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숲이 장관? 보도자료에 낚였다

귀한 시간 내서 떠난 여행, 그만큼 행복해야 한다

등록 2012.10.02 15:11수정 2012.12.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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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 내면 광원1리 은행나무숲에는 2천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단풍 절정은 8일에서 10일 경으로 예상된다 ⓒ 이종득


추석을 보냈고, 10월이 시작됐다. 완연한 가을이다. 기자가 사는 홍천은 전국에서도 일교차가 가장 큰 산골 마을이다. 아침저녁 날씨도 제법 쌀쌀하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아침마다 잔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족은 아직 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니까 우리집 환절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마 이 늦은 환절기를 이겨내려면 주말마다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10월은 여행의 계절이다. 그래서 10월의 첫날인 지난 1일,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10월 첫날부터 기사, 아니 보도자료에 낚이고 말았다. '가볼 만한 곳'이라며 25년 된 은행나무숲을 소개하는 보도자료 때문이었다. 보낸 곳은 홍천군청이었다.

개인 소유의 1만5천여 평 부지에 심은 2천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그려지는 내용의 사진을 첨부한 보도자료였다. 더군다나 개인이 25년 동안 가꾼 은행나무 숲을 10월 1일부터 20일까지 무료로 개방한단다.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 것을 예상한 홍천군 관계자는 "앞으로 20일 동안 은행나무숲을 찾은 관광객이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할 예정이며, 전국의 대표적인 단풍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보도자료를 받은 강원 지역 신문사들은 기사로 그곳을 소개했다. 또 이 소식은 여행 마니아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로 퍼지기도 했다. 확인해보니 지난해부터 입소문이 돌기 시작한 곳이었다.

가을 풍경이 빼어난 곳?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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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길은 군데군데 굽이굽이 이어져야 제 멋이다 ⓒ 이종득


그런데 솔직히 은행나무숲을 다녀온 기자로서 가을 풍경이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다. 그냥 은행나무 2천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러 가겠다면 다녀와도 되겠다고 적극 추천할 수 있지만, 특별한 가을 풍경을 기대하는 여행을 원한다면 2천여 그루의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 날짜에 맞춰 다녀오시라고 조심스레 권할 수 있을 정도다. 아마 10월 8일에서 10일 사이가 가장 좋을 듯하다.

그 이유는 가장 먼저 은행나무 잎사귀가 작아서 볼품이 덜하다는 것. 유별났던 지난여름 폭염에 성장을 멈췄는지, 거름이 부족했는지 모르겠지만 은행나무 잎사귀가 한결같이 기형처럼 작아 보였다. 그렇지만 전체 나무가 노랗게 물든 그날에 맞춰 간다면 어딘가에서 보는 은행나무 한 그루의 노란 단풍과는 또 다른 풍경을 머릿속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가까이서 보는 잎사귀 하나는 볼품없지만, 2천여 그루의 은행나무 잎사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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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숲을 산책하는 가족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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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맛'이 일품인 삼봉약수터 가는 길 ⓒ 이종득


그리고 주변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해야 했는데, 식당이 없었다. 1km를 이동해 찾아간 휴게소 겸 식당, 된장찌개와 청국장 1인분이 8000원씩이었다. 전형적인 여행지 바가지 요금이었다. 그나마 1만 원을 받지 않아 다행이다 싶어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러니 은행나무숲을 가려면 식사를 해결하고 가든지, 도시락을 챙겨 가야 바가지 요금에 맛없는 식사를 피할 수 있을 게다.

그리고 입구를 지날 때, 교통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진입로가 좁고,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입구에 주차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사람도 걸어 다니는 길이 없는 좁은 지방도로의 갓길에 한쪽 바퀴를 겨우 내놓고 주차를 시켜야 한다. 여행 가서 사고를 당하거나, 차로 인한 속상한 일을 경험한다면 그보다 더 억울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숲이 있는 홍천군 내면 관원 1리는 홍천읍내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 홍천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구성포에서 56번 지방도로 춘천 서석 방향으로 갈아타서 서석을 향해 가면 된다. 그곳에서 70km를 달려가야 하는데, 길이 좁아 1시간 30분 정도는 달려야 한다.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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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약수 물'을 마시는 관광객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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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약수터 샘 주변은 붉은 빛이다. 물에 함유된 철분 때문이다 ⓒ 이종득


서석면에서 내면으로 올라가는 하뱃재 길은 매우 굽이가 심해 어린아이들은 어지럼증에 고생할 수도 있다. 하뱃재를 올라타면 그곳에서부터 해발 800미터 고지이고, 고랭지채소로 유명한 내면 율전리이다.

율전리에서 다시 상뱃재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 길도 강원도 특유의 굽이굽이 산길이다. 그리고 한참을 달리면 진부로 가는 길과 창촌으로 가는 삼거리 길을 만난다. 그 삼거리에서 좌해전 해 달리면 내면 소재지를 지나게 되고, 10여 분 후면 그 유명한 내린천 발원지 입구를 지난다. 그 동네가 광원 1리이고, 은행나무숲이 있는 동네다.

이렇게 먼 길을 가는데 은행나무숲만을 목적지로 가면 허탈해질 수 있다. 그러니 3km 내 주변에 있는 삼봉약수터와 오대산 산책길을 한번 다녀오시고, 구룡령길 정상에서 강원도 첩첩산중인 능선을 바라보고 오는 여행 경로를 권하고 싶다.

삼봉약수터는 '국립삼봉자연휴양림'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곳에 가면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봉인 가칠봉(1240m)을 중심으로 응복산(1150m)·사삼봉(1107m) 등 3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삼봉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약수터에도 세 개의 샘이 있다. 약수 물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오대산 산책길은 가족들이 나란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신작로길인데, 물론 숲 속 길이니 계곡을 옆에 끼고 한없이 걸어들어 갈 수 있다.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진부가 나오고 상원사 및 월정사로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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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숲에서의 서운함에 구룡령 정상에 올라가 설악에서 내려오는 단풍을 마주했다. ⓒ 이종득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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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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