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농사, 키우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닙니다

버릴 게 없는 '최고의 식물', 호박 톺아보기

등록 2012.12.02 16:37수정 2012.12.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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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은 텃밭에서 몇 가지 작물을 키웠다. 봄에 상추는 씨앗으로, 가지, 고추, 호박 등은 어린 모종을 시장에서 사다가 심었다. 손바닥만 한 농사지만 고생도 꽤 했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힘든 건 풀이었다. 농약을 안 쓰니 풀을 뽑거나 베어 눕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또 풀밭이 되곤 했다. 또 벌레도 잡아주는 등 여러 가지 일에 땀깨나 흘렸다. 농사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도 텃밭농사를 지어보면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씨앗을 뿌리고 얼마 후에 돋아나는 새싹의 감동,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하는 설렘 등. 또 주위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새·풀벌레·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땀 흘려 일을 하다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나는 스스로 농선(農禪)한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여러 좋은 점 중에서도 으뜸은 수확의 기쁨이다.

호박 덩굴손의 놀라운 지혜와 치열함

여러 가지로 미숙하다보니 해마다 잘된 작물과 실패한 작물이 달라진다. 올해 성공한 건 단연 호박이다. 늘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지은 것들을 얻어먹곤 했는데, 올해는 내가 호박을 따서 주는 기쁨도 누렸다. "이제 농사꾼이 다 됐네"라는 말씀에 우쭐하기도 했다.

호박은 기르기도 쉽다. 이른 봄에 구덩이를 파서 뒷간 거름을 넣어둔 후 4월에 씨앗으로 심거나 5월 초쯤 호박 모종을 사다가 심는다. 이때 구덩이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보통 밭 가장자리나 올라탈 게 있는 곳이 좋다. 여름이 되면 그 일대가 호박덩굴로 무성하게 우거지기 때문이다. 호박을 가꾸면서 늘 놀라는 것은 이 왕성한 생명력이다.

호박은 남아메리카 원산이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한다. 덩굴의 단면이 오각형이고 털이 있으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간다. 그런데 이 덩굴손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이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논문 제목은 '오이 덩굴손이 어떻게 감기고 더 감기나'이다. 이제까지 덩굴손이 감긴 모습을 무심히 보아 넘겼다. 사람이 물건을 감듯이 끝을 서너 번 더 감는 게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님을 논문은 알려준다.


사람이 끈으로 물건을 감을 때는 최대한 잡아당긴 후 그 끝을 몇 번 감아 맨다. 덩굴손은 근육이 없으니 사람과 같은 방법을 쓸 수가 없다. 내친 김에 호박밭에 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덩굴손은 한 방향으로만 감긴 게 아니었다. 덩굴손 중간부분의 일부가 거꾸로 감겨 있었다.

즉, 일부는 시계방향으로, 일부는 시계반대방향으로 감겨 있었다. 오이나 호박은 사람과 다르게 양쪽 끝을 먼저 감은 다음 중간 부분을 뒤틀어 반대로 꼬아서 더욱 팽팽하게 물체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덩굴손의 이 놀라운 지혜와 치열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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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덩굴손 양끝을 고정시킨 후 중간부분(화살표)에서 역방향으로 더 감아서 팽팽하게 하는 놀라운 지혜 ⓒ 서광석


호박꽃은 꽃이다

흔히 사람들은 못 생긴 여자를 호박꽃에 비유하곤 한다. 호박꽃이 들으면 참 억울할 일이다. 샛노란 호박꽃을 찬찬히 살펴보면 따뜻하고 순수한 느낌에 반하게 된다. 호박꽃을 보면서 사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자신한다. 흰색 박꽃은 저녁에 피어 밤에만 볼 수 있는 데 반해 호박꽃은 아침에 피어 낮에도 볼 수 있다.

호박은 수꽃과 암꽃이 따로 핀다. 보통 6월 하순쯤이면 줄기 아래쪽에 수꽃이 피고, 좀 더 자라 7월초가 되면 작은 씨방을 달고 있는 암꽃이 핀다. 보통 수꽃은 많이 보이는데 암꽃은 드문 편이다. 수꽃 꽃잎을 잘라서 보면 남성 생식기가 연상된다. 벌이나 나비가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옮겨서 꽃가루받이(수분)가 되는데, 장마철에는 사람이 직접 붓으로 꽃가루받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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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수꽃 꽃가루가 많이 보인다 ⓒ 서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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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암꽃 아래에 씨방을 달고 있다 ⓒ 서광석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호박 요리

꽃가루받이에 성공하면 호박이 떨어지지 않고 자란다. 주먹만 하게 자란 애호박을 따다가  찌개를 끓여 먹으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또 애호박을 썰어 밀가루와 달걀물을 씌운 다음 프라이팬에서 기름으로 지진 호박전과 애호박을 잘게 썰어 밀가루와 함께 반죽한 뒤 지진 호박부침개도 빠뜨릴 수 없다. 또 서리가 오기 전에 열린 애호박을 썰어 햇빛에 말려서 호박고지를 만든 후 묵나물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으면 겨울철 반찬으로 요긴하다.

딸 시기를 놓친 애호박은 계속 여물어 청둥호박(늙은호박)이 된다. 우리 집에서는 이 청둥호박을 적당히 잘라서 녹즙기를 이용해 갈아서 호박범벅을 만들어 놓은 다음 호박부침개나 호박죽을 해 먹는데, 달작지근하면서 참 맛있다. 호박씨 또한 단백질과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우수한 식품이다. 이걸 많이 먹게 되면 두뇌의 발달이 좋아진다는 우리나라 속담으로 '뒤에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호박은 열매만 먹는 게 아니다. 무성하게 자라면 어린잎을 따서 찌거나 삶아서 쌈 싸먹어도 좋다. 멸치를 풀어 넣어 끓인 된장에 호박잎으로 쌈 싸먹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호박꽃을 이용한 요리와 호박꽃차로도 먹는다니 정말 호박은 버릴 게 하나 없는 최고의 식물이다.

호박은 베타카로틴이 있어 노란 색깔을 띤다. 이 베타카로틴은 사람이 먹고 난 후 몸 안에서 비타민A로 바뀐다. 비타민A는 심장병, 뇌졸중, 시력 감퇴, 암 예방, 노화 방지 등의 효과가 있어 건강에도 좋다.

호박 속담과 희망세상 만들기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 되냐'는 옛날 속담이 있다. 못생긴 사람이 꾸민다고 외모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통 쓴다. 며칠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가 있다. 각 후보들의 온갖 감언이설에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는 말만 보면 비슷비슷한 수박 모양일 때가 있다.

이 때 그 후보를 판단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과거를 보는 것이다. 이제까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지향했던 가치기준 등을 살펴보면 쉬울 듯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기에. '호박을 놓치'는 일 없이 '호박이 넝쿨째 떨어'지는 소식을 간절히 소망한다. 희망세상은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열린전북>에도 실렸습니다.
#호박 #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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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생태학교 공동대표....교육, 자연, 생태, 깨달음, 자연건강, 텃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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