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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22일 오후 4시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돼 전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 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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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취향과 가치관이 슬금슬금 바뀌는 걸 느낀다. 묵직한 록음악 보다 재즈나 팝을 찾게 되고, 꼬들꼬들한 라면보다는 푹 익힌 라면이 좋고, 내방에 쳐들어와 고주파 비명으로 나를 못살게 굴었던 꼬꼬마 사촌동생들이 내 자식(?)같아 보이는 그런 순간순간 말이다. 사람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고길동이 얼마나 아량이 넓은 인간이었는지, 둘리가 얼마나 사악한 공룡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을 때마다 그것을 느낀다.
그보다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절절이 느끼는 대목은 따로 있다. 세상을 순식간에 휩쓸고 또 순식간에 가버린 록스타들을 돌이켜 볼 때다. 굳이 예를 들자면 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같은?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학창시절, 나는 그들의 불꽃같은 삶이 마냥 멋있게만 보였다. 특히 커트 코베인! 중학교 3학년 때 너바나의 블리치 앨범을 접하고 그들의 일대기를 친구들에게 전해 들으면서부터다. 그 이후로 자연스레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게 은근슬쩍 내 인생의 꿈이 됐다.
네버마인드 같은 불멸의 역작을 하나 만든 뒤 TV에 나와 립싱크와 핸드싱크를 강요하는 가요순위 프로 무대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한 대에 몇 백 만원씩 하는 펜더 재규어 기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박살내는 퍼포먼스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펼치다 어느 순간 휙! 하고 세상을 뜨는 그런 꿈 말이다. 당시의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닌 짧고 굵은 인생의 날라리 로커였다는 사실을 아직 우리 부모님은 모르고 계시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의 생애가 불꽃같은 삶이 아닌 파괴적인 삶이었음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일까. 마치 고길동과 둘리에 대한 재조명처럼. 무대에서 난동을 부리고 관객들과 싸우고 집에 가서 마약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 결국 약물로 세상을 뜨는 인생.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셋 다 그렇게 요절했다. 아, 생각해보니 한 명이 더 있다. 작년에 세상을 뜬 에이미 와인하우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스물일곱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스물일곱이고. 딱히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뭐 그렇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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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유작 앨범. 라이오네스 히든 트레저.
ⓒ 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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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생애, 타락의 연속내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의 음악이 아닌 그녀의 생애였다. 내가 말한 록스타들의 생애가 불꽃이 아닌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다 느낀 그 무렵이다. 비록 록이 아닌 소울뮤지션이었지만 그녀 역시 앞서 요절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5관왕이라는 기염을 토했던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녀는 참석할 수 없었다. 미국정부가 약물중독을 이유로 입국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영국의 스튜디오에서 수상 소감을 전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그녀의 최대 히트곡은 재활원을 뜻하는 리햅(Rehab)이었다.
20대 초반에 그녀는 이미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여러 차례 재활원 신세를 졌다. 성인이 된 이후 겪은 그녀의 첫 실연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후 에이미와 결혼한 블레이크 필더-시빌과 약물을 함께 복용하면서 그녀의 타락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서 직원을 폭행해 유죄판결을 받기도, 동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이 알려지면서 아시아 팬들에게 분노를 사기도 했다. 연인인 블레이크와의 몸싸움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 둘의 타락을 가장 걱정한 이들은 가족이었다. 블레이크의 아버지는 에이미와 블레이크의 위태로운 관계가 폭행이나 동반자살로 이어질까 두려워 그녀의 앨범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일 정도였다. 참 다행스럽게도(?) 이 둘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잠시 바람을 핀 것이 알려져 결국 이혼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타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시작한 유럽 투어에서는 술에 취해 무대에서 횡설수설하고 마이크를 떨어뜨리고 가사를 잊어버려 웅얼대는 등의 추태를 부리다 무대를 벗어나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후 계획 된 모든 투어가 취소됐고 소속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지금은 없는 타락한 공주에게어떻게 이렇게 대책 없이 오락가락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간략히 정리를 하는 나도 머리가 아픈데 그녀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불멸의 역작을 만든 주인공, 망가진 연인관계, 각종 사건사고, 끊임없는 약물중독 스물일곱 살의 요절. 그녀의 삶은 영락없이 커트 코베인을 빼닮았다. 그녀가 왜 커트처럼 파괴적인 삶을 택하게 된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그리고 이따금 그녀의 철없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커트도 에이미도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것을 멈추지 못했을까. 그들의 죽음도, 그들의 죽음이 철없는 것임을 아는 나도 왠지 서글프다. 그와 그녀의 죽음이 이제 전설이나 환상으로 보이지 않음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내 꿈이 늙어버린 것 같은 서글픔을 느낀다.
내 꿈은 언제부터 이렇게 늙어버린 것일까. 이제 졸업을 앞둔 나이인데, 내 꿈은 왜 이리도 빨리 늙어 버렸는지. 언젠가부터 악기를 잡기보다 스펙 쌓기에 눈을 돌리게 된 나는 지금도 록스타를 꿈꾸고 있는 건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나는 기계적으로 침대에 눕는다. 아, 이게 뭐하는 삶인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그녀가 죽은 지 오늘로 이제 1년이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민폐형 뮤지션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굵고 짧은 삶 한 방 살다 가버리면 본인은 영원히 '레전드'로 남을지 몰라도 그걸 지켜보는 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짊어져야 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그와 그녀를 동경했던 많은 이들 역시 말이다. 아무리 자기 멋에 사는 인생이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젊은 뮤지션의 죽음으로 한숨을 쉬는 케이스는 이제 그녀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부디 하늘에서만큼은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잘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