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와 길게 얘기 못하는 이유

[주장] 놀 줄 모르는 사회

등록 2012.08.29 17:38수정 2012.08.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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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눈치를 보며 산다는 것'

대학을 졸업하고 만난 동창생들과 오랜만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결혼과 육아로 정신없이 30대를 보내고 이제 뱃살이 한웅큼씩 생긴 40대 아저씨가 우리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단연 아내에 대한 것이다.

심지어 이제 결혼 10년 차가 되는 한 녀석은 바쁜 업무 핑계를 대고 일부러 집에 안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결혼을 조금 늦게 한 편이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혀 공감을 못 할일도 아니었다.

왜, 남편들은 연애 때와는 다르게 아내를 점점 피하게 되는 걸까? 잠시 토론을 해 본 결과 쉽게 얻은 가설 한 가지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싫어할 짓만 골라 한다' 였다.

남녀로 성별이 나뉘는 순간, 관심사나 좋아하는 것들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남자들이 나이 먹어서 하는 행위는 여자들 대부분이 싫어하거나 금기시 되는 행위들이니... 이 어찌 사이가 좋아질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일단 남자는 태생적으로 벗어나기 힘든 세 가지가 있다.

1. 친구  2. 장난감  3. 여자


이에 파생되는 항목을 대강만 적어 봐도 금방 나온다.

1. 술, 담배
2. 게임 (PC 온라인 게임, 스마트폰, 고스톱 등)
3. 골프, 낚시, 등... (주말에 아이와 아내만 남기고 나가 버리는 행위 모두 포함)
4. 자동차, 카메라, MTB, IT 기기 등등 (어디서 난 돈인지 남편이 사는 비싼 장난감)
5. 여자 (지나가는 이쁜 여자, 유흥업소 접대부 모두 포함)

허울없는 남자친구들끼리 만나면 같이 공유하는 소재 중 99%가 아마 저 위에 포함될 것이다. (아닌 분은 글쎄.... 스님들도 술과 도박하다 적발된 기사가 난 것을 기억하시는지.)

남자들은 쉬고 싶거나 놀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의 우선 순위가 다 저 위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아내가 싫어 하는 것들 이니, 어찌 아내에게 털어 놓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말꼬리라도 잡히면 아주 골치가 아파지는데 말이다.

과연, 남자와 여자가 같이 토론하고 공유할 수 있는 건 없는걸까?

자외선에 피부가 노화되는 것을 불사하고 골프나 낚시를 자주 즐기거나, 자동차나 IT 기기의 신제품 출시에 촉각을 세우는 여성 분들이 많지 않은 걸 감안하면, 관심사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어찌 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이 즐기는 여흥이나 취미라는 것이 아내와 아이와 격리되는 남성위주의 것들 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가정문제일 뿐 아니라 남자들 사회의 내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동창들이 모이면 주로 떠드는 소재가 그런 것이기는 하나 사실 빡빡한 월급쟁이 형편에 자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못 된다. 따라서 기껏 소주잔이나 기울이며 현실의 불만을 쏟는 시간이 더 많다. 아니면 '뭐 재미 있는 거 없나?'하고, 정말 놀거리 없는 사람들처럼 방황하기도 한다. 집에는 가장의 역할을 애타게 갈구하는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도 비효율적이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는 선진국에서 오래 거주하거나 그들의 문화를 깊게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지만, 과연 이게 정답인가? 조금 더 나은 생활이 있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많이 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놀거리 없는 척박한 사회에서 나고 자라서 이렇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아빠가 악기 연주에 취미가 있다면? 합창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음악 감상 혹은 오페라 DVD 시청에 취미가 있다면? 틈틈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면? 간단한 자동차 점검을 직접 하거나 집의 가구나 문짝을 틈틈히 짜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아이들이나 아내가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지역 공동체나 혹은 아파트 단지내, 아니면 동네 초등학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면? 처음에는 상상이 잘 안될 지 모르나 갈 곳 몰라 방황하며 술과 유흥에 흥청거릴 아빠들이 쑥스럽게 나타날 희망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웃도 떠들고 놀면서 돈버는 연예인들을 부러워할 때가 많다. 그러나 과연 잘 노는게 쉬운 일일까?

인간이 행복하려면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으려면 대상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 남자들도 다른 문화와 놀이를 가족과 즐기려면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즐길만한 문화적 토양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남자들은 기껏 나이들어서 연습하는 건 골프 스윙 정도였던 게 아니었을까?

남편과 아내가 가까워지고, 놀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연습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나 역시 비록 준비가 미흡하긴 했지만, 지금 부터라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려 한다.  남자아이들만 있는 집이라 캠핑이 좋다고해서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다.
#남편과 아내 #놀이문화 #놀이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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