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에 들이닥친 '복면 사나이'의 악몽

[공모-나는 세입자다] 친정엄마 같은 집주인이 되렵니다

등록 2012.10.07 16:44수정 2012.10.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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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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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가 ⓒ 연합뉴스


결혼식 날짜를 코앞에 두고도 전셋집 마련을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 아버님 덕분에 2400만 원짜리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귀엽고 앙증맞은 집이었고 일층 두 가구 모두 전세를 놓았는데, 그 중 우리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첫 번째 해당하는 집이었습니다.

2년 기한의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결혼식 전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얻어 이미 우리 집인 양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마음 편하게 결혼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집에서 사는 동안 아들 딸 많이 낳고 부자 되라는 덕담도 아끼지 않으시는 집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연세에 어울리시는 후덕함이 마치 친정어머니 같기도 하였지요.

그해 10월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7월 예쁜 딸 아이를 낳았습니다. 가스보일러라 겨울이면 LPG 가스 두 통을 세워둔 채 번갈아가며 연료를 보충해야하는 번거로움 외엔 교통 편리하고, 하루 종일 대문을 잠그지 않고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안전하고, 무엇보다 가까이 백화점, 마트, 재래시장 등이 밀집되어 있어 생활이 무척이나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전세기한 2년이 지나면 다시 재계약을 하고 또 해서 내 집 마련을 이루는 그날까지 눌러앉아 살고픈 곳이었습니다.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한 남자... 누구였을까?

그런데 나의 부푼 꿈과 기대를 단 한순간 져버리고 말은 일이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5개월쯤이 되던 어느 날, '스타킹 복면강도'가 침입해 들어온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대문과 현관문을 모두 잠그지 않은 채 나는 한창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메뉴는 생선구이였습니다. 며칠 전 시댁에서 제사를 모신 후 챙겨온 것이 있었거든요.

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후 커다한 생선을 올려 앞으로 뒤로 뒤적이며 데우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저녁 상차림이었던 것이죠. 7시 25분쯤이었을까! 바람과 함께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기척이 들렸고, 나는 남편임을 의심하지 않은 채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다녀오셨어요!"
"…."


짖궂게도 남편이 얼굴에다 무엇인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나는 외마디 괴성을 질렀습니다. 그와 동시에 스타킹 복면강도는 내 입을 틀어막았고, 나는 몸부림을 치는 중에 안경이 얼굴에서 저만치 튕겨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입을 틀어막으려는 강도와 얼굴을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나 사이에 얼마간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서도 내가 걱정된 건 방 안에 있는 딸아이였습니다.

보행기에 태워 둔 아이가 인기척에 주방 쪽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기가 끔찍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 때문에 더 이상 고함은 지를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바로 등 뒤에서 한창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프라이팬 생각이 났고, 한 손으로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야무지게 틀어 쥐었습니다. 여차하면 강도의 얼굴을 뜨거운 프라이팬으로 냅다 후려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위치상 큰방과 가까이 서 있는 강도에게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란, 강도에게 프라이팬을 집어던져 도망치게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작지만 다부진 고함을 지르며 프라이팬을 휘두르려는 순간, "에이씨!" 하는 소리와 함께 강도는 다시 바람처럼 부엌문을 박차고 집을 뛰쳐 나갔습니다. 조그마한 거실 바닥에 커다란 운동화 발자국만을 여기저기 남겨 놓은 채 말이지요.

어디로 날아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안경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의 아이부터 먼저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주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려니 비로소 목이 메이고 눈물이 돌고,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후들 떨려오더군요. 아이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확인한 후 주방으로 나와 주저앉아버렸습니다. 더 이상 쏟아낼 기운이 없어져버린 것이지요.

낯선 그림자만 비쳐도 심장이 덜컹... 이사를 결심했다

곧이어 남편이 돌아왔고, 바닥 여기저기 찍혀 있는 운동화 발자국에 눈과 입이 벌어졌습니다. 신고를 할 것인지 대책을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집주인 아주머니, 옆집 세입자 등이 몰려왔고, 저마다 큰일 날 뻔하였다, 이만하기가 천만다행이다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도 또한 초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몇 번이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날 강도가 얼굴에 뒤집어쓴 스타킹이 다름 아닌 내 것이었다는 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마당 빨래건조대에 널어두었던 밴드 스타킹이 없어졌거든요. 대문이 열려 있고, 매일같이 건조대에 아기 기저귀가 널려 있는 집이라는 점을 간파한 이웃사람이 아기 돌반지 등을 노리고 우발적으로 침입을 감행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그러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혼비백산 놀라 도망간 것이 아니었는지….

그 일이 있은 후 대문을 늘 잠그고, 남편임을 확인한 후에만 현관문을 열어주며 문단속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의 어느 날 아이의 예방접종을 마치고 보건소를 다녀왔습니다. 대문을 미처 잠그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어둔 채 아이를 방에 눕히고 유모차를 접어 정리하던 참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웬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휙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데, 너무나 놀라 유모차를 내팽개치고 득달같이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가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아 걸었습니다.

강도의 출현 이후 골목 어귀에 낯선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심장이 쿵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보건소를 다녀온 날도 놀라 뛰어들어와 급하게 문을 닫는 바람에 손가락 마디 사이에 움푹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있는 힘껏 문을 닫으면서 문 사이에 손가락이 끼는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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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업체 관계자가 부지런히 짐을 나르고 있다 ⓒ 연합뉴스


손가락을 다친 후 더 이상은 불안과 공포에 떨려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남편과 의논 끝에 이사를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평소 후덕하기로 친정어머니 같은, 무엇보다 이번 강도의 사태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더 이상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이지요. 아직 전세계약기한이 남은 상태였기에 집주인 아주머니의 배려 없이는 손쉽게 이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결론은 세입자인 우리가 집을 내놓고, 집이 나가면 그 전세금을 받아 이사를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집 내부 구석구석이 아직은 깨끗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이사 들어올 당시에는 도배도 장판도 모두 생략한 채 이사를 들어 왔는데, 새로운 세입자가 이사 오면서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달라고 하면 우리 돈으로 해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대놓고 하시는 집주인 아주머니는 더 이상 훈훈한 친정어머니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답답한 사람이 샘물을 판다는 옛말에 따라 하루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은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정보신문 등에 광고를 내고, 동네 곳곳 전봇대 등에 전단지를 붙이고, 전셋집을 찾는 문의전화에 최대한 친절하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면서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기 목욕까지 시켜주신 친절한 집주인 아주머니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살던 곳에서 근 한 시간 거리쯤에 사는 대학생 오누이에게서 문의전화가 왔습니다. 거리가 멀어 제때 와볼 수 없는 점을 감안하여 유선상으로 집 내부구조에 관한 상세설명을 부탁한다는…. 마치 도면을 들여다보듯,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하였고,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인 가스보일러의 사용에 이르기 까지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 하였습니다. 아들 딸 많이 낳고 부자 되어 큰 집 사서 이사 가라던 주인아주머니의 덕담은 기억 속에 묻힌 채 우리는 첫 전셋집에서의 생활을 그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두 번째 전셋집에서의 생활 또한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옮겨온 두 번째 전셋집에서 아들아이를 낳았습니다. 산후조리를 도와줄 이 없이 혼자 낑낑대는 내가 안쓰러우셨던지, 갓난 아기를 목욕시켜 주시기도 하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참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 나름의 시련이 제법 발생하였습니다. 남편이 실직을 했고, 창업을 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전세금 일부로 충당했습니다. 전세금 일부를 되돌려 받아 월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해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나서 새것으로 교체했는데, 우리는 기꺼이 반반 부담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였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절대 날짜 한번 어기는 일 없이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오히려 하루나 이틀쯤 더 앞당겨서 챙겨드리기도 하고, 떡 한 접시, 케익 한 조각이라도 집주인 아주머니를 먼저 챙겨드리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그 이상의 끈끈한 무엇이 우리 사이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은근한 관계가 끝이 난 건, 얼마간 집에 다니러 오신 시어머니 바로 앞으로 벽돌 한 장이 추락하는 사고가 나면서부터인데요, 마침 뇌수술을 마치고 회복차 우리 집에 기거하시던 어머니의 공포는 가히 극에 달할 지경이었습니다. 아직 수술자리가 아물지 않아 머리를 칭칭 동여맨 붕대마저 풀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머님 바로 앞으로 이층 벽을 장식하고 있던 벽돌이 떨어져 깨어졌으니요. 만에 하나 그것을 맞기라도 한 날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임이 분명한 일입니다.

시어머니와 집주인과 사이의 한랭전선은 그날로부터 급격히 심각해지기 시작하였고, 어머님의 강력한 주장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보일러를 바꾸고 아직 한 해 겨울도 다 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사를 가겠다는 말을 내뱉은 후로 집주인과의 관계는 빠른 시간 안에 사무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관계가 좋을 때에는 월세를 전해드리러 가는 길이 인정스러웠는데, 집을 내놓은 뒤로는 그동안 살면서 집안 구석구석 흠집 내둔 곳은 없는지 주인아주머니는 호시탐탐 관찰하고 지적했습니다. 그 집에서 또한 어렵사리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후 이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일할로 월세 계산을 완벽하게 다 하고 난 후에 말이지요.

겉도 속도 친정어머니 같은, 훈훈한 집주인이 돼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네 번의 이사를 더 한 후 비로소 작으나마 아파트 한 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네 번의 이사를 더 하는 동안, 총 네 군데의 집에서 세입자로 사는 동안 세입자의 처지는 늘 오분대기조였습니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 안에서 마룻바닥을 뒹구는 일에도 늘 자유롭지가 않았습니다.

평생 팔리지 않을 것만 같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열몇 평의 전세 아파트에서도 하루아침에 집이 팔리면 거두절미 비켜줘야만 했고, 이사 들어갈 당시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해달라 요구하지 않고서도 그 집에서 사는 내내 벽에 흠집 하나 내지 않으려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신나게 뛰어놀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친절한 집주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염원이 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집주인입니다. 아직은 전세를 놓을 만큼, 매월 월세를 거둬들일 만큼 큰 집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우리 가족 먹고살고 꾸려가는 달랑 아파트 한 채의 주인입니다. 하지만 이 다음 나이가 더 들어 전셋집, 월셋집의 집주인이 되면, 겉만 그런 것이 아닌 속까지 훈훈한 실제 친정어머니 같은 집주인이 되어볼 작정입니다. 전셋집 보일러를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집주인이 알아서 척척 바꾸는 그런 집주인이 되어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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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공모 응모글입니다.
#세입자 #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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