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 뒤, 저는 쓰레기장에 버려졌습니다

[포토에세이] 과대포장 유감

등록 2012.09.30 11:58수정 2012.09.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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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 포장에 대한 포스터 한국환경공단 과대포장 관련 포스터 갈무리 ⓒ 한국환경공단


나는 그녀를 빈틈없이 꽉 붙잡아 주었고, 몸집이 작은 그녀도 내 덕분에 제법 커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외모가 괜찮은지 이리저리 살폈고, 그들 중 몇몇은 그녀의 존재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듯했습니다. 나는 보자기에 싸여 어느 집으로 향했고,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품고 있던 그녀를 사람들은 꺼냈습니다. 그녀를 보내버린 나는 곧바로 바깥 파지가 쌓여진 곳에 버려졌습니다.


조금은 억울했습니다.
선물을 준비한 이는 그녀보다 내게 관심이 많았는데, 정작 선물을 받은 이는 나보다 그녀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물을 준비한 이가 지급한 물건 값 속에는 내가 멋진 외모를 갖기까지의 공정과정비용까지 다 들어있는데, 그녀만 쏙 빼고 나를 헌신짝 취급을 하다니요? 나의 쓸모가 이 정도였다면 이렇게까지 화사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요?

추석을 이틀 앞둔 2012년 9월 28일(금) 아침, 나는 그 어느 집 파지가 모여 있는 곳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날씨가 우중충해지는가 싶더니만, 가을비가 거의 여름 소낙비처럼 우당탕탕 내렸습니다.

내가 만들어진 이후, 가계에 진열되어 있었을 때에도 비가 내리는 것은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빗속에 방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빗방울 하나라도 튈까 애지중지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날 비에 온 몸이 홀딱 젖었고, 빳빳했던 몸은 뜨거운 여름날 이어지는 가물과 뜨거운 햇살에 축 늘어진 풀 마냥 늘어져버렸습니다. 이렇게 무심하게도 나의 삶이 끝나다니.

내리던 비가 그치자 구부정하니 허리가 굽은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걸어오십니다. 머리엔 흰 수건을 쓰셨고, 바지는 시장 통에서 많이 보았던 몸뻬바지였으며, 윗도리는 본래 하얀 니트였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랬습니다.


처음으로 그 할머니가 나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할머니의 손은 까칠하고 거칠었고, 엄지손톱은 일을 많이 하신 분들이 그렇듯이 제법 커다랗고 두꺼웠으며, 손톱 밑에는 검은 떼가 끼어있었습니다.

손은 까칠하고 거칠었지만 손가락의 지문은 반질거린다는 느낌이었으며, 갈라진 굳은 살 사이의 검은 떼는 차마 빛이 들어가지 못한 깊은 계곡처럼 보였습니다.

"할머니, 제가 실어 드릴게요."
"아이고, 고마워, 총각."
"요즘 파지 값이 얼마나 나가나요?"
"1kg에 100원도 안 돼. 그나마 신문지는 조금 더 좋지."
"하루에 할머니 몇 kg나 모으세요?"
"나 같은 늙은이는 힘이 없어서 아무리 많이 모아도 20kg를 못 넘지. 모았다가 한꺼번에 팔아. 그래야 돈 만 원이라도 생기지."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몸무게를 재본 적이 없어 내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1kg도 안 되는 것은 확실하고, 그렇다면 내 가치가 100원도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입니다.

나를 만드는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게다가 할머니가 종일 걸어 다니면서 모울 수 있는 폐지가 20kg 정도라면, 고작 2000원이라는 이야긴데 폼 나는 브랜드커피숍 커피 한 잔 값도 안 나오는 게 말이나 된답니까?

그래요.
나같이 버려지는 이들이 있어야 그 분들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니 마음껏 나를 버리세요. 그냥 막 버리지는 마시고, 차곡차곡 가지고 가시는 분들을 배려해서 내다놓으면 더 좋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 안에 품고 있는 그녀를 만드시는 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포장만 그럴싸하게 하는데 신경 쓰지 마시고, 그녀를 제대로 만들어 주십사 하는 그런 부탁의 말씀 말입니다. 겉만 그럴싸하고 속이 텅 비어있다면 일시적으로 관심이 갈 수도 있고, 한 번쯤은 살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만드신 분이 자기 살을 파먹는 것과 다르지 않거든요. 더군다나 포장하느라 드는 비용도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거잖아요. 당연히 포장 속의 그녀는 부실해 질 수밖에요. 물건 값은 비싼데 제 값을 못한다. 그런 제품을 만드는 곳은 머지않아 부도가 나지 않겠어요.

포장이 아주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포장까지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포장의 정도를 넘어가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기준은 제가 일일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잖아요.

요즘 세상도 과대 포장된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프데요.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대면서도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뻥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일수록 얼마나 포장을 잘했는지, 어리석은 사람들은 껌뻑 속아 넘어간다고도 하네요. 그런데 말이죠, 그거 오래 못갑니다. 과대 포장된 선물의 속내를 이내 보는 것처럼, 다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추석 선물 같은 것들에 쓰인 포장지는 그것만 버려지지만, 과대 포장된 사람들은 그 포장지만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 포장지에 들어 있는 사람도 같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게 과대 포장된 사람과 나의 차이군요. 난, 100원도 안 되는 존재로 전락한 다해도 그 누구에겐가 작은 희망이라도 되지만, 사람은 작은 희망이 아닌 큰 절망이 되겠군요.
더욱이 속내에는 온갖 추한 것들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만 그럴듯한 척 하고,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작은 티끌에 거품을 물며 비난하는 모습은 정말로 보기에도 추합니다.

속이 꽉 찬 선물 같은 그런 사람이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고 한다면 좋겠네요.
#과대포장 #폐지 #추석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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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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