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씨가 남긴 코드가 사라지지 않기를...

등록 2012.11.24 17:22수정 2012.11.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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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씨가 약간 울먹이며 대선 후보를 문재인에게 양보하였다. 정상적인 나라의 현상이라면 엄연히 존재하는 제1야당의 후보가 여당과 대립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대선 후보 가능성이 언론에 뜨자마자 일찍부터 부동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박근혜의 '대세론'이라는 것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새로운 인물을 갈망하고 있었다고 할까?

그런 안철수가 제1야당 후보인 문재인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문재인의 경륜이나 인물됨도 널리 더 알려지게 됨에 이르러 대등한 게임을 벌이다가 안철수가 양보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쉽지 않은 양보를 했다고 한다. 안철수에 따르면 자신을 정계로 불러낸 것은 국민들이었다고 한다. 그 말이 실감되는 것은, 기성 정치인들처럼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자기 돈을 써가면서 밤낮없이 동고동락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 앞에서 대선후보를 접겠다고 하였으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 속에 들어있는 무게는 비단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울림까지 내포된 듯했다.

안철수가 당분간 자신의 꿈은 접었지만 그 이상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안철수를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들이 학생층을 비롯한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나는 안철수가 다시 되돌아오리라 믿는다. 그가 한국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아주 적합한 요소를 지닌 사람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 가지만 지적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이제 하드웨어적인 것을 가지고는 한계에 왔고 소프트웨어적인 것으로 열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주목하고 싶다. 그는 어느 폐허가 된 마을이 어떻게 재생하게 되었는지를 예로 들면서, 그 마을에 대형 그림을 그려 설치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보러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마을 사람들이 각자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한 말들이었다. 이런 안목은 컴퓨터 전문가, 특히 소프트웨어적인 것이 미래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분이 국민과의 깊은 소통, 특히 젊은이와의 소통에 큰 장점을 지닌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나의 뇌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당선되어 청와대 집무실 책상에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있지 않고 대신 종이 위에 쓴 결재 판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저 분이 컴맹이 아냐?" 하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얼른 드는 생각이 컴퓨터를 모르니 국민과의 소통이 어렵지 않을까 특히 젊은이들과의 소통이…!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후 전개된 모습을 보면서 내 직관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방식대로 밀어붙이는 식의 일을 하는 전시대 형의 지도자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분의 일하는 방식은 일단 계획을 면밀히 세운다. 그 계획이 잘 되었다 싶으면 그 후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다. 좌우에서 반대를 해도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면서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일처리 방식이 칭찬받던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잠바 차림으로 검은 안경 쓰고 진두지휘하던 시절에는 그게 맞는 지도자 상이었는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 둔한 것을 지나 안하무인 유아독전식이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거의 무지에 가까운 것이고, 어쩌다 대화의 한토막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은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사오정에 가까운 대화가 아니었는가 한다.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정보통신은 사람을 변화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구조와 사업전반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옛날 아주 옛날, 책이 출판되지 않던 시절, 손으로 필사해서 겨우 돌려가며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혈연에 의해 왕권이 세습되던 시절인데, 그것이 꽤 길게 유지되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목판인쇄나마 인쇄술이 발달하여 제한적이지만 책을 대량생산할 수 있으면서 부터였다. 혈연에 의해 유지되던 시대에 신진 사대부 계층이 서서히 등장하게 된 것은 책을 읽는 독서계층이 생기면서 의식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귀족 계층 가운데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하는 와중에 이 독서계층을 자기 휘하에 둠으로써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식으로 과거제도를 만들어 그 시험을 통해 독서계층을 사회지도층으로 흡수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 분화가 심화되면서 각 방면에 새로운 지식인(독서계층)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모든 일은 인쇄술의 발달로 책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또 한 번 기술적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목판인쇄가 아니라 활자 인쇄를 통해 거의 전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보에도 접할 수 있을 만큼의 출판물이 번성하게 되었다. 성경도 사제나 수도자만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고전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되고, 교육도 이제 특수한 양반집 아이들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주어져 있다고 헌법에 박아놓게 되는 정도가 되었다.

이 활판인쇄의 발달은 너무도 눈부시어, 처음에는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판을 짜서 책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인쇄의 넘기는 시절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타자를 찍어 그것을 통해 대량생산할 수 있는 조판인쇄라는 것을 거치는가 하더니, 마침내 컴퓨터의 등장으로 활판이니 조판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단계를 건너뛰어 컴퓨터 인쇄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이르러 지식사회에 어떤 특성이 생겨났는지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활판인쇄와 조판인쇄의 단계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특정 그룹의 '지식인 사회'가 공고히 뿌리박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장준하가 처음 발간한 '사상계'라는 잡지를 들 수 있다. 그 잡지는 한때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의 고급정보와 지식들이 그 잡지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당시의 지식인 사회라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고 좁아서 그 잡지의 필자들은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로 작지는 않았더라도 거의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좁고 한계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 계층의 양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이다. 책을 내고 출판하는 일도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그들끼리 다방에 모여 앉아 차 마시며 고급지식을 나무며 즐기던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컴퓨터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파괴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특정한 지식인으로 사회적으로 공인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책을 낼 수도 있다.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 회사에서는 이른바 '시민기자'라는 것을 표방하고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으니, 사이버 공간에 마음대로 글을 올려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즉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재주만 있으면 작가도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이라 불리는 이 세계도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전문화되고 있어 인간 사회나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모든 소통이 여기서 일단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이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 학문이나 예술, 기술이나 과학 등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론의 중심은 이제 낡은 인쇄물을 통한 종이신문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먼저 소통이 이루어기 일쑤이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종이로 된 잡지는 더 이상 발견하지 않고 사이버에서만 낸다고 한다.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 사이버 세계를 통하지 않고는 넓게 소통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한국은 이런 정보혁신에 있어 아주 빠르게 변하는 나라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선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양극화현상도 심화되어 있다. 노인계층과 젊은 계층은 거의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심화되어 있다. 따라서 의식의 지체현상도 심하다. 지방과 도시의 차별 못지않게 정보통신에 둔한 사람, 아직도 옛날 박정희 시절의 향수를 고집하고,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의 의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은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성향도 자연히 젊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의식의 지체현상을 보이는 사람들과 정보통신 발달에 적응하지 못한 세대가 많고 그 간격이 크다보니까 대선에 보이는 투표성향도 확연히 구분되기에 이른다.

안철수 현상은 여러 각도에서 더 살펴보아야 하지만, 그가 젊은 세대와 눈높이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그의 소프트웨어적인 사고와 행적, 그것만으로도 젊은 세대와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이명박대통령과 같이 컴맹이 아닐까 걱정한다. 젊은이들과 만나 춤 한 번 추고 점심 한 번 먹는다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일생을 더듬어 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궁전에서 사람들의 수발을 들어가며 살았고, 객관적으로 여인으로서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애환을 겪은 분이 아니기 않은가?

요즘은 그분의 국가관이나 역사관이라는 것이 이 시대와 세대에 맞는 것인지 그것도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떠나 정말 그녀가 국민과 제대로 잘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약간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전임자 이명박대통령과 같은 전철을 밟을까 그게 두렵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꿈은 그가 직접 자기 손으로 정책을 요리하고 실천하는 일에서는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오히려 더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정치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본다. 그의 소프트웨어적인 생각은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일에서 앞으로 더욱 필요한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소프트웨어 #정보 #소통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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