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통합진보당 박영재 당원의 추도식에서 이정희 전 대표는 "축출과 분열로 어떻게 통합을 완성할 수 있느냐" 말했다고 한다. 진보정치의 희망에서 당권파의 완고한 수장으로 매도된 이정희 전 대표에게 지금의 상황은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공은 분명하지만 과는 그녀가 인정할 만큼 뚜렷하지 않다.
이정희 전 대표는 분당 이후 말 그대로 거덜 나 있던 민주노동당을 젊고 역동적인 가능성의 정당으로 끌어올렸다. 당의 하드웨어가 바뀐 것이 아니었던 만큼, 전적으로 그녀의 '개인기'가 발휘된 결과였다.
이정희 전 대표의 또 하나의 공은 진보정당의 협소함을 참여당과의 통합, 야권연대를 통해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은 이것을 자기의 지도력의 결과라고 말한 모양이지만, 대중 앞에서 정치적 책임을 고스란히 다 진 것은 이석기 의원이 아니라 이정희 전 대표였고, 그 공 역시 이정희 전 대표 앞에 헌정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당 대표로 지휘한 총선에서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서울, 경기, 광주, 전남, 전북 등에서 당선자를 냈고, 울산, 경남 등 여러 지역에서 선전했다. 13석이라는 사상 최고 의석을 확보했다. 정당 득표 역시 두 자리를 넘어선 것은 주목할 만한 성적이다. 사실 이정희 대표가 가야 할 길은 지금 같은 가시밭길이 아니라 대선의 꽃길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부실, 부정 투표' 파문은 이정희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그녀는 '찌릉소'처럼 버티다 스스로 '폐족'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허물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고 있다.
이번 파문은 '총체적 부실, 부정 선거'라는 조사 보고서의 단정과는 달리 지극히 정치적 문제였다. 부정선거 파문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 관행, 안일함, 비상식, 독선, 아집, 무능, 꾀 등…. 정치적 문제라는 것은 사법적 단정이 쉽지 않은 애매함을 가진 문제이고, 그 처리 역시 명징한 사법적 단죄가 내려지기 어려운 애매함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이정희 전 대표는 정치리더의 옷을 법복으로 갈아입고 문제에 대면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정의, 진실, 진정성 같은 비정치적 언어들만 쏟아져 나왔다. 이정희 전 대표는 공당의 명백한 실책을 진실과 거짓의 싸움으로 보는 듯 했다.
왜 이정희 전 대표가 정치적 판단과 해법을 버리고 변호사처럼 사법적 눈으로 대응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부실 부정선거 문제는 두 가지 면에서 정치적으론 명확하다. 첫째는 국민정치 차원에서다. 공당이 국민이 납득 못할 방식으로 공천을 했다는 점이며 공당은 이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둘째는 당내 정치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이면엔 그동안 당을 주도한 당권파의 당운영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와신상담 권토중래의 정치를 권장하는 제도이다. 이 말은 누구라도 야당이 될 수 있고, 언제라도 여당이 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들고 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일상이며, 이 지리한 과정에서 거품과 거짓은 거둬지고 실체와 진실은 드러나게 된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정희 전 대표를 둘러싼 당권파는 국민 앞에서는 야당 이외에 다른 것은 할 의사가 없는 듯 윤리적이고 운동적이었지만(삼대 세습, 북핵 문제 등에 대한 태도), 당내에서는 여당 이외에는 다른 것은 할 의사가 없는 듯 패권적이었다.
당권파는 야당할 각오를 하고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함께 지고 당권을 내려놓았어야 했다. 어떤 경우라도 이번 총선의 내용적 승자는 당권파이다. 누구도 손대기 어려운 지역구 당선자가 무려 4명이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물러난다 해도 절대 다수 의석을 보유하게 된다. 더욱이 비례대표 윤금순 후보의 의석을 물려받은 서기호 전 판사는 이정희 전 대표의 추천 몫이었다. 성남 일대에 막강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으며, 노동 쪽에도 '전국회의'라는 조직적 기반을 함께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정희라는 걸출한 대중정치의 재목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 판단과 해법이 빨랐다면 그만큼 당의 타격, 이정희 전 대표의 타격, 이른바 정파의 타격도 덜했을 것이다. 이미 좋은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 두려워 당내 야당이 되지 않기 위해 지금껏 몽니를 부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애초부터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의 싸움이 아니었다. 잠깐 물러나 숨고르기만 했어도 족했을 일을 벌써 몇 달째, 전 국민의 우환거리로 만든 상처는 "총체적 부실, 부정 선거"보다 훨씬 더 크다.
물론 상황이 여기까지 오는 데 모든 책임을 당권파에게, 이정희 전 대표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큰 힘을 가진 만큼 책임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가 타협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했다면 진즉 풀렸을 문제였을 수도 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축출과 분열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누구도 정당내부의 정치에서 다른 세력을 축출하기는 불가능하다. 당이 가진 어설픈 사법적 기능이 그걸 할 수 없고, 당권파 지지, 이정희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모두를 외과적으로 적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분열은 민주주의의 상수이자 조건이다. 이견을 조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정치의 한 측면이다.
나는 강기갑 전 대표가이 혁신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를 밀고 있는 이른바 정파 구조가 일관되게 혁신을 추진할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강기갑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이다. 왜, 그나마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1997년 겨울 나는 한 대기업의 직원이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같은 세력끼리의 자리바꿈이라고 비판했을 때, 정치에는 문외한이던 직장 선배가 말했다. "작은 변화도 4천만명에게 일어나면 큰 변화이고, 작은 변화도 회사직원 3만명이 곱해지면 큰 변화야. 정권 바뀐 뒤 조직이 바뀌는 것을 너는 느끼지 못하겠니" 나는 얼마 뒤 정권교체가 기업 조직내에 경쟁과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번엔 이른바 비당권 혁신파가 여당노릇할 차례이다. 그렇다고 당권파가 축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숨고르기 또는 권토중래를 예고한 와신상담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정희 전 대표에게 여전히 작지 않은 열린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녀가 좀 더 정치적일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