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영업자, 그들은 정글에 있다

50대 자영업자가 된 남편, 심란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등록 2012.11.08 08:51수정 2012.11.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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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자기 사업을 시작한 후 주변 사람들도 자연히 '장사꾼'으로 물갈이가 되었습니다. 20년 간 함께 했던 그 많은 '월급쟁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앞도 뒤도 옆도 위도 아래도 온통 '사장님 세상'에서 남편은 다시금 물정을 익히고 있습니다. '세상 물정'이 아닌 '정글 물정'을 말입니다.


남편은 결코 녹록지 않고 만만치 않은, 우리 시대의 키워드이자 스티그마의 지경에 이른 이른바 '50대 자영업자'인 것입니다.

눈여기며 다니지 않아도 상가마다 대로변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게 너무 잘 보입니다. 한 집이 문을 닫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옆 가게가 폐점 세일에 들어가고, 며칠 후 그 옆집은 아무 사인도 없이 덜컥 장사를 그만둡니다. 한 밤 자고 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점포들을 볼 때마다 폐업을 결정하기까지 피를 말렸을 주인의 심정을 헤아리게 됩니다. 버틸 때까지 버텼으나 더는 어쩌지 못한 자괴감과 함께 한숨어린 불멸의 밤이 숱하게 있었겠기에 말입니다.

그렇게 황량히 비어버린 '그 집 앞'을 얼마간 지나다니다, 무작정 불로 날아든 불나방처럼, 휘황한 집어등에 유인된 오징어처럼 덜컥 새 입주자가 들어선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망해 나갔음에도, 사람 심리란 게 다른 사람은 다 안 돼도 나는 될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배운 도둑질이라 울며 겨자 먹기식인지 여하튼 점포는 하나 둘 다시 메워집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멀쩡한 실내를 뜯었다 붙였다, 좌판을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합니다. 보는 사람조차 심란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팔고 나간 집이 되돌아와 간판을 다시 올릴 때도 있습니다. '닭집, 카페, 다시 그 닭집' 이런 식으로 어지럽습니다. 그 와중에 임대업자도 편편치는 않겠지만 그대로 죽어나는 것은 소매업자요 자영업자입니다.


소매상의 죽음은 당연히 대기업의 거대한 '빨판' 탓입니다. 어디에 '꽂혔다'하면 강한 흡착력으로 지역 경제, 동네 상권을 훑듯이 쫙쫙 빨아들이면서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 놓는 것입니다.

라이트급도 못 되는 소매상들이 지역마다 들어서는 슈퍼 헤비급 대형 쇼핑센터에 나가떨어지는 것은 바람 앞에 촛불 꺼지는 것보다 더 허망합니다. 혹자는 대형 유통업계에 치이는 동네 상권을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맨몸뚱이로 시베리아 벌판에 선 형국이라고 비유합니다. 물맷돌 없이 골리앗을 마주한 다윗 신세라는 거지요.

시거든 떫지나 말든지 임대료라도 좀 만만하면 뛰든가 움치든가 어떻게 좀 운신을 해보겠지만 건물주들은 살인적 임대료로 악명 높은 대형 유통업체의 못된 것만 배웠습니다. 그네들은 봉건시대의 작은 영주, 큰 영주들의 현대판 버전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큰 영주들'의 등쌀이라고 견딜 만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가리'에 들어 온 먹이를 멋대로 요리하는 것은 승자독식권을 가진 자의 당연한 권리니까요. 시내 중심가가 아니라도 일단 대형 쇼핑센터에 들어간 순간부터 부부가 들러붙어 온종일 뼈 빠지게 일한 수입이라야 '입에 풀칠하는 정도'이고 좀 더 버는 사람이라면 '밥술이나 먹는 정도'라고 표현합니다.

물으나 마나 매출의 대부분을 '영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지요. 장사가 좀 될라치면 냉큼 임대료를 올려 그 이상을 거둬가 버리니 착취당하기는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물정 모르고 계약서에 사인 한 번 잘못하면 8년 번 돈을 8개월 만에 날리고 맨 몸뚱이로 나오는 곳, 1년 만에 집 한 채 값 물어주고 손 터는 데가 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워낙 세가 비싸니 장사가 안되면 속된 말로 '찍'소리 한 번 못내고 한 방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단 사람들이 모인다는 이유로 대형 쇼핑센터로 들어오려는 '소작인들'이 줄을 섰다니, '지주들'은 '마름'을 통해 고전하고 있는 점포를 눈여겨보았다가 센터 이미지 망친다는구실을 들어 하루아침에 쫓아내 버리고 그 자리를 딴 사람에게 줘버리는 횡포를 일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정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먹고 먹히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시드니 한가운데, '배냇 백인' 동네에서 프랑스 식당을 차린 남편은 차라리 '정글의 허'를 더듬어 찔렀다고 해야 할까요. 아님 무식해서 용감했다 할까요.

지금도 '수업료'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서 잔뼈를 굳힌 '9단들'이 득시글거리는 살벌하고 치열한 현장을 경험없는 '50대 자영업자'로서 늠름하게 헤쳐나가며 새로운 생계 수단으로 다져가고 있는 자체가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자유칼럼그룹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호주 시드니 #프랑스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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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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