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도서관 생기니... "와이리 좋노!"

외서마을 도서관 드디어 문을 열다

등록 2012.07.16 11:23수정 2012.07.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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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농부의 모습,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아직까지 농부의 손에 책보다는 호미, 낫, 괭이가 더 익숙하다. 오천 년 농부의 역사가 그래왔고, 그 탓에 천하의 근본인 농사를 짓는 농부는 '무지렁이'라는 속된 말로 불려 왔다.


농사는 글과 말로 짓는 것이 아니다. 농사는 농부의 손과 발 그리고 땀으로 짓는 것이기에 농부에게 글이 적혀있는 책은 꼭 필요한 도구는 아니었다. 땅의 기운과 하늘의 변화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고, 듣고, 몸으로 일하며 체득했다. 농부에게 책은 없어도 농사짓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종이뭉치로 취급을 받았다. 또, 책은 배운 사람과 가방끈 긴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농부, 책 멀리하다 '무지렁이' 취급당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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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마을도서관의 책 기증 받은 3천여 권의 책들이 외서마을 도서관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 이종락


상주에는 도서관이 두 곳 있다. 상주 시내에 본관이 있고, 화서면 화령 중·고등학교 옆에 분관이 있다. 6년 전 상주로 귀농을 결심할 때, 면 소재지에 있는 도서관이 지역을 결정하는 데 꽤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단순한 육체노동으로 생활하는 농촌에서 도서관은 정신세계의 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해주고 있다.

아쉬운 것은 마을 주민의 이용률이 낮다는 것이다. 농번기에는 바빠서 그렇다고 해도, 겨울 농한기에도 발길은 도서관을 외면하고 있다. 실상 도서관 이용자의 대다수가 귀농자들이다 보니 '책이나 보는 귀농자들''귀농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등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음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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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도서관 개관 현수막 외서마을 도서관 개관을 알리는 현수막이 높게 걸려 있다. ⓒ 이종락


상주시 외서면 가곡리, 인구 1500명 면 단위 작은 마을에 낯선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 13일 오후, 장마 구름이 몰려다니며 한 차례 비를 뿌려대는 한여름에 외서초등학교 학생들의 길놀이 풍물소리가 마을 도서관 개관 행사를 알리고 있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인류 지혜의 보고' 도서관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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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놀이 풍물 외서초 학생들이 마을도서관 개관을 알리는 길놀이 풍물을 하고 있다. ⓒ 이종락


초록의 들녘을 배경으로 조그만 무대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마을 도서관의 문 여는 행사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인류 지혜의 보고'라는 도서관이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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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는 면장님 채영준 외서면장이 마을 도서관 개관을 축하하는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종락


살아온 인생의 계단만큼, 책을 대하는 애정만큼, 마을 도서관을 만나는 가슴은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채영준 외서면장은 "선비의 마을인 외서면에 작은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열어 주민 문화공간의 역할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많은 배움을 통해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축사를 했다. 이어 10개월의 긴 과정을 통해 마을 도서관을 탄생시킨 백승희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많은 분의 도움으로 시골 마을에 도서관을 열게 되어 기쁘다"고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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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식 작지만 행복한 도서관, 외서마을 도서관 현판이 마침내 세상과 인사하고 있다. ⓒ 이종락


개관식의 상징인 현판식이 진행되고, 형식적인 의례보다는 마을 도서관의 개관을 축하하는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간간이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 외서초등학생들의 풍물 한마당과 동요 연주, 이웃마을에서 건너온 귀농 가수의 부드러운 노래 선물, 내서중학생들로 구성된 난타 공연은 도서관 개관의 축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공연이 끝난 후 참가 주민은 도서관 운영위가 준비한 막걸리와 떡, 과일, 비빔밥을 먹으며 도서관 개관의 기쁨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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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공연 내서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난타공연이 개관식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고 있다. ⓒ 이종락


70대 마을 주민은 "우리야! 책을 안 보고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농사도 책을 자주 보는 사람이 잘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도 묻지 말라는 주민은 "귀농자들이 이런 좋은 일까지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6년간 시골에서 살다 보니 농사짓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귀농자가 무슨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면 연고로 뿌리 내린 사회에서 온갖 벽에 부딪힌다. 농사로만 살아온 농촌에서, 책 없이도 잘 살아 온 농촌마을에서 도서관을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수년간 빈 공간으로 방치되어 온 농업기술상담소 건물이 마을도서관으로 변신하기까지는 마을도서관을 꿈꾸어 온 귀농자과 주민의 헌신이 있었다.

관장이라는 직함 없이 7명의 운영위원이 도서관 탄생의 주역이 되었고, 그중 대표를 맡은 백승희씨(47)의 열정과 뚝심이 상주시 외서면 마을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빚어냈다. 10년 전 남편 이용선씨(47)와 상주로 귀농한 백승희 대표는 생태적이고, 소박한 삶을 고집하면서 지역의 교육문제와 관련해 꾸준한 활동해 온 지역의 일꾼이다. 대표라는 이름조차 서류상 올린 것이라며 어색해하는 그다.

관장이라는 직함 없이 7명의 운영위원이 공동 운영하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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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희 외서마을 도서관 대표 외서마을 도서관 개관의 주역인 백승희씨가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종락


다음은 백승희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마을 도서관 개관까지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지난 10개월의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물 공간 사용도 몇 차례나 가부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애를 먹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결과가 잘 돼서 기쁘다."

- 준비 과정에서 비용도 적지 않은 걸로 아는데...
"수년간 방치된 농업기술상담소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받은 것 외엔 모두 주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시설부터 개관식까지 약 450만 원이 들었는데 전부 지인들의 후원과 도움, 재능 기부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책도 화령도서관에서 기증받았고, 출판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3천여 권의 장서를 갖출 수가 있었다."

- 앞으로 운영이 현실적인 문제인데 특히 재정은 어떻게 꾸려나갈 생각인가?
"공공의 시설인 만큼 상주시에서 어느 정도는 지원을 받았으면 한다. 고맙게도 면장님과 시의원이 추진해서 전기, 난방 시설 예산으로 천만 원이 책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는 뜻있는 분들의 지속적인 후원이 가장 큰 힘이 될 것 같고, 목공, 기타, 바느질 등 다양한 강좌를 통해 보충하려고 한다. 희망 사항인데, 이용하는 주민이 일 년에 만 원 정도의 후원을 해줬으면 한다. 불 켜진 도서관을 위한 최소한의 참여라고나 할까?"

- 시골 도서관의 경우, 실제 마을 주민의 이용률이 저조하고 귀농자 중심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실제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다행히 오랫동안 마을 주민에게 요가 봉사를 해오고 있어 도서관 연계프로그램에도 많은 참여가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가능한 주민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함께 하는 도서관을 만들 계획이다."

- 도서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전남 곡성의 죽곡 마을도서관을 모델로 추진했다. 내가 사는 시골 마을이 10년, 20년 후 건강하고 의식 있는 문화마을로 거듭나기를 꿈꾼다. 도서관이 그 모태가 되도록 삶 속에 녹아나는 정말 행복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제 첫걸음이다. 무리하지 않고 능력 닿는 대로 천천히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마을도서관 개관의 총감독 역할을 맡은 백승희 대표는 행사 전반의 준비와 진행, 손님맞이로 인터뷰할 시간조차 쉽게 낼 수 없었다. 일만 하는 '무지렁이' 농부가 아니라 책 읽고 생각하는 농부 그래서 천하의 근본임을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그녀의 꿈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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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농부 마을 도서관 개관 기념을 축하하는 그림 선물, 농부가 잠시 나무 그늘 아래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다. ⓒ 이종락


관장 없는 도서관, 7명의 운영위원들과 마을 주민이 만들어 갈 외서마을 도서관. 장맛비조차 개관을 축하하는 아름다운 저녁이다. 상주시 한적한 시골 마을의 푸른 들녘에 새로운 도서관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깨어있는 농부가 세상을 살립니다.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농부도 책을 통해서 깨어납니다. 작은 시골마을의 도서관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깨어있는 농부가 세상을 살립니다.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농부도 책을 통해서 깨어납니다. 작은 시골마을의 도서관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마을도서관 #상주시 #외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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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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