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먹은 등뼈 10kg 감자탕

손자가 주문한 메뉴

등록 2012.10.03 14:40수정 2012.10.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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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냄비 남은 감자탕 ⓒ 정현순


"자 이거 가지고 가" "이렇게 많이 주시면 어머니네는 드실거 없잖아요?" 사위가 감자탕담긴 찜통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투이다. "이거 차안에서 쏟아질까봐 일부러 깊은데에 담은 거야.반 조금 넘을거야. 그리고 우리 먹을 것은 남겨났어. 모레(3일) 우진이 축구시합 있다면서. 우진아 이거 먹고 축수시합 잘 해" "응 할머니" 녀석의 입이 귀에 걸렸다.


추석 며칠 전이었다. 큰 손자(우진이)한테 전화가 왔다. "할머니 나 감자탕 먹고싶어. 추석에 감자탕 많이 해놔. 나 엄청 많이 먹을 거야""우리 우진이가 감자탕이 먹고 싶어? 우진이가 먹고 싶다면 할머니가 해줘야지" 했었다.

돼지등뼈를 사러가서 얼마큼을 사야 녀석이 실컷 먹었다고 할까? 싶었다. 7kg, 8kg? 망설이다가 먹다 모자라면 안되니깐 충분히10kg을 샀다. 하니 정육점 주인이 "손님이 많이 오시나봐요"한다. "11명 정도면 실컷 먹겠지요?" "그럼요 넉넉하게 먹을 수있어요"한다. 많기도 하지만 꽤나 무거웠다.

일단 물에 담가 핏물을 빼면서 중간중간 물을 갈아주었다. 10kg많기도 하지만 그것을 끓일 그릇도 마땅치 않았다. 커다란 찜통과 특대의 냄비 두군데에 나누어 넣고  끓여 기름기를 걸러 내고 본격적으로 끓이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것이 마치 음식점 주방을 보는듯했다.

추석 하루전날부터 감자탕 끓이기를 시작했다. 돼지등뼈 특유의 냄새를 제거 하기위해 된장, 통후추, 마늘, 생강, 소주, 월계수이파리 등을 넣고 충분히 끓여주었다. 충분히 끓인 등뼈에 우거지 삶은것과 대파 마늘을 넣고 다시 한 번 잘 끓여주었다. 고추양념장도 아주 넉넉히 만들었다.

난 입에도 대지 않지만 느낌에 괜찮게 된 듯했다. 추석날이 되었다.  명절음식은 맛만 보라고 조금씩 내놓았고 그날의 메인음식인 감자탕을 주인공 자리인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전골냄비에 돼지등뼈와 미리 삶아놓은 감자, 들깨가루, 소금간을 한 고추양념장을 위에 놓고 한번 더 끓여 주었다.


올케가 보글 보글 끓고있는 감자탕을 보더니 "명절에 감자탕을 먹는 것도 괜찮네요. 기름진 음식 대신에." 한다. 그런데 막상 차려놓으니 우진이는 조금만 먹는것이 아닌가. 난 서운한 마음에 "우진아 너 뭐야 할머니가 이거 끓이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조금만 먹어?" "할머니 나 물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배가 불러. 그런데 걱정 하지 마 내가 내일 엄청 먹을 거야"한다.

다행히 다른 식구들은 "감자탕 장사해도 되겠다"하면서 잘 먹는다. 커다란 찜통이 바닥만 보이게 남기고 모두 먹었다.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많이 먹은 것을 보면서 그래도 먹을 만했나보다. 동생네 식구는 돌아가고 딸네는 자고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무리 아침부터 감자탕을 먹을까해서' 무국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손자녀석이 "할머니 감자탕 줘. 어저께 많이 못먹었잖아"한다.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감자탕을 데워 주니 국물에 밥까지 싹싹 비벼 먹는다. 그리곤 우진이는 "할머니 이따 집에 갈 때 이거 싸줘"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걱정 마 할머니가 저 큰 냄비에 있는거 다 싸줄게"했다.

우진이가 감자탕을 맛있게 먹는모습을 보던 할아버지는 "우진아 감자탕 먹고 싶으면 언제고 할머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해"하니 녀석이 "정말" 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녀석은 제 할아버지와 둘이 설렁탕, 순대국등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었다. 아이답지 않게 어려서부터 그런 걸진 음식을 좋아한다.

녀석이 제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이것저것 챙기면서 감자탕이 쏟아질까봐 속이 깊은 찜통에 절반이상을 싸주게 되었다. 추석에 기름진 음식은 조금 줄여 만들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자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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