하며
용모는 마땅히 엄숙하게 하되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엄숙해야 한다.
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며 말이 많으면 곧바로 과묵해야 한다.
행동은 마땅히 중후게 하며 중후하지 않으면 중후하게 하라.」
- 정약용《사의재기(四宜齋記)》 중에서

강진에서 기적같은 풍경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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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강진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석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흔들리는 차속이라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는 못했다. ⓒ 신정임


막차가 지나갔으면 어쩌나 마음 졸이면서 뛰었다. 버스정류장이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근처 농가에서 버스정류장을 물어보니 트럭을 몰고나오던 젊은이가 가는 방향이라고 타라고 한다. 마음이 바빠 트럭에 올라탔다. 강진터미널까지 가는 길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몇 분후 그의 트럭에서 내려야 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차를 팔다가 벌이가 시원찮아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그는 걱정되는지 "버스 끊겼을지 모르니까 좀 기다리다가 안 오면 지나가는 차에 부탁하세요. 대부분 읍내로 나가는 차일 테니까…"라며 챙겨준다.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버스정류장에 서니 경치가 일품이다. 맞은 편 문 닫은 매점 위로 떨어지는 해가 근처 갈대밭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멀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며 지나쳤던 한옥 펜션도 보인다. 바빴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좀 기다리다 안 오면 콜택시 부르지 뭐. 마음을 들켰는지 좀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차들이 꼭 내가 서 있는 길과 다른 방향으로만 지나갔다. 기운이 빠졌다.

다시 택시 신세를 져야하나, 버스정류장에 붙은 콜택시 스티커 속 핸드폰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기적처럼 버스가 내 앞에 섰다. '기적'이란 거창한 단어를 끄집어낸 건 강진군 농어촌버스를 타고 봤던 풍경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석양지는 논길을 달리던 버스가 해변길로 접어들고 다시 산길을 돌아가는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마지막엔 또 다시 홀로 버스에 남게 됐다. 기사님도 "운이 좋네요"라며 웃었다. 그동안 덕을 많이 쌓았나 보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행운의 여신은 계속 내 편이었다. 강진터미널엔 보성으로 가는 차편이 아직 남아있었다. 하루 여정의 막바지로 향하는데 피곤함보다는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하루를 잘 개척해온 내가 대견해서. 나를 다독이며 김밥 한 줄로 때운 점심과는 다른 저녁 만찬을 상으로 내리고 싶었지만 어둠이 깔린 보성읍내의 많은 식당들은 불이 꺼진 채였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을 주문하니 아주머니가 기다리며 먹으라고 하얀 백설기를 내놓으신다. 꼭 뭔가 큰 축하를 받은 것 같다. 아, 행복해. 오늘밤 찜질방에서의 잠도 참 달콤할 것 같다.
#청산도 #땅끝마을 #다산초당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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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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