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바가지' 엄청 긁혔겠구만

[서평] 고도의 일상과 역사에 관한 서사 <섬문화답사기>

등록 2012.08.20 11:30수정 2012.08.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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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 중의 절경 홍도 ⓒ 임윤수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연상될 만큼 뻔해 보입니다. '미쳤다'라는 말 좀 들었을 겁니다. 바가지도 적잖이 긁혔을 법합니다. 자의건 타의건 섬사람들 신세도 졌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고, 바가지를 긁히지 않았다면 아예 포기된 남편이거나 무늬만 부부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장이 서는 곳마다 쫓아다는 장돌뱅이 마냥 20년 동안 이 섬 저 섬을 찾아다니는 '섬돌뱅이'로 살았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거고, 집식구에게 '바가지' 정도 긁히는 건 필연이라 생각됩니다.  

남도의 섬 460개를 담고 있는 <섬문화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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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화답하기>신안편 표지 사진 ⓒ 보누스

김준 지음, 보누스 출판의 <섬문화답사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바가지'를 긁히는 저자의 일상입니다. 

그 세월 동안, 이 정도의 섬을 돌아다니며 이런 정도의 책을 엮어 낼만큼 이 섬 저 섬을 싸돌아다니며 살았다면 안 봐도 본 것처럼 연상되는 너무도 뻔한 모습입니다.

섬을 답사한다는 건 산이나 도시를 여행하거나 답사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바람이 불면 발이 묶이고, 여차하면 예정에 없이 하루나 이틀쯤은 하릴없이 머물러야하는 걸 각오해야 하는 게 섬을 찾는 발걸음이며 마음입니다.

<여수·고흥 편>과 <신안 편> 2권으로 되어 있는 <섬문화답사기>는 전남 발전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는 김준 박사가 30대와 40대, 20년 동안 두발로 누빈 섬과 그 섬에서 만난 섬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섬문화답사기>는 저자 김준이 한국에 있는 3300여 개의 섬 가운데 460여 개의 유인도를 20년에 걸쳐 낱낱이 누비며 샅샅이 기록한 장편의 답사기이자 인문학적 보고서입니다.  

섬을 소재로 한 서사시이자 서정시

<섬문화답사기>에는 섬의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닙니다. 지형학적 사실, 풍광, 변천사를 동반한 역사, 전설과 설화는 물론 섬사람들이 풍속과 가슴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애환이나 가족사까지도 골고루 담겼습니다. 섬의 역사를 닮고 있는 서사시이자 섬사람들의 삶을 간추리고 추슬러서 빚은 서정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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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 중의 절경 홍도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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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 중의 절경 홍도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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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는 배에서 인절미처럼 썩썩 썰어 먹는 어절미가 최고입니다. ⓒ 임윤수


상 위에 올라온 홍어는 선홍빛이다. 젓가락에 찹쌀떡 마냥 착 달라붙었다. 찰진 기운이 느껴진다. 어제까지 수심 80미터 깊이에서 유영을 하던 녀석이다. 흑산도를 처음 방문한 일행들은 코가 뻥 뚫리는 홍어맛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생뚱맞은 표정을 이해했다는 듯 김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산포 사람들이 썩힌 홍어 먹제 여기 사름들은 싱싱한 홍어를 더 좋아해라." 진정 홍어맛을 즐기려면 초장도 거부한다.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야 한다. 미네랄이 풍부한 전라도의 갯벌천일염에 참기름을 두르고 찰진 붉은 홍어를 살짝 찍어 막걸리를 쭈욱 들이키고 오물오물 홍어를 맛보면 달착지근하면서 쫀득쫀득 달라붙은 홍어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신안편 28쪽 -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와 '홍어'로 널리 알려진 흑산도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흑산도 사람들은 젓가락에 찹쌀떡 마냥 착 달라붙는 싱싱한 홍어를 즐겨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영산포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막혔던 코를 뻥 뚫어지게 하는 '썩힌 홍어'니 홍어의 진미는 아무래도 흑산도에서 먹을 수 있는 싱싱한 홍어가 될 듯합니다. 

필자도 흑산도와 홍도엘 3차례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갔던 20여 년 전의 홍도는 '한 바가지의 물'과 '고도의 절경'으로 기억됩니다. 숙박시설은 뭍의 허름한 여인숙만도 못했고 한 바가지의 물로 세면과 양치까지를 다 해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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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아슬아슬하게 얹혀있는 바위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궁급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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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에서 본 이 바위 아직 그대로 있을까 궁금합니다. ⓒ 임윤수


머리 감기는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불편했지만 고깃배를 개조한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는 홍도는 갈 때마다 둘러봐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절경 중의 절경이었습니다.

경이로울 정도로 맑은 바다, 신비로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기암, 바다와 기암이 조화를 이루는 묘한 절경은 보고 또 봐도 경이롭고 신비로울 뿐입니다. 바람이 불면 금방 툭하고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얹혀있던 바위는 아직도 그대로인지 궁금해집니다.

하나하나의 섬마다 갖고 있는 특색,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섬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섬의 역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하나하나의 섬을 소개하는 꼭지의 글마다 일반현황, 공공기관 및 시설, 여행정보, 30년 변화자료가 부록처럼 표로 들어가 있어 섬에 대한 정보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습니다.

흐느낌처럼 담긴 섬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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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현대화 된 섬마을 ⓒ 임윤수


섬 하나하나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풍어제를 올리는 모습이 흥청댑니다. 고도의 기암, 고달프고 고단한 섬사람들의 삶, 과거의 섬에서 현재의 섬으로 이어지는 흥망성쇠, 애달픈 가족사가 비망록처럼 빼곡합니다.     

태도사람들은 생필품을 어떻게 구했을까. 직접 배를 타고 뭍으로 가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역, 김, 톳, 세모 등 해초나 생선을 보낼 때 필요한 생필품 목록을 보내면 사서 배편으로 보내왔다. 이를 소청기라 했다. 객주나 상고선에 의존했다.

목포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로부터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객주집에서 돈을 가져다 쓰게 했다. 선이자가 5부였다. 미역이 나오면 객주에게 물건을 보내 팔아서 빚을 제했다. 객주 좋은 일만 시켰다. 수수료에 이자, 그리고 미역값도 객주가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이자가 이자를 낳고 빚더미에 허덕이다 집도 넘어가고 섬을 떠나기도 했다. - 신안편 태도 110쪽 -

하지만 '돈섬'이라는 말은 옛날 말이고 지금은 '빚섬'이라 했다. 당사도 어민들이 김양식을 하면서 진 빚이 신안농협 송산지소(안좌) 빚만큼 될 것이라며 걱정을 했다. 마을규모가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도 빚 때문이라고 했다. 반자동으로 김양식을 할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완전기계화가 되면서 규모가 커지고 물자를 구입하는 자본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김값은 옛날하고 똑같았다. 당시 김 한 속 값이 지금도 그대로이니 물자는 모르고 김값은 똑같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손으로 가공을 하던 시절에 '돈섬' 주민들이 목포에 샀던 집은 기계를 구입하면서 진 빚으로 팔아넘기고 도시로 나가야 했다. - 신안편 당사도 4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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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한 흑산도 길 ⓒ 임윤수


섬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하듯이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빚더미에 허덕이다 삶의 터전인 섬을 떠나는 사람들 뒷모습이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하는 실루엣으로 그려집니다.

더 편하고 잘 먹고 살기 위해 한 자동화와 기계화에 '돈섬'에서 '빚섬'이 되었다는 당사도의 현실은 점점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주소이며 미래의 자화상으로 그려집니다. 

<섬문화답사기>에서는 태고의 전설이라고 해도 좋은 섬의 옛날모습부터 우주센터로 변모한 나로도, 얼마 전 막을 내린 여수엑스포가 치러진 여수의 오동도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오늘의 섬 모습까지를 샅샅이 아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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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에 있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 임윤수


뭍사람들 중에는 섬에 대한 환상을 갖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환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지만 여지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섬사람들의 폐쇄성과 거친 행동들이 이유다. 섬이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최소한 섬의 속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분명 섬과 섬사람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 여수·고흥편 8쪽, 도서별곡을 시작하며 중 -

<섬문화답사기>에는 구경꾼처럼 지나치듯 눈으로만 보는 섬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섬이 있습니다. 흐느낌 같은 사연이 느껴지고, 여인네의 속살처럼 꼭꼭 감춰져있는 섬의 신비로움이 느껴질 것입니다.

저자의 집념과 섬사랑이 '미쳤다'는 표현으로 연상되고, 섬에서 느끼는 느낌 너머에서 바가지 긁히는 소리가 아른댈 쯤이면 460개의 섬, 460개의 섬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남도의 섬을 그리고 있는 '섬 대동여지도'로 가슴과 머리에 또렷하게 그려지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섬문화답사기-신안편>┃지음이 김준 ┃펴낸곳 보누스┃2012. 7. 31┃값 2만8000원┃
<섬문화답사기-여수·고흥편>┃지음이 김준 ┃펴낸곳 보누스┃2012. 5. 15┃값 2만5000원┃


덧붙이는 글 <섬문화답사기-신안편>┃지음이 김준 ┃펴낸곳 보누스┃2012. 7. 31┃값 2만8000원┃
<섬문화답사기-여수·고흥편>┃지음이 김준 ┃펴낸곳 보누스┃2012. 5. 15┃값 2만5000원┃

섬문화 답사기 2권 세트 - 전2권 - 여수 고흥편 + 신안편

김준 지음,
서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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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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