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고장에서 노래 '상록수' 못 부른다?

'360인 합창제'에서 상록수 '금지곡' 된 이유

등록 2012.09.19 14:20수정 2012.09.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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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이철환 당시 당진군수가 심훈 선생의 묘소가 있는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에서 열린 심훈 선생 탄생 109주년을 기념하는 추모제에 참석해 헌화분향하고 있다. ⓒ 심규상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중략) ...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중략)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김민기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의 <상록수> 가사 중에서)

충남 당진시장이 심훈 선생의 소설 <상록수> 정신을 되새기는 '심훈 상록문화제'에서 투쟁가요라며 <상록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말썽이 일고 있다.

당진 심훈상록문화제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원회)는 지난 14일 오후 7시 당진시청 앞 광장에서 '함께 만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심훈상록문화제 개막식을 열었다. 심훈상록문화제는 심훈 선생의 상록수 정신을 계승하고 전 시민이 함께하는 종합축제로 승화시켜 시민 화합의 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16일까지 진행됐다. 

당초 이날 개막식에서는 당진시민 남녀노소 36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합창단(360인 합창제)이 '상록수'와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등 2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노래 '상록수'는 당초 야학의 교가로 불리던 노래로 주인공 채영신과 아이들이 강습소에서 향학열을 불태우는 소설 <상록수>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상록문화제 행사 때마다 당진시민들로부터 사랑받아왔다. 이 노래는 1998년 외환 위기시절에는 당시 박세리 골프선수가 맨발로 물속에 들어가 샷을 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흐르면서 절망을 딛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희망곡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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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회 상록문화제 장면. 심훈상록문화제는 올해로 36회째를 맞는 당진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 심규상


당진시장 문제제기로 행사 당일 '상록수'에서 '만남'으로 급변경

이에 따라 합창단원들은 문화제 집행위원회로부터 약 두 달 전부터 악보와 음원을 받아 연습을 해왔다. 하지만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당진시민들은 이철환 당진시장의 문제제기로 '상록수'를 들을 수 없었다. '상록수'는 행사 당일 '만남'으로 대체됐다.

'360인 합창제'의 한 단원은 최근 상록문화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개막식) 행사당일인 오늘 마지막 곡이 아무런 설명과 사전 통보 없이 '상록수'에서 '만남'으로 바뀌었다"며 "도대체 360명이 최소 한 달 이상 연습한 곡을 행사당일 임의로 바꾸는 것은 어느 분 생각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아마추어 합창단은 들러리가 되어야 하냐"며 "누구를 위한 합창이고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집행위원회 한 관계자는 "행사 하루 전날 당진시장이 행사관계자에게 '상록수'는 운동권 노래이고 집회 때 투쟁가로 부른 노래라며 다른 곡으로 바꾸도록 종용해 할 수 없이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당진시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시장님께서는 시민축제장에서 암울한 분위기의 노래보다는 밝고 희망적인 노래가 좋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집행위원회 또 다른 관계자는 "상록수는 온 국민의 애창곡으로 지난해 국립합창단도 부른 노래"라며 "상록수를 부르고 소설 <상록수>를 읽으며 희망을 품어 온 시민들에게 희망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갑자기 노래를 바꾸도록 한 것은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당진시에 사는 김희봉 통합진보당충남도당공동위원장은 "상록수가 암울한 노래라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며 "시민주도의 행사에 시장이 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장의 독선적 사고는 물론 이를 수용한 상록문화제 집행위원회 측에 태도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36회를 맞은 심훈상록문화제는 주민 주도형 축제로 자리매김,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와 쌀사랑음식축제 등과 함께 당진군을 대표하는 축제로 꼽히고 있다.

한편, 농촌 계몽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심훈(1901~1936) 선생은 저항시인 겸 영화인, 독립운동가로 시집 <그날이 오면>(1937)을 비롯해 소설집 <영원의 미소>(1935), <직녀성>(1937) 등의 작품을 남겼다. 소설 <상록수>는 당진 필경사에서 집필했다.
#심훈상록문화제 #당진시 #상록수 #금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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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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