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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로코' <신사의 품격>, 2030은 어쩌다 자리를 뺏겼나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현실 속 '삼포세대'의 불편한 진실

12.07.28 11:22최종업데이트12.07.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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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꽃신사 4인방'. ⓒ SBS


<신사의 품격>, 40대 로맨틱 코미디가 나타났다. 20대, 아니 30대는 다 어디로 갔나?

40대가 되었지만 장동건인 여전히 '잘 생긴' 장동건이고 로맨틱 코미디 역시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로맨틱 코미디를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잘 생긴' 외모 덕은 아니다. 우리의 드라마가 '변했다'.

장동건이 돌아왔다. 주름과 다크서클, 처진 볼이 약간 (아주 약간) 보이긴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장동건은 이름부터 '장동건'이지 않은가. 장동건은 우리나라에서 한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잘생긴 사람'의 카테고리 이름이다. 대한민국에서 장동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만명이 단 한명의 장동건 때문에 필요 없는 괄시와 연민의 눈빛을 받아 왔을 것이 분명하다.

<신사의 품격> 초반, 김은숙 작가 특유의 빠르고 리드미컬한 대사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한 것 같아 보였던 그였으나, 5회 이후부터는 꽤 성공적으로 '김도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실제 나이 41살. 극 중 나이 역시 40~41세를 연기하고 있는 장동건의 미모와 현실에 절대 없을 로맨틱한 연애에 감탄하며 우리는 <신사의 품격>을 본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장동건이 돌아왔다는 것만큼이나, 장동건이 달고 나오는 옷핀이 무지 비싸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 '40대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불꽃>처럼 '정통 격정 불륜 로맨스'도 아니고 주말드라마 곁다리 조연 40대들의 늦깎이 연애도 아닌,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로.

"그녀들이 비록 지금 더 어려보이긴 하지만, '대세 드라마'에 출연하고 흐름을 만들던 시기는 20대 초반이었다."

어쩌면 예상했던 순서이기도 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20대가 사라지고 30대가 대세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TV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은 20대였다. 김희선(과 김희선처럼 로맨틱 코미디를 독과점하던 90년대 여배우들을 생각해보자. 김희선이 <미스터Q>와 <토마토>에 출연했던 것은 겨우 22~23살 때였고, 김현주 역시 비슷한 나이가 전성기였으며, 송혜교가 <가을동화>에 나왔을 때는 겨우 스무살이었다!)

요즘 드라마를 보자.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굵직굵직한 임팩트를 남겼던 드라마 대부분이 30대 이상 배우들의 것이었다. 올해 들어 20대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드라마 중 <해를 품은 달>, <패션왕> 정도가 그나마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30대 배우가 등장하거나, 20대 배우가 연령에 상관없는 역할을 연기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제 40대까지 20대의 자리를 빼앗게 되었을까. 다양한 연예 산업적,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겠지만, 드라마의 영역에서만 보자면, 원인은 의외의 곳에 있을지 모른다.

SBS 주말드라마 <신사의 품격> 촬영 장면. ⓒ 화앤담픽처스


로맨틱 코미디의 전제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비현실적인 연애를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을 만큼 멋있는 레스토랑에 가야 한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자동차로 집까지 가야한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 있어야 남자 주인공이 혼자 셔츠를 입고 샤워를 하든 말든 간섭받지 않는다.

자, 지금 2012년의 20대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의 전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가? 뭐 굳이 주인공 자신이 레스토랑에 갈 수 없고 자동차가 없고 오피스텔이 없더라도, 그런 전제 조건을 충족해 줄 수 있는 '왕자님'(이라 쓰고 '팀장님'이라 읽는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는가? 게다가 요즘 드라마 트렌드는 '장르물'이다. 병원, 경찰, 법정 등을 소재로 하는 장르물 주인공은 전문직을 가져야 하고, 전문직을 연기하기엔 20대보다 30대, 40대가 적절하다.

"왜 연애가 아니라 취업이 20대 담론을 잠식한 것인가! 둘 다 못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으나 ASKY(안생겨요). 얼굴, 몸매 닮은 것 하나 없는 20대 연예인들과 나에게도 공통점이 하나는 있다. 우리는 모두 일자리를 잃고 있다!"

드라마 밖 '요즘 20대'는 여전히 김밥천국에서 밥을 먹고, 지하철 정기권을 끊어 다니고, 부모님께 얹혀살며, 심지어 대다수는 20대 중반까지 대학생일 뿐이다. 현실에선, 20대에 성공한 전문직이 된 이들은 신문에 나올 정도로 귀하다. 매번 캠퍼스물만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로맨틱 코미디는 이런 현실과 따로 놀 수는 없지 않은가. 레스토랑, 자동차, 오피스텔, 회사, 전문직을 위해서는 30대가 필요하다.

어차피 요즘 20대는 30대를 위한 '준비 기간'이자 '미완의 시기'. 로맨틱 코미디 같은 화려한 연애를 하기에, 20대는 '힘들다.' 비자발적인 삼포족(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삼포족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최근 드라마에서의 20대는 비루한 현실과 높은 꿈 사이에서 고민하며 찌질한 연애를 하거나(<메리대구공방전>), 자신보다 나이도, 형편도 나은 '어른'을 사랑 혹은 존경하는(<하이킥3>의 진희) 모습이 보인다. 이 모두가 과연 우연일까. 우리 드라마가 현실에 맞춰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MBC 일일시트콤 <하이킥!-짧은다리의 역습>에서 88만원세대로 등장하는 백진희. ⓒ MBC


20대가 힘든 것은 그렇고, 30대의 자리까지 40대가 넘보게 된 것은 <신사의 품격> 하나의 돌발일 뿐일까? 알고 보면 30대도 뭐 그다지 다를 것 없이 힘들다. 이제 겨우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혹은 여전히 무언가 준비 중인 30대가 태반이다.

팀장님, 본부장님으로 불리며 레스토랑, 자동차, 오피스텔, 전문직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재벌 3세로 태어나거나 재벌 3세 마음에 드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 이 불편한 진실을 포장해 보여주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도 알게 된 것이 아닐지.

30대가 되어도 여전히 화려한 연애는 힘들다. 하나 더해, 이제 우리 사회는 40대를 더 이상 늙고 지친 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농익은 나이, 진짜 인생을 알게 되는 나이. 혹은 여전히 솔로일 수도 있는 나이. ([경향]40대 싱글 4명 "경제적 안정 좇다보니…결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난, 40대 싱글]주거·패션의 싱글 산업 급성장)

"<신사의 품격>보다 먼저 건축사무소장 40대 남성을 등장시킨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주인공 조재희 소장이 제일 부러웠던 순간은 돈 걱정 없이 소고기를 먹을 때,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에 들어갈 때였다. <결혼 못하는 남자>가 우리보다 먼저 인구 구조의 변화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때, 이는 단순히 독특한 캐릭터의 문제가 아닌 사회 변화의 문제로 읽을 수도 있다."

▲ <신사의 품격> sbs 주말 드라마 <신사의 품격> ⓒ sbs


장동건은 드라마에서 자기 회사, 자기 직원, 자기 아파트를 가진 잘생긴 40세 건축사무소 소장님으로 등장한다.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졌지만 차와 오피스텔을 가진 20대, 본부장, 혹은 팀장인 30대보다는 현실적이다. 40대니까.

물론 '20대와 30대에는 힘들어. 하지만 나도 40대에는 저렇게 근사해질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성급한 예언을 하자면 장동건만큼 잘생긴 중년 배우가 50세의 로맨틱 코미디를 찍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40대가 되어서도 부모 품을 떠나지 않는 미혼의 캥거루족이 늘었고 30, 40대와 50, 60대 간 자산증가율 격차가 약 4배에 가깝다는 통계도 있다.

생각보다 '40대도 살기 힘들어'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어엿한 내 차, 내 집을 갖고 멋진 레스토랑을 다니려면 이제 50대는 가까워야 하는 것인지, 우리나라에선 '돈 없는 젊음'은 힘들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티스토리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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