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26일 오전 11시] |
| ▲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오는 동안 사진을 찍으려하자 부끄러워하는 어누구룽. 네팔에는 열차가 없다. |
| ⓒ 오문수 | |
다친 발을 고치고 취직해서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는 것이 네팔 처녀 어누구룽의 평생소원이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서 발 치료를 받게 됨으로써 소원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
23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네팔처녀 어누구룽은 25일(수)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 받기 위해, 기차와 비행기를 처음 타 봤다. 고향인 치트완과 카트만두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으로 구경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하는 어누구룽. 그녀는 현재 네팔 치트완 대학교 영문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녀가 한국에 들어와 평생소원이던 발 수술을 받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기자가 생명누리 인디고 여행학교 학생들과 50일 동안 인도 네팔을 여행하던 중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그녀의 딱한 소식을 듣고 <오마이뉴스>에 보도한 것이 발단이 됐다 (
관련기사: "혼수 적게 해가면 구박, 심지어 맞아 죽기도"). 그녀의 소식이 알려지고부터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서울아산병원 발 기형부문의 최고 전문 의사들이 무료수술을 해 주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녀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은 여수에서 근무하는 네팔인 노동자 알킬, 여수이주민 센터 박용환 소장과 함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도 일조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전남지사장 문기표씨의 설명이다.
"지역 유관기관이나 NGO들과 연계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꿈의 실현과 행복한 귀환을 기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공공기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입니다."모든 게 신기해서 설레고 잠 못 이뤄...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인천공항에서부터 서울로 들어오는 모든 길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고 하는 그녀는 피곤함을 못 이겨서 전철에서는 꾸벅꾸벅 졸았다. "꿈에 그리던 한국에 간다고 생각하니, 이틀 밤이나 잠을 못 이뤘다"는 그녀였다.
"한국말 배우기가 너무 어렵다"는 그녀가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걸 보고, "처음 보았을 텐데, 어떻게 사용법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봤어요"라고 대답했다. 네팔도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네팔 여인들은 남편을 신처럼 모시고 산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 자고 있어도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결혼할 때,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은 남편을 신처럼 모시겠다는 의미다.
장애가 있거나 가난한 집 안의 처녀들은 시집 가기가 더 어렵다. 시집갈 때, 여자가 시댁 식구들을 위해 금이나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TV와 냉장고도 준비해야 한다. 결혼식이 있으면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데, 음식도 모두 여자 쪽에서 부담한다. 그러니 네팔에서 딸을 결혼시키려면 큰 빚을 져야한다고 한다. 만약, 혼수를 적게 하면 남편과 시어머니한테 구박을 당하거나 심지어 맞아 죽기도 했다. 어누구룽이 수술을 받아 정상인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취직하면 그녀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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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직전의 어누구룽. "겁난다"고 한다 |
| ⓒ 오문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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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살적 교통사고로 발을 다쳤으나 카트만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외국으로 가야한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돈이 없어 방치해 기형이 됐다. 15년전의 사고로 굳어진 부분이라 어려운 수술이라는 담당의사의 전언이다 |
| ⓒ 오문수 | |
경찰이었던 할아버지(82)의 연금 20만 원과 이웃에서 간헐적으로 생기는 일감이 생기면 벌어오는 어머니 품삯과 이모부가 가끔씩 대주는 생활비가 전부다. 그러나 그녀는 방과후 수학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은 없다.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만해서인지 공부는 줄 곧 일등만 해왔기 때문이다. "수술이 겁난다"고 말하는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겪었던 신체적 결함에 대한 콤플렉스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15년 전에 다친 발이라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라는 게 담당 교수의 전언이다. 그녀의 꿈이 이뤄지길 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 '생명누리 공동체'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