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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황정민과 조정은 매력 드러났다

캐릭터 개성 잘 표현한 <맨 오브 라만차>, 두 배우의 장점은?

12.08.22 21:17최종업데이트12.08.2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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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로 국내에 초연된 뒤, 2007년, 2008년, 2010년 세 번이나 재공연됐던 작품이 올해 <맨 오브 라만차>(프로듀서 신춘수, 연출 데이빗 스완)로 돌아왔다.

2012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캐스팅을 보자. 우선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로는 뛰어난 연기로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배우 황정민, 뮤지컬계에서 신뢰감 있는 배우로 인정 받는 서범석, 최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급부상한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트리플 캐스팅으로 출연한다.

또한 알돈자 역은 초연을 비롯해 2010년에 알돈자 역을 연기했던 이혜경과 지난 해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정은이 더블 캐스팅됐다. 산초는 지난 작품부터 변함없이 참여해온 이훈진이 함께했고, 새롭게 이창용이 가세해 역시 더블 캐스팅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배역진, (사진 왼쪽부터) 서범석, 이혜경, 황정민, 조정은, 홍광호 ⓒ 김민관


조정은, 새로운 매력으로 호소했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쓴 '돈키호테'를 들려주는 극중극 형식이다.

우선 조정은이란 배우를 놓고 보자. 그녀는 뮤지컬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조승우, 최재웅과 계원예고 동창이다.

세 배우는 모두 뮤지컬계 스타로 성장했다. 특히 조정은은 특유의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왔던 배우. 그녀의 이런 면은 동시에 <맨 오브 라만차>에서 거친 이미지의 알돈자를 그녀가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우려도 들게 한 건 사실이었다.

조정은은 자신을 희롱하는 노새끌이들을 거칠게 제치고 걸어가며 '다 똑같아'라는 넘버를 소화했다. 뮤지컬의 첫 등장에서 있는 힘껏 거칠게 남자들을 밀치는 모습은 알돈자의 거친 인생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조정은은 거친 동작들로 인한 호흡을 고스란히 노래의 발성으로 바꿔냈다.

돈키호테가 알돈자에게 '사랑스러운 여인'이란 뜻의 둘시네아(스페인어)로 불러주기 전까지 그녀는 단지 비루한 일상을 거칠게 겪어내며 천한 자신의 처지를 그저 수용할 뿐이었다.

조정은은 '내게 뭘 원하나'란 넘버에서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코끝에 발성을 두고, 감정을 확 터뜨리지 않고 불렀다. 여기에는 마음을 졸이며 돈키호테로 인해 혼란스러운 내면이 잘 드러났다.

극중에서 조정은이 갖는 '알돈자'와 '둘시네아'란 이름엔 현실의 비루한 처지와 환상이라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조정은은 그 사이를 넘나들며 긴장감 있게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알돈자 역의 조정은,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프레스콜 장면 ⓒ 김민관


돈키호테 역의 배우 황정민(오른쪽)과 산초 역의 배우 이창용,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프레스콜 장면 ⓒ 김민관


현실에 맞서는 의지의 기사, 황정민의 돈키호테

작품 초입에 등장하는 '맨 오브 라만차'란 넘버는 "운명이여 내가 간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돈키호테와 "어디든 끝까지 따르리"로 그를 우직하게 보필하며 또한 맹목적으로 따르는 산초(이훈진 분), 그 두 인물의 다른 관점을 하나에 녹여내는 곡이다.

무모하고 이상만을 바라보는 돈키호테와 그를 보좌하는 산초. 그 둘이 삐걱거리는 말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은, 결코 그 여정이 평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황정민은 대사의 호흡을 끊지 않고 바로 이어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둘시네아'라는 곡을 소화했다. 뮤지컬 넘버를 위해선 훌륭한 가창력 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배우로서 발성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 와도 평화롭게 되리 ……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 <맨 오브 라만차> '이룰 수 없는 꿈'

이상은 돈키호테가 현실을 초극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플라톤의 현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개념은 이데아와는 달리, 돈키호테에게 이상은 현실의 다른 이름이고, 무엇보다 거기에 이르는 결단과 행동이 요구된다.

산초 역의 배우 이훈진,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프레스콜 장면 ⓒ 김민관


돈키호테가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로 이해하는 장면은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돈키호테의 전복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풍차를 적으로 오인해, 풍차를 향해 돌진하다 쓰러지는 돈키호테의 모습에서는 우스꽝스럽기보다 오히려 어떤 숭고함마저 든다.

왜일까. 이 광기의 돈키호테는 두려운 현실 앞에 무릎 꿇고 말거나 남들의 시선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마는 우리의 일상과 대조적인 삶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극적 캐릭터를 배우 황정민은 자연스럽게 자신 안에 녹여냈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평생 빈곤하고 평단의 인정을 받지못한 비극적 삶을 산 작가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돈키호테를 황정민이 제대로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돈키호테의 무모한 여정에 짙게 깔린 죽음의 그림자는 황정민의 풍부한 표정과 어우러져 극적 느낌을 강화했다.

돈키호테 역의 배우 황정민,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프레스콜 장면 ⓒ 김민관



상처를 딛고, 삶의 의지를 되찾는 두 인물...<맨 오브 라만차>의 힘

돈키호테는 무모하게 풍차에 뛰어들었고 그로인한 상처도 입었다. 상처가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흔적으로 인간을 옥죄기도 한다. 이런 두려움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보통의 사람들에 해당하는 문제일 수 있다.

돈키호테에게 이상은 현실의 어려움이나 비루함을 감추는 마약과도 같다. 그 마약이 이 무모함을 허용하고, 또 운명에 맞설 힘을 주는 것이다. 반면 광기가 풀린 돈키호테에게 현실은 험한 모습이다. 그의 사랑인 알돈자가 노새끌이들에게 유린을 당한 후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체감하는 것과 같이, 거울의 기사들을 통해 자신의 늙은 모습을 확인한 것과 같이 말이다.

초라해진 돈키호테를 찾아온 알돈자는, 둘시네아로 자신을 부르던 돈키호테의 기억을 깨우고자 한다. 알돈자의 애절함이 더해지며, 강한 신념의 돈키호테가 아련해지는 가운데, 돌연 분위기는 바뀐다. 죽음이 오던 순간에서 돈키호테는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무모했지만 위대했던 돈키호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상은 지난  8월 1일 본 공연이었다. 커튼콜에서 땀에 젖은 얼굴로 다시 등장한 배우들은 작품의 감동을 관객과 느꼈다. '배우 나부랭이'로 자신을 표현했던 배우 황정민의 얼굴엔 말 못할 감동과 또한 스스로에게 공을 돌리지 않는 겸손함이 드러나 있었다.

[공연 개요]

공연장 : 서울 샤롯데씨어터
공연기간 : 2012년 6월 22일 ~ 10월 7일
공연시간 : 평일 8시 / 수 3시, 7시 / 토 3시, 7시 30분 / 일, 공휴일 2시, 6시 30분 (월요일 공연없음)
티켓가격 : VIP석 13만원 / R석 11만원 / S석 8만원 / A석 6만원
관람시간 : 2시간 50분 (인터미션 포함)
프로듀서 : 신춘수
연출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출연 :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 이혜경, 조정은, 이훈진, 이창용 외
주최 : 롯데엔터테인먼트, SBS
제작 : ㈜오디뮤지컬컴퍼니,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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