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리석은 건 '파충류의 뇌' 때문이야

[서평] 이용범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등록 2012.08.06 10:07수정 2012.08.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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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창

경제에 관한 책들은 펼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복잡하면서 무겁게 전개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면서 폼 잡고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경제가 뭔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경제'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거 아닌가.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는 것도, 할인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사는 것도, 옷가게에 가서 옷을 사는 것도, 은행에 가서 적금을 드는 것도, 전자상가에 가서 TV를 사는 것도, 집을 팔고 사는 것도 다 경제행위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어렵고 보다 복잡하게 이론을 만들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이들이 경제학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경제관련 전문용어는 하나같이 왜 그리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불가인지.

그래도 요즘은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책들이 많이 늘었다. 경제용어를 쉽게 풀이해주거나, 경제 행위를 보다 쉽게 풀어서 알려주려고 한다. 그렇더라도 '경제'라는 용어가 들어간 책을 선뜻 집어 들어 그것도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불가인 대목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한데 이용범의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우리 경제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우리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다양한 상황이나 현상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해서 경제가 어렵고 머리가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그뿐인가. 경제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바로  소비자인 '나'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물론 다 읽고 난 뒤의 입맛은 쓰다. 결국 소비행위의 중심에 서 있으며 경제행위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인 '소비자'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으며 어리석기 짝이 없고 욕망에 충실한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건 결국 소비자인 '나'가 바보라는 의미가 아닌가. '봉'이기도 하고.

생각해서 고로 존재하는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런 존재가 다수인 시장이 합리성에 의해 움직일 리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어리석은 대중들은 그러할지 몰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나만은 상당히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을 할 것이며, 어리석은 대중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자만했으나, 결론은 나 역시 대다수의 소비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대중'에 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진화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시장을 지배한다는 파충류란 녀석은 대체 누구냐'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을 하는 터라, 그런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시장은 단지 그들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하면서 오로지 생존본능을 중심으로 진화해온 인간들이 그 중심에 있다고나 할까. 결국 파충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혹은 나일 수밖에 없다는 건데, 왜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는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안에 있다.

하나 힌트를 주자면 '인간의 뇌 일부는 파충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란다. 인간은 오랜 기간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로 진화를 해왔는데, 그 일부는 파충류에게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일부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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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창


시장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어디쯤에서 어떤 소비행태를 지향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다면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을 권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본인의 몫이겠지만.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여러 권의 경제관련 서적을 출간한 저자는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경제 이야기를 빼어난 글 솜씨로 잘 풀어냈다. 가끔은 킬킬거리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가끔은 내가 수학천재라는 환상에 빠지게도 하고, 이 책에서 인용한 이런저런 실험에 내가 참가했다면 어느 쪽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별로 없고 가끔은 경제관련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까지 잊게 만든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뒤 내린 결론은 이 책은 경제관련 서적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심리를 심도 깊게 파헤친 심리학책으로 분류해야 된다는 것이다.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 경제학자들이 말하지 않는 시장의 진실

이용범 지음,
유리창, 2012


#파충류 #이용범 #경제 #시장 #유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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