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봤다, 한 여성을 울린 크로아티아의 광기를

[불혹 배낭여행기④] 그 사내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줄까

등록 2012.12.13 14:18수정 2013.03.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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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중심가. 성당 첨탑 위로 빛나는 햇살이 눈부시다. ⓒ 홍성식


민박집 부부를 뒤로하고 두브로브니크 시내로 나왔다. 햇살은 눈이 부셨고, 바다 빛깔은 더 눈부셨다.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의 극명한 대비. 아무리 형편없는 사진촬영 실력을 갖춘 사람이 찍더라도 그대로 엽서가 될 듯한 풍경이 도시 전체에 펼쳐지고 있었다. 벌거숭이 아이들은 오래전 축조된 무너져가는 성벽에 올라 아드리아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 다이빙에 놀란 바다가 투명한 포말을 깊숙한 곳에서 뿜어 올리면 사십 평생 처음 보는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황금빛 머리칼을 가진 인형 같은 꼬마아이들이 백사장을 병아리처럼 종종거리고, 올드타운으로 들어서니 미적 완성도 높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발 딛는 곳마다 부지기수다.


다녀온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명 빠짐없이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할 만도 했다. 아드리아 바다가 바로 눈앞에서 출렁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크로아티아산 맥주와 해산물을 주문했다.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자리돔 물회와 소주도 근사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저녁식사는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여러 병 마신 맥주에 위스키까지 두어 잔 마셔 취기가 올라오니 그 바다에 발을 담그면 몸의 전부가 새파란 보석으로 변하거나, 내가 청옥빛 바다의 일부가 돼버릴 듯한 착각이 몰려왔다. 이윽고 석양 무렵. 기막힌 풍광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여행자들을 유혹했다.

아드리아 바다의 푸른색과 그 위로 떨어지는 태양의 붉은색이 기막힌 조화를 이뤘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의 감탄과 카메라 플래시가 곳곳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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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석양. 빛의 축제 혹은, 색채의 향연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 홍성식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언덕을 올라 민박집으로 돌아온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낮에 본 친절한 여성의 남편은 혼자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함께 한잔하자고 청하고 싶었으나 다소 충혈된 그의 눈동자와 침묵이 어색해 인사만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병원에서 돌아온 숙소의 여주인은 약속대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줬다. 나가서 돌아다닐 때 목이 마르면 마시라고 그걸 병에 담아 건네기까지 하는 상냥함을 보여준 그녀가 고마웠다. 나보다 세 살 더 많은 착한 여성. 크로아티아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풍광을 닮아있었다. 남편은 전날의 과음 탓인지 그때까지 자고 있는 듯 보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둘째 날 역시 만족스러웠다. 숙소 주인 여성이 알려준 해변은 고적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소풍 나온 현지인 가족들 몇몇만이 사파이어빛 바다를 독점해 한가로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그걸 웃음 머금은 얼굴로 바라보는 부모들. 그 광경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내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드는 경험. 쉽사리 겪을 수 있는 흔한 체험은 아니었다.

내전의 상처, 사내는 아직도 전쟁의 기억 속을 살고 있다

해변에 접한 항구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로크룸 아일랜드'도 절경 중 절경이었다. 섬에는 공작 수백 마리를 풀어놓아 잔디에 누운 내 머리 위로 꼬리 펼친 공작이 걸어 다녔다. 이것 역시 평생 처음 겪는 일. 사람들에 익숙해져서인지 겁을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다가오는 공작을 피해 다니는 풍경이 어찌 보면 코믹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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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을 제 안에 축약한 도시 두브로브니크. 항구엔 로크룸 아일랜드로 가는 배가 1시간 간격으로 오간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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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의 관광객들. 앵무새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귀엽다. ⓒ 홍성식


올드타운으로 돌아와 허름하지만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식당에서 맛본 종잇장처럼 얇은 엔초비 피자. 한국에서는 피자를 1년 가야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내게 '이런 맛의 피자도 있구나'라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그 레스토랑 역시 민박집 여성이 알려준 곳이었다.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숙소 근처 언덕에 앉아 해지는 것을 바라봤다. 붉은 지붕, 푸른 바다, 붉은 해, 푸른 하늘. 지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메마른 성정 탓인지 자연경관에 감탄하며 살지 못했다. 크로아티아는 그런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풍경에 감동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니.

더운 날씨에 이곳저곳을 마구 헤매다 보니 일찍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지. 속사포 같은 남자의 취기 어린 목소리와 여성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주인 사내와 아내였다.

크로아티아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상황이야 왜 짐작이 되지 않겠는가. 새벽에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여성이 운다는 것은 싸움이다. 부부싸움. 내가 개입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달아나버린 잠을 다시 부르며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참을 계속되던 남자의 투정 섞인 화난 목소리와 여성의 울음은 창밖이 훤히 밝아올 무렵에야 끝났다.

무슨 일일까? 인간은 호기심과 궁금증 때문에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존재다. 모른 척하기에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주인 여성이 너무 불쌍했다. 느지막하게 거실로 나갔다.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주인 사내는 잠들었는지 여성 혼자 낡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침인사를 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아직 빨갛다. 커피 한 잔을 가져온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른 시간에 잠이 깼을 것인데 미안하다. 남편은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아주 가끔 술에 취하면 저런다. 20대 초반에 전쟁에 나갔는데 그 상처 때문이다. 정말 미안하다."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괜찮다. 나는 잠들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고 얼버무리는 것 외엔 더 해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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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 뒤엔 역사 혹은,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크나큰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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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은 '유고슬라비아 분리-독립 내전'의 상처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 내전은 크로아티아만이 아니라, 유고연방에 속했던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등을 집단학살의 광기로 몰아갔다. ⓒ 위드시네마


그랬구나. 전쟁이 준 트라우마 탓이었구나. 알다시피 19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있는 많은 나라들이 분리·독립을 선언한다. 크로아티아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방의 주도국이었던 세르비아는 크로아티나와 보스니아·슬로베니아와 코소보 등이 개별국가로 독립하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종교와 인종이 달랐던 연방국들은 국가적·인종적·종교적 갈등에 휩싸였고, 그게 이른바 '내전'으로 연이어 불붙는 비극을 겪는다. 당시 세계는 이들 나라가 위치한 발칸반도를 일컬어 '유럽의 화약고'라 지칭했다.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 수만의 가톨릭 신자와 무슬림을 무차별 학살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입에 담기 어려운 끔찍한 강간 역시 '상대 인종의 혈통적 순수성을 제거한다'는 어이없는 목적 아래 매일 벌어졌다. '크로아티아 내전' 역시 1년 이상을 끌며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종격투기 팬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는 'K-1 파이터' 미르코 크로캅 역시 이 전쟁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다. 10대 후반에 내전을 겪었던 그는 부친 상실의 슬픔과 허탈함을 자기단련과 운동을 통해 달래야 했다. 크로아티아에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 파괴한 개인의 삶,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민박집 주인 사내도 그랬다. 아내보다 두 살이 적다니 포탄과 증오가 범람하는 내전에 군인으로 동원됐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하나 혹은, 스물둘. 얼마나 참혹한 장면을 많이 봤을까. 전쟁은 상대를 죽이거나 제압해야 자신이 살 수 있는 극단의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간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인간적인 공포의 시간은 인간을 황폐화시킨다. 그게 전쟁의 본질이다. 크로아티아 내전 역시 그랬을 것이다.

주인 사내는 자기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였거나, 친구가 죽는 걸 눈앞에서 봤던 것일까? 아니, 꼭 그렇게 극단적인 입장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전쟁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버리고도 남을 힘을 지녔다. 비극적 역사가 폭력적으로 파괴한 개인의 삶. 측은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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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만 보이는 두브로브니크 해변의 오후. 그러나, 이 매혹적인 풍경 속엔 집단학살의 우울한 기억이 웅크리고 있었다. ⓒ 홍성식


나 역시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다면 똑같은 체험을 해야 했을 것이다. 전쟁과 죽고 죽임을 피하고 싶다는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주인 사내는 겨우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나라에 질긴 매독처럼 잠복해 있는 아픔과 내전의 역사. 누가, 무엇이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줄 것인가.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생채기.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날은 아무도 없는 바닷가 언덕에 올라 안주도 없이 싸구려 위스키를 온종일 마셨다. 하지만, 취하려고 작정하며 마신 술은 행복한 취기를 주지 못한다. 매혹적인 풍경 속에서 생긴 슬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문예지 <문학의오늘>에 연재되고 있는 여행기입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유고 내전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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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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