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장 하면 '가산점', 스펙경쟁 부추기나

[주장] 도교육청이 앞장서 학생자치 말살하는 처사

등록 2012.11.05 09:41수정 2012.11.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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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교의 학생회장 후보자 선거 홍보 모습 ⓒ 임정훈


지난 15일 마이스터고 원서 접수를 시작으로 2013학년도 경기도내 고등학교 입학전형이 시작됐다.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진행하는 입학전형은 마이스터고를 시작으로 예체능계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차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 아래 도교육청)이 현재 중3 수험생의 내신 성적 산출과 관련해 올해 입시부터 학생회장, 부회장, 학급 회장 등 학교자치회 임원 활동에 대해 특혜성 가산점을 주도록 해 비판이 일고 있다. 도교육청이 앞장서서 학생자치를 훼손하고 고교진학용 스펙 쌓기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은 지난 3월 '2013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 내신 성적 반영지침'(아래 반영지침)에서 고입전형을 위한 중학교 내신성적 산출 기준으로 학교활동 실적 점수를 10점(전체 200점) 부여한다고 밝혔다. 수상 실적과 학교 자치회 임원 활동에 가산점을 주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전학년의 수상 실적 및 자치회 임원활동을 토대로 내신 성적을 산출한다는 것.

반영지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학교활동 실적은 수상실적과 자치회 임원 활동 실적의 내신 성적을 10점 만점으로 하고 기본 점수 6점을 부여한다. 이 가운데 학교교육과정 내에서 활동한 자치회 임원활동 점수는 2012년 3월 1일 이후 실적부터 인정하며 3학년 10월말까지 월 0.1점씩 가산점을 부여하며, 자치회 임원활동 점수는 합산하여 2점을 초과할 수 없다.

도교육청의 이 같은 학생 자치회 임원 활동에 대한 내신 성적 가산점 정책은 고교 진학을 위한 중학생들의 스펙 쌓기를 도교육청 차원에서 대놓고 부추기는 꼴이어서 그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다. 내신 성적 가산점을 받으려면 학생회장이나 학급회장 등에 나서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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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월 ‘2013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 내신 성적 반영지침’에서 고입전형을 위한 중학교 내선성적 산출 기준으로 학생 자치회 활동 실적 점수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 임정훈


특목고 등의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라면 이 같은 내신 가산점 스펙을 위해 얼마든 학생회장 등에 나설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이른바 헬리콥터맘의 치맛바람이 무시 못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결국 학생 자치회의 본래 의미와 취지는 사라지고 내신 점수를 위한 스펙 경쟁의 수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단지 학생 자치회의 임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신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사실상 특혜이자 차별이기도 하다.

도교육청은 학생 자치회 활동 점수를 합산하여 2점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해놓아 내신 200점 만점 기준에서 보면 적은 비중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점수가 많고 적음의 차원이 아니다. 도교육청이 사실상 일부 학생에게 대놓고 특혜성 점수를 준다는 문제와, 특목고나 경기도내 비평준지역의 경우 1점 차이로도 고교 진학의 당락이 결정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는 피해와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 도교육청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고민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학생회 임원활동에 대해 봉사활동 점수를 주듯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은 도교육청이 관심을 두고 혁신학교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생자치'를 전혀 생각지 않은 무지에서 비롯한 처사로 볼 수밖에 없다.

학생회 혹은 학생 자치회라고 부르는 활동은 명목상은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활동이지만 실제로는 학교나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을 제한하고 있다. 극소수의 일부 학교를 제외한 경기도내 거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학생회장이나 학급회장 선출과정에서 제대로 된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보다는 형식적인 과정을 거쳐 학생회장을 선출하고 학교 측의 주도로 학생 자치회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실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장 선거는 학생자치의 출발이자 핵심이 아니라 구색 맞추기용 이벤트인 경우가 많다. 학교(교사)는 학생회와 학생회장을 전체 학생들의 대표(자)로 인정하기보다는 학생부장 교사나 학교 측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학생들의 지도 ․ 통제를 대신하는 대리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솔직한 현실이다.

학급 회장(반장)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담임교사가 학급 회장(반장)을 학급 학생들의 대표가 아닌 담임의 보조 역할로 생각해 자신의 일을 잘 보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편애하는 학생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 때문에 학급 학생들이 추천하거나 원하는 인물이 아닌 특정 학생이 학급 회장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임명한 학급 회장이 담임교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간에 교체하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부자(부녀)지간이나 모자(모녀)지간이 같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다닐 경우 이러한 관계를 생각해 해당 교사의 자녀를 학급 회장에 임명하는 담임도 없지 않다. 자신의 아이를 학급 회장이 되도록 해 달라는 일부 학부모들의 그릇된 요구도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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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광장에서 한 '2013 새로운교육실현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무대 위에 올라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2012 청소년 자치 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 임정훈


이러한 모든 사정을 도교육청이 제대로 꼼꼼하게 파악했다면 학생회장 부회장, 학급 회장 부회장 등에게 특혜성 내신 가산점을 주겠다는 발상은 차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 학생회에는 회장, 부회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형식적이나마 다른 부서 임원이나 대의원 등의 역할을 맡은 학생들도 많은데 어쩌자고 무슨 기준으로 학생회장 부회장, 학급회장 부회장 등에게만 특혜성 가산점을 주겠다고 새 제도를 신설하고 나선 것인지도 모호할 따름이다.

고입 전형을 준비하면서 이 같은 소식을 뒤늦게 안 중3 학생들도 "내신 점수가 되는 줄 전혀 몰랐다"거나 "(가산점을 주는 줄 알았다면) 나도 출마할 걸 그랬다. 불공평하다"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학생자치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정경수 교사(수원 유신고, 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는 "대입에서도 고교 학생회장과 부회장에게 리더십 전형에 지원할 자격을 주고 있어 이 때문에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중학교 과정에서 내신 점수까지 준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학생자치의 인식 부재와 학생들의 모든 행위를 점수로 환원하려는 무지를 증명한 것이다"라며 도교육청을 비판했다.

이러한 논란과 비판에 대해 도교육청 담당 최아무개 장학사는 "형평성을 따지자면 수상실적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수상실적만으로도 학교활동 점수 10점 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치활동 점수화가 내신에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는 이미 내신 산출이 끝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내년에 부작용 여부 등을 검토하고 논의하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개인의 수상실적에 점수를 주는 것과 학생 자치회의 일부 대표들에게 특혜성 가산점을 주는 것을 동일하게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육적 고민과는 거리가 멀고 학생자치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점수로 수치화 할 수 있는 활동과 그렇지 않은 영역 혹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을 도교육청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도교육청의 논리대로라면 학생들이 숨 쉬는 횟수까지도 점수화 할 수 있을 듯 싶다.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상처와 상실감이 깊어지기 전에 도교육청은 학생 자치회 활동에 부여한 특혜성 내신 가산점을 없애고 건강한 학생 자치를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학생자치 #경기도교육청 #학생회장 선거 #내신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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