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타족' 아저씨, 덕분에 여행이 '벚꽃엔딩' 됐어요

[공모-여행지에서 생긴일] 대한민국 아줌마의 나홀로 여행기(3)

등록 2012.06.23 18:16수정 2012.06.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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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읍내엔 딱 한 개의 찜질방이 있었다. 탕 하나 달랑 있는 찜질방이었다. 그 단출함마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여행에 너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나. 모든 걸 손해 보나 안 보나로 기준 삼는 '도시 깍쟁이'에서 벗어나니 세상에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이래서 인생에 쉼표가 필요한가 보다.

보성읍내 찜질방에서 보낸 이날 밤, 찜질방은 여행객들이 점령했다. 나처럼 용감무쌍하게 길을 나선 나홀로족, 함께여서 든든한 둘이족, 아예 온 가족이 출동한 경우도 있었다. 여행은 누구랑 보다는 떠난다에 방점을 찍는 것. 작은 찜질방 안엔 흥분의 기운이 감돌았다. 물론 여행이 늘 해가 쨍할 수는 없다. 여대생 둘은 막차를 놓쳐 한참 헤매다 들어왔나 보다. 볼이 뿌루퉁하다. 그마저도 나중에 돌아보면 예쁜 빛깔의 추억이 될 터다.


내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자야 할 시간, 내일 일출은 보성 녹차밭에서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은 바람으로 끝나기 쉬운 법, 일출 시간을 확인 안 했던 내 불찰이 크다. 오전 7시 전에만 가면 될 것 같아 느긋하게 씻고 나왔는데 한 부부가 "새벽 5시부터 서둘렀는데 허무하네"란다. 벌써 해가 떴단다. 부지런한 해가 야속하기만 하다.

영화 같이 차 세워준 인삼 아저씨

오전 6시쯤 나온 찜질방 주차장에서 떠오른 해와 마주했다. 녹차밭에 빨리 갈 이유를 잃었다. 콜택시 대신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찜질방 아저씨는 읍내 가는 버스는 자주 올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30여 분이 지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지쳤다. 몇 대의 택시를 그냥 보낸 게 후회됐다.

'다음 택시는 그냥 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몇 미터 지나쳐 간 승합차가 후진을 하며 선다. 이거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아냐. 세상을 잘 믿는 나는 냉큼 달려가 차 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가요? 타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성읍내 장에서 인삼을 파는 아저씨였다. 기름 넣고 금산에 인삼 사러 가려는데 주유소들이 안 열어서 헤매고 있다고 했다. 문 닫은 주유소들에 감사할 따름. 친절한 아저씨는 보성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며 좋은 여행이 되길 기원했다. 인삼 아저씨 덕에 벌써 좋은 여행이 돼버렸다. 다시 기운이 솟았다.

일요일 새벽, 벌써 장이 섰나보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물건을 가득 담은 할머니들이 버스에 오른다.


"행님, 요리 와버려. 가만 써. 버스비 먼저 내야제. 원래 1700원인디 짐이 많응께 2000원 내요잉."

시끌벅적 이야기 나누는 할머니들 덕분에 버스 안이 활기에 넘친다.

<벚꽃엔딩> 들으며 녹차밭을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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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녹차밭. ⓒ 신정임


할머니들의 정감 넘치는 대화에 푹 빠져 있는데 버스가 어느새 대한다원 정류장에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녹차밭과 예쁜 펜션들이 보인다. 거기가 대한다원인줄 알고 그대로 직진하려는데 함께 버스에 탔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 1인과 2인의 여성이 모두 왼쪽으로 꺾는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우선 대세를 따라야 할 것 같아 그들의 뒤를 따르니 높다란 삼나무 숲 속에 매표소가 나타났다. 줄을 잘 선 듯하다.

주차장에서 본 녹차밭은 아기고, 실제 대한다원은 엄마격이었다. 크기가 몇 배는 돼 보였다. 산비탈을 온통 뒤덮은 녹차잎들에서 차향이 퍼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도 돌려도 보이는 풀빛에 눈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핸드폰으론 그 넓고 파릇파릇한 녹차밭을 제대로 담긴 힘들었다. 구경만 잘하기로 한다.

차밭 전망대와 바다 전망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차밭을 보다가 바다를 보면 한층 운치가 있을 것 같아 낑낑대며 올라갔다. 힘들어서 차밭 전망대에서 한 번 쉬고, 바다 전망대에 딱 들어섰는데 안개 덮인 산만 보인다. 바다는 그 산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게다. '기상사정에 따라 바다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낚였다. 약간 허탈했지만 높은 데서 바라보는 차밭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하산길은 편백나무 숲이다. 어딘가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흘러나왔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 /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젊은 부부가 보인다. 아들과 어깨동무하며 가는 한 아빠의 모습도 정겹다. 집에 두고 온 부자가 생각났다. 기념품 가게에 들려 작은 선물을 하나씩 샀다. 녹차 아이스크림도 한 컵 사 날름날름 먹으면서 녹차밭을 빠져나왔다.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문학과 인생의 고행길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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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정면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글이 새겨져 있다. ⓒ 신정임


다시 보성터미널로 가려고 정류장에 가니 같이 버스 타고 온 남학생이 있다. 말을 걸까 하다가 가만히 그의 여흥을 지켜줬다. 잠시 후 우리 앞에 멈춰 선 택시 안에서 "역, 터미널 1500원"이란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히치하이크 경험이 바로 택시 문을 열게 했다. 남학생도 "1500원?" 한 번 확인하더니 따라 탄다. 빈 차로 가느니 3000원이라도 벌어보자는 택시 기사님의 팍팍한 현실이 여행객에겐 행운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다.

보성 터미널에 내려 벌교행 차표를 끊었다. 남학생은 다른 데로 가나 보다. 그의 남은 여행도 해가 쨍하길. 그런데, 너무 해가 쨍해도 문제다. 하루 만에 옷 경계선 안과 밖의 피부색이 달라졌다. 오늘도 아침부터 햇볕이 뜨겁다. 버스가 오기 전에 근처 장으로 모자를 사러 갔다.

"이게 면으로 돼서 시원하겠네. 원래 7000원인데 5000원만 줘."

모자 파는 어머니가 골라준 연두색 야구모자를 쓰니 얼굴 앞에 그늘이 진다. 시골장의 왁자함도 함께 담아 벌교로 향했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벌교터미널 바로 옆에 있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글이 문학관 정면에 새겨져 있다. 6년에 걸쳐 10권에 이른 대하소설을 써내려간 작가의 고행이 그대로 전해지는 곳이다. 그 중 집필 누계표와 백팔 염주가 눈에 띄었다. 매일 원고지 몇 장을 썼는지를 기록해둔 집필 누계표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달려있다.

"대하소설을 쓰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중노동이다. 하루라도 마음이 해이해지면 그 긴 소설을 써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듯 이런 집필 누계표를 만들어 놓고 매일 확인하고 점검한다. (중략) 소설을 쓰느라고 아버지의 임종을 못 지켰고, 장례를 치르느라고 소설 쓰기를 나흘 중단했고, 그 다음날부터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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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에 나온 무당 딸 소화의 집. ⓒ 신정임


"8시간의 노동으로 지친 이들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며 20년 넘게 '글 감옥'에 갇혀 살았던 조 작가가 매일 흘렸을 땀방울의 양을 짐작하기 어렵다.  

백팔염주 아래에는 "글을 쓸 때는 이 백팔염주를 세 겹으로 해서 왼쪽 손목에 걸고는 했다. 외롭게 먼 길을 가는 길벗으로라도 삼으려는 듯이"라고 쓰여 있다. 어디 글쓰기만 외롭고 먼 길을 가는 것이랴. 직장에서, 혹은 집에서 문득문득 외로움에 사무치는 우리 인생 모두가 고독의 길일지니. 그 마음 위무할 벗이 있다면 다행이리라.

문학관 옆엔 <태백산맥>에 나오는 현 부자네와 소화의 집이 있다. 거기 어딘가에서 소설 속 정하섭과 소화의 애틋한 사랑이 피어났을 게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 밤새면서 <태백산맥> 삼매경에 빠졌던 나의 대학 시절도 겹쳐진다.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하대치와 외서댁을 다시 만나고 싶다.

쫄깃쫄깃한 꼬막 먹고 부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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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채석강을 옆에 두고 해가 떨어지고 있다. ⓒ 신정임


더위와 배고픔이 문학으로의 여행을 방해했다. 멋은 것도 없이 새벽부터 땡볕 아래 걸어 다녀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특히 맛의 고장,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버스 시간 맞춘다고 백반도 제대로 못 먹은 게 아쉬웠다. 벌교에 왔으니 꼬막만큼은 먹고 가자고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거금 1만5천 원이나 하는 꼬막 정식을 시켰다. 일요일 낮 단체손님이 밀려드는 속에서도 주인은 혼자 온 손님을 외면하지 않았다. 미리 준 삶은 꼬막을 까먹고 있으니 꼬막전, 양념 꼬막, 꼬막회무침 등과 밑반찬들이 나왔다. 양이 많았지만 쫄깃쫄깃한 꼬막만은 다 먹고 나왔다. 

배를 채우니 다시 힘이 났다. 이제 전라북도 부안으로 건너뛸 시간, 벌교 터미널 주변을 좀 걷다가 광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광주에서 2시간 정도를 기다려 부안행 버스를, 부안터미널에서 다시 격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낙조가 아름답다는 채석강을 보고 싶었다. 버스 기다린다고 중간에 멈춰 섰던 시간들도 아까운데 버스는 느리게 달렸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놀러 온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좁은 2차선 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바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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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항에 정차돼 있는 배들. ⓒ 신정임


간신히 도착한 격포 터미널에서 내소사 가는 막차 시간을 보니 또 '마의 7시'다. 1시간도 채 안 남았다. 전체 3시간에 이른다는 부안 마실길 1구간 3코스 적벽강 노을길과 부처님 오신 날 새벽의 내소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소사를 택했다.

노을길의 한 구간인 채석강에 이르는 길은 썰물일 때 들어갈 수 있는데 가까운 썰물대를 검색하니 다음날 꼭두 새벽이었다. 부안 여행 때는 꼭 조석시간을 확인하라는 여행 고수들의 조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유를 알겠다. 아쉽지만 채석강 건너편에서 노을만 보다가 마실길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언제든 꼭 오고 싶다. 제주 올레길 못지않게 풍경이 일품이라는 글들을 많이 본 탓이다.

격포항의 활기와 채석강의 낙조를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떨어지는 해는 꽤 많은 관광객들에게 골고루 바알간 햇빛을 선사했다. 그 붉은빛에 여유 있게 취할 새도 없이 내소사행 버스에 올라탔다. 내소사 바로 근처에 찜질방이 있다는 반가운 정보도 이미 확보했다. 핸드폰만 두드려도 정보가 쏙 빠져나오는 스마트한 세상이다. 가끔 이 세상이 너무 똑똑해 온갖 정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내소사 연등행렬에 담긴 사람들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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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새벽, 한 스님과 수행자가 내소사 앞 전나무길을 산책하고 있다. ⓒ 신정임


찜질방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전날 잠자리가 부족해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부처님 생신이 코앞이니 오늘은 더 많을 터. 일찍 오길 잘했다. 체면치레용으로라도 있음 직한 탕 하나 없는 찜질방이었다. 하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만큼은 도시 어느 찜질방보다 나아 보였다. 저녁으로 미역국을 시키자 근처 밭에서 땄는지 싱싱한 쌈채소가 함께 상에 올라왔다. 빈 반찬 그릇을 채워주며 식당 아주머니는 음식이 입에 맞는지를 챙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려고 맥주 한 캔을 주문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얼음 담긴 그릇에 맥주를 담가 마른안주와 함께 내왔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꼴깍꼴깍 넘어간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출 시간을 검색했다. 찜질방에서 내소사로 가는 2km여의 길 어딘가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좋겠다 싶었다. 오전 5시 20분이란다. 부지런한 해님 덕분에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것 같다. 여행의 긴장감이 내 안의 초인적인 힘을 끌어올릴 걸 알기에 별걱정은 안 했다. 어김없이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5시엔 내소사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태양은 내 노력에 별 감흥이 없었나 보다. 그 길에서 떠오르는 해를 만나지 못했다. 다리품도 덜 겸 지나가는 차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너무 부지런을 떨었나 보다.

아직 열지 않은 내소사 안내소를 지나자 키 높은 전나무길이 곧게 뻗어있다. 그 길 위에서 스님이 한 수행자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새벽에 만난 그림 같은 풍경이다. 부처님이 주신 선물일까. 내소사까지 이어지는 연등행렬에 부처님께 선물 바라는 이들이 많다. '수능대박발원' '취직소득발원' '건강학업성취발원' 등등. 그 바람들이 모두 이뤄지길... 누군가의 복을 빌게 되는 날이다.

한적한 내소사 안을 기웃거렸다. 대웅보전 안 부처께 절도 하고 소원탑에 돌멩이도 하나 올려놨다. 1천 년 된 느티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른 아침 마당을 비질하는 소리가 마음 속 잡념을 쓸어준다. 스님들이 절 곳곳을 챙기며 손님들 맞을 채비를 하신다. 소란스럽지 않은 잔칫날 아침이다.

여행의 마지막은 프라하의 연인 촬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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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줄포자연생태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 신정임



내소사에서 나와 버스시간표를 봤다. 한 군데 더 들리고 싶었다. 부안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줄포자연생태공원이 있다. 전도연이 출연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촬영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풍경 좋은 곳엔 꼭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있고, KBS <1박2일>이 다녀간 것 같다. 갯벌습지라는 줄포생태공원은 어떤 정취를 품길지 궁금했다.

버스에서 내려 생태공원을 찾아가다 한 어르신을 만났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산책하던 그분은 고맙게도 생태공원입구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를 해주셨다. 아버님 생신이어서 고향을 찾았단다.

"여기가 예전엔 배가 오가던 포구였어요. 홍수난다고 바닷물을 막아서 좋은 경치를 다 못 보게 됐지."

그가 아쉬운 듯 말했다. 길가엔 당시에 생선들을 사고팔았다는 창고가 옛 영화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쓰러져가고 있다. 그는 걸으면서 옛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일제시절 곡창지역인 전라도의 쌀들을 일제에 빼앗기는 과정에서 돈을 벌어 지금은 대기업이 된 어느 기업이야기.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성수 일가에서 머슴을 살던 미당 서정주의 아버지가 함께 부안으로 오게 된 이유 등 역사 시간엔 듣지 못했던 역사이야기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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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생태공원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나온 별장이 있다. ⓒ 신정임


그와 헤어진 후 줄포 생태공원으로 들어섰다. 끝을 알 수 없는 갈대숲이다. 갯벌을 막아 생긴 습지엔 해수에서 담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람사르 협약 습지로도 등재됐다고 한다. 드넓은 갈대숲 가운데 <프라하의 연인>에 나왔던 별장이 서 있다. 드라마 속 소원의 벽도 어딘가에 있다는데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보질 못했다. 자연을 느끼며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갈대를 헤치면서 걸었다.

이제는 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나에게 선사했던 80시간의 선물이 사라져가고 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 내리니 회색도시가 마중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업무 관련 메일이 잘 도착했지를 묻는 전화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마다!"라며 아들이 뛰어와 펄쩍 안긴다.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다시 돌아온 일상. 지난 80시간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을 거다. 하지만 80시간 전보다는 씩씩할 것이다. 내 안엔 떠나본 자의 해방감이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세상 아줌마들에게 권한다. 떠나라! 그러면 일상이 새로워질 테니.
#부안 #내소사 #태백산맥 문학관 #보성 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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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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