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묶은 후 세균폭탄...'악마를 보았다'

[공정여행- 여름 만주를 가다 3] 하얼빈 중앙대가와 731부대 유적지

등록 2012.08.25 21:25수정 2012.08.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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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중앙대가는 1900년대 러시아양식의 건물들이 그때 그대로 보존돼 있다. ⓒ 신정임


<정글의 법칙>엔 병만족이 있다면 공정여행엔 공정족이 있다. 여름만주 여행엔 18명의 공정족이 함께 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년의 부부까지 여러 세대가 모였다. 지난해 공정여행에 참가했던 부모가 10대의 두 딸만 보냈는가 하면 결혼 16년 만에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온 주부도 있었다.

여행 참가 이유도 제각각이고, 사는 곳도 울산, 전주, 수원 등 골고루 흩어져 있다. 겉으로 보면 딱 모래알인데 공정족의 속살은 어떤 진흙보다 차졌다. '공존'을 키워드로 삼는 여행에 참가한 사람답게 다들 남을 먼저 배려했다. 그 마음 따뜻한 길벗들 덕분에 여행길 위에 튼튼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의 집이 지어졌다.

동네에서 춤추는 중국인들... 저녁이 있는 삶,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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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에서 러시아빵을 파는 '1906' 가게. 중앙대가는 역사를 파는 거리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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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건물들에 나이키, 퓨마 등 다국적 기업의 매장들이 들어서 있다. 역사를 먹고 있는 자본주의 괴물을 보는 듯하다. ⓒ 신정임


첫날 저녁, 공정족들은 하얼빈의 중앙대가로 나섰다. 얼마나 큰 길이기에 '대가'라고 부를까. 1km가 넘는 상업거리다. 명동이 "형님"하고 부르겠다. 100년도 더 된 길인데 바닥 돌이 그때 그대로다. 근처에 있는 송화강에서부터 끌고 온 돌을 2~3m씩 땅을 파서 심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 양식의 건물 70여 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하얼빈이 '동방의 모스크바'라고 불리는 데 한몫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유럽의 거리가 이렇지 않을까. 고풍스러움이 전해진다. '1906' 간판을 단  러시아빵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역사를 파는 거리다.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1922'라고 쓰인 건물에 나이키, 퓨마 등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과거와 현대의 만남이라고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세계 곳곳을 먹어온 자본주의 괴물이 하얼빈의 과거까지 삼켜버리는 동화가 그려졌다.

아무렴 한국만 할까. 두어 달 전 처음으로 ITX-청춘 열차를 타봤다. 젊음의 추억을 되새길 틈도 없이 고속열차는 쏜살같이 춘천에 닿았다. ITX-청춘 열차는 내 20대 청춘을 그대로 담아둔 강촌, 대성리도 지나쳐갔다. 사람들로 가득 찬 비둘기호 바닥에 앉아 역마다 다 서는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깔깔거리며 그곳들로 대학 때 MT를 갔더랬다.

그런데 춘천까지 수도권 전철이 놓이면서 새 역사들이 들어섰나 보다. 크고 번드레한 역사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옛 역사는 사라질 운명, 옛 대성리역사는 이미 철거됐다. 옛 강촌역 근처는 레일바이크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 중이라고 쳐진 강촌역 바리케이드에 내 청춘이 박제된 기분이었다. 우리 주변엔 어떤 괴물이 있기에 이리도 옛것을 묻어버리려고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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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의 한 거리에서 댄스스포츠를 즐기는 중국인들. 중국에서는 여름이면 밤마다 동네 곳곳에서 체조와 춤추는 무리들을 볼 수 있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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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밤, 중앙대가에서 춤을 즐기고 있는 중국인들. ⓒ 신정임


거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를 상념에서 깨운다. 중앙대가 한 골목에서 손을 맞잡은 남녀들이 댄스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화려한 댄스복은 없었다. 헐렁한 남방을 입은 아저씨들이지만 몸놀림만은 물찬 제비 같다. 동작도 제각각이다. 다만 음악과 춤을 즐길 뿐. 짝을 못 찾았는지 할머니 두 분이 서로 빙그르르 돌리면서 팔을 위로 쭉 뻗는다. 청춘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중국인들은 달밤에 체조를 즐기나 보다. 중앙대가로 오는 곳곳에서 체조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도 저녁마다 동네에 모여 이웃끼리 손을 잡고 댄스스포츠를 추면 어떨까. 이젠 옛말이 된 '이웃의 정'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야근 없이 퇴근부터 해야 할 텐데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에겐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린다.

여행 고수의 체력관리 비법은 장동건의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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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의 아침 거리 모습. ⓒ 신정임


첫날밤은 하얼빈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별이 세 개 있기는 한데 호텔 주인이 그냥 갖다 붙인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비도 안 오는데 로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침실 역시 단출했다. 싱글 침대 2개와 샤워부스, TV 등이 놓인 탁자, 에어컨이 전부. 그 역시 봐 넘길 수 있지만, 샤워부스가 문제였다.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샤워부스는 투명했다. 오늘 처음 만난 이와 용변 보고 샤워하는 모습을 공유해야 할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게다.

난처함에 나와 함께 서로 얼굴만 바라보던 이는 거제에서 온 윤 선생님이었다. 방학 때여서 그런지 공정족엔 교사가 많았다. 중학교 역사 선생님인 그녀는 여행 갈 데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공정여행을 발견하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신청을 했단다. 급히 결정해서 같이 올 사람도 물색을 못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녀 덕분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그녀는 여행의 고수였다. 해외 여행을 많이 가봤나 보다. 유럽, 터키, 백두산 등 가본 곳이 줄줄이 나온다. 그녀가 노란 알약을 내밀었다.

"이게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이 물에 타 먹던 비타민이에요. 여행 중에 기력이 빠지면 안 되니까 먹어둬요. 유럽여행 갈 때는 생전 먹지 않고 쟁여뒀던 홍삼액도 챙겨가서 먹었어요."

역시 고수답다. 여행에도 체력이 중요하다는 말씀. 알약을 물에 넣자 금세 노란 물이 된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시큼하다. 나머지도 한 번에 꿀꺽했다. 윤 선생님이 피곤하다며 침대 위에 누웠다. 그 모습을 보고 후다닥 옷을 챙겨 들고 샤워부스로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부스 아래 부분은 불투명 유리여서 완전히 적나라하지는 않았다. 호텔 주인도 생각이 있었겠지. 근데 커플끼리 오면 이 불투명 유리를 아쉬워하려나. 은밀함에 환호하려나. 19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씻었다.

한국을 떠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도 건조했던 일상은 잊히고 낯선 풍경들이 날 흥분케 했다. 다른 공정족들도 마찬가지. 우리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밤마실을 나섰다. 하얼빈에서 유명하다는 꼬치 습격작전이다. 길거리에 테이블을 내놓은 술집 바깥을 점령했다. 접시에 수북이 쌓인 양꼬치가 나오고 따로 오이, 감자 안주도 시켰다. 기름에 볶은 오이와 감자는 술안주보다 밥반찬 같았지만 짭조름한 맛에 먹었다. 여름 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맥주가 있으니 그걸로 만족.

술자리 화제는 선생님도 많고 학부형도 많으니 아이들 교육 문제가 단연 으뜸이다. 

"거기 학교는 보충수업 몇 시까지 해요?"
"애들이 어려서부터 공부에 시달리는 거 보면 안쓰러워요."
"그래서 우리 애는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대안학교에 보냈는데 정말 놀기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스스로 즐거워하니까 다행이죠."

학교가 학교로서 대안이 되지는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선생님들이 옆에 있어 든든했다. 하얼빈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인간의 잔학함을 드러낸 731부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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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유적지. '침화일군제731부대유적'이라고 써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731부대 유적지라는 뜻이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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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전시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관람객들. ⓒ 신정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 6시도 안 됐다. 낯선 곳에서의 취침에 몸이 긴장한 걸까. 생각해보니 하얼빈은 한국보다 표준시가 1시간 늦다.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일관성이 있는 내 몸이 기특하다. 그나저나 한국은 7시로 가고 있겠다는 깨달음에 꼭 1시간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시간도둑 이야기를 담은 소설 <모모>에선 "진정한 시간이란 시계나 달력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소설 속에서 호라 박사가 모모에게 해준 이야기도 떠오른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오늘 내가 가슴으로 느낄 시간은 얼마나 될지 쿵쿵 뛰는 가슴 소리를 들으며 첫 탐방지인 하얼빈 핑팡지구에 위치한 731부대 생체실험 유적지로 향했다. 우리에겐 통나무란 뜻의 일본말인 '마루타'로 알려진 곳이다.

일본은 적은 비용으로도 무수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세균전의 위력을 깨닫고 난징, 베이징, 창춘 등지에 세균부대를 꾸렸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의 만주 침공 이후 세워진 꼭두각시 정권인 만주국 안에 있는 하얼빈은 비밀실험을 하기 맞춤한 곳이었다. 1936년부터 1945년까지 2차대전 동안 731부대 안에서는 세균학 박사인 이시이 시로 중장의 지휘 아래 살아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이 이루어졌다. 바이러스, 동상, 페스트, 콜레라, 결핵, 매독 등의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이 행해졌다. 부대원들은 실험대상자들을 '통나무(마루타)'라 불렀지만, 그들은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었다.

인간의 잔학함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역사의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도착한 유적지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괴기영화에 나오는 음침한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마당엔 너른 잔디와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다. 자연의 푸르름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간 최소 3천 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그 모습이 더 섬뜩했다. 당시의 본부건물을 되살려 놓았다는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예측한 대로 어두침침했다. 온몸에 찬 기운이 느껴졌다.

각자에게 안내 통역기를 줬다. 중국인인지 조선족인지 모를 통역기 속 여성은 또박또박 각 전시실의 전시내용들을 설명했다. 기억나는 대로 일부만 옮긴다.

"일제는 13세 남자아이를 꾀어내 모든 장기를 적출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을 가둔 후 공기를 빼내면서 인체의 변화를 살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페스트 등 세균주사를 놨습니다. 사람을 영하 3,40도가 넘는 바깥에 놔두고 동상이 들면 끓는 물과 찬물을 번갈아 붓기도 하면서 해동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마취 없이 사람이 얼마나 견디는지를 알기 위해 산 사람의 배를 가르고 뼈에 붙은 살가죽을 벗기기도 했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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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전시관 내 설치된 조각상. 세균부대에 의해 처참히 살육된 희생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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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들을 십자가에 묶은 후 세균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731부대원들이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 신정임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란 말은 짐승에게 미안한 관용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전시실이 다 잔혹했지만, 한 전시실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그곳엔 한 장면이 모형들로 재현돼 있었다.

넓은 야외에 십자가 모양의 나무말뚝에 '마루타'들이 묶여 있다. 그 위로 세균폭탄들이 떨어지고 저 멀리서 731부대원들이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귀에 걸린 통역기에선 "일제는 포로들에 철모 등을 씌워서 폭탄에 맞아 바로 죽지 않도록 했습니다. 금방 죽으면 세균무기의 성능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설명이 들려왔다. 전시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말했다.

"현기증이 나고 구역질도 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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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에게 세균주사를 놓고 있는 장면.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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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실험에 의해 뼈가 드러나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 신체를 손상한 희생자들은 치료 후 다른 실험에 쓰이기보다는 산 채로 파묻히거나 불에 태워졌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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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서 외부로 빠져 나오는 통로 양 벽면엔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들이 있다. 한국인의 이름도 6명 보인다. ⓒ 신정임


마지막 전시실에 다다르니 통로 양쪽 벽면에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들이 걸려있다. 한국인의 이름도 몇 명 보였다. 희생자들의 상당수는 반제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중국, 러시아, 몽골, 조선의 항일투사들이었다. 사진이 함께 있는 팻말도 있다. 한 팻말의 예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신부의 결혼식 사진 앞에서 쉬이 발길을 떼기 어려웠다. 한발 한발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며 앞서 가던 한 남성이 통로 끝에 이르러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이내 90도로 머리를 숙여 묵념한다. 갑작스러운 절을 받으며 놀랐지만,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나도 그처럼 통로 끝까지 걸은 후 뒤를 돌아 깊이 고개를 숙였다. '편히 잠드소서.'

공정여행 기획자인 최정규 작가가 전시관 뒤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곳 전시관은 당시 사무실로 썼던 곳인데 다 허물어져서 거의 다시 짓다시피 한 겁니다. 여기 뜰에 그때 유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죠."

뒤뜰엔 깊이 팬 생체실험을 했던 곳과 시체소각장으로 썼던 건물이 남아 있었다. 뒤뜰 뒤에 아파트가 보인다. 그 아파트 앞에도 유적이 남아 있단다. 수천 명이 묻힌 땅에서 또 다른 이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땅뿐만이 아니다. 731부대는 헤이룽장성 내 하이린, 쑨우, 하이라얼 등지에 지부를 뒀다.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서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세균부대가 저지른 만행도 중국 곳곳을 병들게 했다. 연구소 설비를 폭파하고 생존자들을 산채로 태워죽이거나 마대에 담아 송화강에 갖다 버렸다. 강을 통해 흑사병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일본 부대가 퇴각하면서 파묻거나 버린 화학무기에 감염돼 피해를 입은 중국인이 2천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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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 건물이 시체 소각장 등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 신정임


역사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죄악상의 중심에 있던 이시이 시로 중장을 비롯한 731부대 장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미국은 731부대 실험 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이들을 전쟁 범죄인 재판에 회부하지 않았다. 관련자들은 이후 일본의사회 회장, 오사카대 의학부장 등 고위직에 오르고 막대한 부를 쌓았다.

중국은 2005년 731부대 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지만, 아직 승인은 안 나고 있다. 한편 일본 법원은 731부대 피해자들의 배상요구를 기각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여기에도 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이다.

전시관 뒤편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后事之师).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앞날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통역기 속 여성이 강조한 말이 731부대 유적지를 떠나오면서 계속 입속에 맴돌았다.

"언제나 정의는 사악함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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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이름 옆엔 그들의 사진이 붙어 있기도 하다. ⓒ 신정임

덧붙이는 글 | * 지난 7월 27일부터 4박 5일간 만주지역으로 공정여행을 떠났던 여행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7일부터 4박 5일간 만주지역으로 공정여행을 떠났던 여행기입니다.
#731부대 유적지 #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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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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