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창의적 체험활동' 그렇게 자랑하더니...

[이명박정부와 초등교육⑦] 탁상행정에 골병드는 학교 (1)

등록 2012.12.05 10:52수정 2012.12.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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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는 2007개정교육과정이 막 시행되던 2009년에 교육과정을 새로 바꿨다. 2009개정교육과정은 총론(주로 교육과정 운영 방법)을 주로 바꿔서 교과별로 20%를 증감하거나 집중이수제를 하게 하고,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합쳐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운영하게 하였다. 특히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통해 창의인성 교육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학교현장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체험활동은 양념, 한문·영어 교과 수업시간으로 전락

교과부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학생들이 특기와 적성을 함양하고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그런데 많은 초등학교에서 체험활동도 하지만 동시에 한자, 영어 수업이 이뤄져 취지가 무색할 정도이다. 아래 표를 보면 현재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이 적용되는 초등학교 1~4학년에서 한자, 영어 등을 17시간이상 가르치는 학교가 4000개(교과 중복 포함)가 넘는다. 초등에서 1년에 17시간 이상이라는 것은 독자적인 교과로 취급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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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국 초등학교 1~4학년에서 창체 시간에 교과를 배우고 있는 학교 숫자입니다. 체험중심이고 교과외 활동을 하는 시간인데 실제로는 교과시간이 운영되어 초등 교과가 늘어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 신은희


현장 교사들은 그간 창의적 체험활동(이하 창체) 시간이 교과시간으로 전락해 학생 부담을 키운다고 비판하였는데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한자의 경우 체계적인 교육과정도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하라고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사교육에서 시행하는 한자급수 체계대로 한자쓰기 연습을 시키는 데가 많다. 학교에는 학교장을 비롯해 온갖 친분관계를 이용해 교재를 팔려는 업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공교육기관인데도 불구하고 한자능력검정시험 대비반을 따로 운영한다고 하여 학교인지 학원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영어는 초등 3학년부터 교과수업을 하기 때문에 굳이 1~2학년에 선행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 어설픈 선행학습은 학습 편차와 사교육비를 늘리고 학생들의 흥미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초등에서는 학교 특색이라며 영어를 한다. 작은 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의 수업시수를 채우는 방편이기도 하고, 심지어 교과부가 창체 시간에 EBSe 수업을 하라고 권장한다. 전국적으로 창체시간 영어수업 비율이 가장 높은 경북 지역의 교사들은 영어 안하는 학교를 찾는 게 더 어렵다고 푸념할 정도이다.

교과 진입 통로가 된 창체시간, 원인은 바로 어정쩡한 교과부

대체 왜 창체시간이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은 교과부이다. 학부모들에게 교육과정을 선전할 때는 자발성, 창의성, 잠재력 신장, 체험 중심 등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붙여 자랑을 했다.


도입 취지 : 창의적 체험활동은 제7차 교육과정과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의 재량활동 중 창의적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한 교과 외 활동이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을 계발·신장하고, 자율적인 생활 자세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동체 의식과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자질 함양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이다.(창의적 체험활동 매뉴얼 4쪽)

그런데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6) 정보 통신 활용 교육, 보건 교육, 한자 교육 등은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2009개정교육과정총론 7쪽)

이 조항을 보고 호시탐탐 한자교육을 넣고 싶어 하던 관리자 중에서는 창체 시간에 꼭 한자를 편성하라고 강요하고, 교과부 문서에서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서울시 교육청 교육과정 연수에서도 한자가 필수라고 꼭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강남쪽에서는 이미 한자교재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결국 창체시간이 한자교재 팔아먹고 학생들에게 한자자격시험 보라는 미끼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교사들은 이 조항이 반드시 한자교육시간을 따로 편성하라는 게 아니라 교과시간 등을 이용해 통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반박한다.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규정한 범교과 영역(총38개)
민주 시민 교육, 인성 교육, 환경 교육, 경제 교육, 에너지 교육, 근로정신 함양 교육, 보건 교육, 안전 교육, 성 교육, 소비자 교육, 진로 교육, 통일 교육, 한국 문화 정체성 교육, 국제 이해 교육, 해양 교육, 정보화 및 정보 윤리 교육, 청렴․반부패 교육, 물 보호 교육, 지속 가능 발전 교육, 양성 평등 교육, 장애인 이해 교육, 인권 교육, 안전․재해 대비 교육, 저출산․고령 사회 대비 교육, 여가 활용 교육, 호국․보훈 교육, 효도․경로․전통 윤리 교육, 아동․청소년 보호 교육, 다문화 교육, 문화 예술 교육, 농업․농촌 이해 교육, 지적 재산권 교육, 미디어 교육, 의사소통․토론 중심 교육, 논술 교육, 한국 문화사 교육, 한자 교육, 녹색 교육 등

교과부의 이런 지침은 세 영역에 대한 특혜이기도 하다. 교과부가 가르치라고 강조하는 범교과영역에는 이것 말고도 30개가 넘는 내용이 있다. 범교과 영역은 교과만으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적 변화 상황을 교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하여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교과부는 왜 초등에서만 굳이 세 항목을 강조하였을까? 보건은 얼마전 보건교육과정제정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한자는 왜 그랬을까? 현장에서는 교과부가 외부의 로비에 굴복했을 거라는 비판이 많다.

사정이 어쨌든 앞뒤가 맞지 않는 교육과정 총론으로 초등학교 창체시간에는 버젓이 영어, 한자 교과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줄여 학생 부담을 경감시킨다더니, 엉뚱하게 창체 시간에 과목이 2~3개씩 늘어나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  초등학교 과목 줄이자면서 한자는 또 왜 시켜?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교과수업을 못하게 하고 학교에서 정말로 통합적인 체험중심 교육이 이루어지게 관리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업무폭탄이 된 입학사정관제 대비 '누가기록'

누가기록도 문제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주당 3~4시간인데 학교생활부에 날마다 시간을 기록하라고 하여 가뜩이나 업무가 많은 교사들에게 업무폭탄이 되고 있다. 대체 왜 누가기록을 해야 할까? 이는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 학생들의 기록이 스펙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는 스펙쌓기용 활동을 하기에 학교별로 교육비 차이가 커서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런데 입시와 연관없는 초등학교까지 "원칙적으로" 누가기록을 하라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나와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특성상 학교 적응 활동이나 학급 특색, 기본생활습관 기르기 활동이 많아 학생별로 차이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기록을 안했다가 올 1, 2월에 전국 초등학교에 난리가 났다. 연말에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누가기록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전 학교에 누가기록을 해달라고 요청이 온 것이다. 초등학생은 전학생이 많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소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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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 기록부를 보면 교사들이 1년간 100시간 넘는 창체 시간을 이렇게 누가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성적표에는 전체 통계가 나가고 1년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 기록할 필요가 없는데도 교과부는 전국의 교사들이 이런 기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 신은희


교과부 창의인성교육 담당자에게 이런 상황을 말하니 정말로 초등은 그러냐고 오히려 반문하였다. 교과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초등 특성은 고려하지도 않고 교육과정이나 학교생활기록부를 바꾸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누가기록은 1년이 지나면 쓸데가 없기 때문에 학교별로 결정을 해서 기록을 안해도 된다고 하였다. 전학생이 많으니 초등에서는 이런 조항을 빼달라고 했더니 이미 나온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교과부는 처음에는 몰랐다고 발뺌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면 어쩔 수 없다고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숫자 놀음, 문서 장난에 놀아나는 창의적 체험활동

창의적 체험활동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교과부는 창체 영역을 자율, 동아리, 진로, 봉사 4개 영역으로 나누어 학교, 학생 특성에 맞춰 운영하라고 하였다. 초등학생의 경우 대부분 자율활동 영역의 내용이 많다. 그런데 교육과정 연수를 가면 반드시 4개 영역을 모두 하라고 하여 학교에서는 무조건 4개 영역을 꿰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어, 한자, 컴퓨터 수업 시간이 동아리활동으로 포장되어 문서상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배운 적도 없는 영어, 한자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왔는데 진로영역도 따로 나눠 공부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창체 평가내용을 보면 이게 교과학습 내용인지 체험활동 내용인지 헷갈린다. 

<1학년 동아리 활동 평가 사례>
- 영어 학습 활동에 참여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며, 듣고 따라 말하기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며 발음이 정확함.
- 영어 학습에 흥미가 있으며 역할 놀이를 하면서 사과와 감사하는 말을 익혀 바르게 사용함.
- 바른 자세로 한자를 획순에 맞게 쓰는 연습에 성실히 참여함.

한편 얼마 전에는 창체 운영 시간과 방법을 묻는 이상한 공문이 왔다. 학교 수업은 학년별로 진행되는데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년군제를 택했다고 늘 두 학년씩 묶어서 통계를 내게 한다. 이럴 때마다 지난해 자료, 올해 자료 다 뒤져서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런데 창체 운영방법을 쓰는 칸을 보고 기가 막혔다. 매주 고정된 시간을 하는지, 격주로 묶어서 하는지, 전일제로 하는지, 반일제로 하는지, 4가지 경우중 몇 가지를 하는지를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지역교육청 통계자료를 보니 15가지로 분류를 해놓았다. 수학 시간에 경우의 수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 자료를 모아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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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조사하는 양식입니다. 학교는 학년단위로 운영하는데 꼭 두 학년을 묶어 시간 써내고 운영방식까지 수치화합니다. 이런 자료에 답하다 보면 교사는 꼼짝없이 행정요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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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운영방식 조사통계표입니다. 수학공식처럼 만든 표에 보기만 해도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창의적 체험활동이 탁상행정으로 업무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 신은희


창체 운영, 학교에 맡기고 '문서놀음'은 그만!

창체 시간의 뿌리는 7차교육과정의 재량활동 시간이다. 교사들은 이 때부터 이미 교과교육시간만으로 하기 어려운 내용, 학교나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따로 공부하거나 교과시간과 통합해 체험활동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혁신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산초등학교나 거산초등학교 등도 모두 7차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운영해왔다. 현장에서 아쉬웠던 것은 이름이 재량이냐, 창체냐가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기에 학교예산이 부족하고, 교사나 학교 차원으로 하기에 어려운 일들도 많아 지역과 교육청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교과부는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특이한 영역이 생기는 것처럼 자랑하고 특별활동과 통합해 이름도 바꾸더니, 운영방법에 간섭하고 서류만 더 복잡해지게 만들고 있다. 교사들은 교과시간 운영보다 시간도 얼마 안되는 창체 운영이 더 복잡하고 짜증난다고 한다. 평소 활동은 알아서 하겠는데 문서에 꿰맞추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창체를 없애버리는 게 낫다. 창체가 없어도 초등은 교과시간을 통합해 충분히 감각체험중심 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런 문서장난할 시간에 교재연구를 더 하는 게 훨씬 낫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탁상행정을 벗어나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창체의 문제를 검토하기 바란다.
#창의적 체험활동 #누가기록 #한자수업 #영어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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