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사랑을 구걸하는 무수리였다"

[리뷰] 부부가 같이 보면 속 시원한 <울랄라부부>

등록 2012.10.25 09:34수정 2012.10.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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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 ⓒ KBS


"울랄라 부부 봤어? 정말 웃기지 않니? 시어머니 시누이한테 할 말 다 하고 집에서도 큰 소리 뻥뻥치고. 고소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우리 남편도 툭하면 집안일 뭐 있냐며 날 무시하는 데 그 인간도 영혼체인지 돼서 한 번 살아봐야 한다니까. 아마 하루도 못 견디고 살라달라고 할 걸." 

KBS2 드라마 울랄라 부부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특히 20여 년 넘게 순종형으로 살아온 50대 이후 중년 아내들이 남편 몰래 꾸던 발칙한 꿈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 아내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고소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결혼 생활 12년차인 고수남(신현준분) 나여옥(김정은분) 커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열두 해나 같이 살았으니 권태기가 온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이들 '울랄라부부'는 싸워도 너~무 싸우고,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집 밖에 모르는 여자 여옥과 집 밖만 아는 남자 수남. 12년간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가정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산 여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순, 용감, 무식한 대한민국 토종 아줌마가 돼 버렸다.

하지만 호텔리어인 남편 수남은 다르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남편의 눈에 아줌마로 변한 아내의 모습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유혹적이지 않다. 오히려 망가진 아내의 모습은 자신의 바람기에 대한 변명으로 작용할 뿐. 손톱만큼의 양심의 가책조차 사라지게 할 뿐이다.


죽을 것처럼 사랑해 결혼을 하고도 몇 년 못가 죽을 것처럼 미워하는 부부. 두 사람 중 누구의 잘못이 부부관계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누구나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것이 부부관계라지만, 역지사지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에 득도를 하기 전에는 부부싸움도 그치지 않을 듯싶다.

갈등 끝에 마침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날 사고로 영혼이 바뀌어 버린 두 사람. 영혼체인지라는 코믹하고도 황당한 설정을 통해 아내는 남편의 삶을, 남편은 아내의 삶을 살게 된다. 살 맞대고 살아온 부부라도 서로 알지 못했던 각자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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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 ⓒ KBS


30년 가까이 산 부부, 그래도 매일이 전쟁이다

울랄라 부부의 설정은 과장되고 희화되었을 뿐 보통 부부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면서 "당신도 내 입장 돼 봐", "내가 다시 태어나면 남자(남편)로 태어나 큰 소리 치고 살 거야"라는 말 한 두 번 해보지 않은 아내가 있을까.

결혼 생활 27년을 넘어서고 있는 나 역시 다르지 않다. 30년 가까이 살았으면 싸움도 시들할 만 하지만 살아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고 양상이 다를 뿐 거의 매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쟁의 연속이다.

물론 50줄을 넘어서며 싸움의 주도권이 슬금 내 쪽으로 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30대 초반만해도 남편은 고수남과 비슷했다.

남편도 고수남처럼 결혼은 했지만 집 안에는 남편을 조강지처처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고 밖에는 남편이 첩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직장과 일이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내인 나는 조강지처(시어머니)와 첩(일) 사이에서 사랑을 구걸하는 무수리, 파출부, 유모, 육아도우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착한여자 신드롬까지 있었던 나는 마치 순종이 대단한 미덕인양 조선시대 여인처럼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아들들을 위해 나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는 것조차 당연하다고 여겼다. 남편을 사랑한다며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런 나의 삶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잊고 있던 자존감이 되살아났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서운함이 분노로 폭발했다.

'내가 왜 이렇고 살아야 하지? 내가 결혼을 한 거지 이 서방네 종살이 들어간 건 아니잖아? 왜 저들은 저리도 당당하게 나를 부려먹는 거지? 왜 나는 항상 마지막이고 끝자리고 왜 만날 나만 미안하다 죄송하다 잘못했다 사과해야하는 거야?'

참고 참았던 아내의 설움이 폭발하는 순간 남편이 그것을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10년 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색 않던 나의 갑작스러운 반발에 분노해버리고 만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뭐가 서운하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는 남편. 치사하게 그걸 꼭 말로 해야 알겠냐는 나.   

이렇게 시작된 부부싸움은 쉽게 마무리 되지 않았다. 몇 대의 선풍기가 부러지고 몇 개의 주전자가 찌그러지고 또 몇 개의 플라스틱 바가지가 날아갔지만 여전히 남편은 나의 서운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 우린 중년이 돼 버렸다.

"당신 달라진 거 알아?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점점 왜 이래? 목소리도 커지고 사나워지고. 남편 알길 뭐처럼 알고. 원래 이랬던 거야? 이렇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완전 사기당한 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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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 ⓒ 김혜원


어이없는 남편, 나이를 먹어도 애더라

어이없는 남편.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아이라고 하더니 딱 그 말이 정답이다. 어떤 아내가 처음부터 드세고 사나웠을까. 다 당신 같은 남자와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여리고 고운 처녀 데려다 드센 아줌마로 망가뜨려 놓았으면 적어도 절반의 책임 정도는 느껴야 양심적이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다대고 사기 운운인가 말이다.

"당신이 언제 내 마음 알아주기나 했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 먹는지. 내 취향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냐고. 당신이 여자 맘을 알아? 당신이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밥 줘'야. 내가 밥이야?"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날 뭘로 아는데? 돈 벌어다주는 기계로 생각하잖아. 당신이 나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돈' 인건 알아? 하~참 기가 막혀서. 그럼 이제 내가 밥 할 테니 당신이 나가서 돈 벌어 올래? 나도 당신처럼 집안에 들어앉아서 벌어다 주는 돈 편히 쓰면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거든."

부부싸움은 여전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서로 나이를 먹다 보니 체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후환이 두려워서 그런지 뒤끝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혼 때였다면 족히 '2주 각방' 진단이 나왔을 법한 설전이었지만 이제는 비위도 좋게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드라마를 본다.

"낄낄낄... 남눈여귀. 오랜만에 들어 보네. 요즘 방송 많이 좋아졌어. 드라마에서 저런 말도 다 하고 말이야. 우리 어릴 때 음담패설로 많이 쓰던 말인데."

"남눈여귀? 난 처음 듣는 말인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여자들은 포르노 그런 것 보다는 남자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잖아. 그런데 여보 알면 뭐해? 써먹어야 말이지. 그런 귀한 정보를 왜 알고만 있었는데?"

"아니 왜 또 그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과 혼동하지 말자. 제발 이러지 말자. 나도 이젠 싸움이 무서워. 그리고 생각해봐. 나는 당신한테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지만 당신은 나한테 뭘 보여줄 건데? 그 몸으로 말이야. 남눈여귀라며..."

이럴 땐 정말 남편과 몸이라도 바뀌어서 얄밉게 이죽거리는 남편에게 헤드록을 걸어주고 싶다. 월하노인 어디계시나요? 영혼 체인지. 우리 부부도 어떻게 안 될까요?
#울랄라부부 #영혼체인지 #김정은 #신현준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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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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