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의 발언, '헌법적 치매' 현상인가

대선 캠프에 가담한 김 전 헌법재판소장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등록 2012.10.17 20:27수정 2012.10.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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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와 대통령까지 통합 조정하는 최고의 헌법 기관이다. 탄핵심판을 통해 현직 판사와 검사, 국무위원, 국무총리는 물론 현직 대통령까지 파면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관이다.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 의결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관들에 의해 정지되었던 대통령의 권한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만약 '헌재'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해 탄핵 결정을 하였더라면 임시정부 수립 이후 탄핵으로 파면된 두 번째 대통령이 될 뻔하였다. 

뿐만아니라 '헌재'는 지엄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최고의 헌법 수호기관인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핵심구성원들이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의 언행은 재직 중이든 퇴직 후이든 범인과 구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물며 최고 책임자인 헌법재판소장은 더욱 두말의 여지가 없다.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면서 행한 그의 발언... 헌정사에 길이 남을 오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대선 후보인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면서 행한 발언은 참으로 헌정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장애를 딛고 일군 인간승리의 차원을 넘어 많은 법조인들의 존경을 받은 바 있기에 그 실망감은 생각할수록 깊어진다.

권력이란 마약과 같다 하였던가? 이미 재직 중에 영예와 권세를 누릴 만큼 누린 최고 권력기관 출신들이 낮 뜨거운 줄 모르고 임기를 마쳤다하여 또다시 권력의 단맛을 못 잊어 대권 가도에 뛰어드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 헌법기관들은 결국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정치권에 뛰어들자마자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으로서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모두 갖췄다"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에 '헌법적 치매' 현상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규정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인들이라면 대통령의 자격에 관한 탁상공론으로 수많은 예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장 출신은 그 기준이 헌법적이어야 하는 만큼,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은 유일무이하게 대통령에게만 '평화통일의무'를 부여하고 선서까지 시키고 있다. 따라서 평화통일을 위한 청사진 제시와 이를 위한 동포 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 노력은 헌법과 국민 앞에 선서로 약속한 대통령 본연의 의무이다.

아무리 국내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남북 관계가 실패할 경우 남한의 정치는 물론 경제와 국제관계까지도 반쪽 자리 성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헌법이 부여한 '평화통일의무' 수행을 위한 준비와 능력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소홀이 하여 임기 말 정치적 실정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김 전 헌법재판소장의 말대로 박근혜 후보가 국내 정치의 안정을 위한 자격(소위 '필요조건')을 갖췄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의 평화통일의무 이행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이나 이를 위한 준비가 얼마만큼 탄탄하며 실질적인가에 대해 국민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국의 최고헌법기관 수장을 지낸 분이 이러한 정책적 점검을 면밀히 해 본 뒤 이를 공개하는 선행 절차 없이, 단순히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으로서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했다면 고의로 위헌적 발언을 했거나 '헌법적 치매' 현상에 따른 둔감함으로 책임성을 잃었다고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헌법적 정의가 바로 서본 바 없는 대한민국 권력기관 아래서는 묵묵히 본연의 소명에 충실하고 있는 알곡들 사이에서 권력기관을 정치적 출세의 발판으로서만, 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잡초들이 여전히 기생하고 있는 것이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이러한 권력기관의 잡초들은 재직 중인 관할 선거구에서의 출마까지도 가능하도록 한 '공직선거법'마저도 방치하고 있는 무능력하고 한심한 국회를 비웃으며 권좌를 이용해 암암리에 지역구 관리와 공천 운동을 자행하며 부정한 정치권과의 끈끈한 유대를 대물림하고 있다.

평생을 국민의 세금으로 대우받고 살았으니, 퇴직 후라 해도 엄정히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아름답게 노년을 가꿔가는 진정한 국가 원로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겠다는 유언을 죽기까지 실천하다 간 백범 김구 선생의 올곧음이 한없이 그립다.

퇴직 후라 해도 엄정히 정치적 중립 유지하길...

1938년생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현재 74세. 격동의 헌정사가 개막되던 시기인 1948년 백범이 72세(1876년 생)였으니 동시대를 살았더라면 친구 같은 연배. 하지만 백범이 취한 행보는 김용준과 달랐다.

정치적 철학이 자신과 달랐던 이승만이 남한 단독 총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려 한다는 계획을 모를 리 없는 백범이었다. 청년시절 단독으로 결행한 '치하포 의거'로부터 임시정부를 이끌며 이봉창 의거에 이어 윤봉길 의거의 진두지휘까지 일제를 상대로 사선을 넘나들며 투쟁을 했던 백범.

그런 저력의 소유자인 백범이 이승만을 와해시키기 위해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규합하여 총선에 뛰어들어 임시정부 시절 비사들을 공개하며 "이승만은 임시정부 시절 의정원으로부터 탄핵 파면된 바 있는 만큼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이 될 자격도 없다"고 그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전국을 휘젓고 다녔다면 이승만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숙소인 경교장을 수 없이 찾아와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후진들의 요구가 빗발쳤지만, 백범은 끝내 나서지 않았다. 대신 백범은 찾아온 그들에게 백 마디 말 대신 자신의 애송하던 서산대사의 시 한 수를 붓으로 적어 건네고 침묵할 뿐이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헌법 #헌법재판소 #대통령의 조건 #박근혜 김용준 #대통령의 평화통일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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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법(통일헌법) 박사학위 소지자로서의 전문성 활용 * 남북회담(민족평화축전, 민주평통 업무 등)차 10 여 차례 방북 경험과 학자적 전문성을 결합한 민족문제 현안파악과 대안제시 * 관심분야(박사학위 전공 활용분야) - 사회통합, 민족통합, 통일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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