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여성 대통령, 실패 가능성 높아

[주장] 성공한, 실패한, 논쟁적인 여성 대통령의 사례들

등록 2012.12.13 10:05수정 2012.12.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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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필자는 여성이 정치를 하면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지고 약자를 배려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란 믿음으로 <세계를 움직인 12명의 여성>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사례연구를 해보니 성공한 리더가 있는 반면, 실패한 리더도 있었고, 논쟁적인 리더도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는 처절하게 실패한 것을 발견하고 "준비된 여성리더만이 성공한다"는 평범하고도 값진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필자가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여성지도자의 리더십스타일이 성공과 실패와 직접적인 관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결과는 책 출간 이후에 등장한 여성리더의 경우에도 일관되게 발견된다. 여성대통령(수상)의 리더십스타일은 충원과정과 밀접히 관련된다. 여성리더의 충원경로는 아래의 표와 같이 남편의 후광, 아버지의 후광, 정계 조기입문, 전문직 경력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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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리더의 충원경로와 리더십스타일, 성공의 상관관계 ⓒ 조기숙


여성대통령의 충원경로가 성공여부 결정

첫째, 남편의 암살이나 사망으로 부인이 지도자가 된 경우이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퀴노, 니카라과의 비올레타 차모로,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방글라데시의 베굼 칼레다 지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정치를 잘 몰라 유약한 여성적 리더십을 발휘했기에 쿠데타나 권력투쟁을 겪으며 대부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들은 사별한 남편이 추구하던 정권교체의 상징이 됨으로써 정권교체에 성공한 게 최대의 공적이다.

둘째, 독립운동가나 민주화투사인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선된 맏딸의 경우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수상인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정적에 의해 사형당한 파키스탄의 자유주의 정치인의 딸 베니지르 부토,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모하마드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정치를 배운 탓에 남성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들은 대체로 철권통치를 하다 부패에 연루되거나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최고지도자가 된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을 대통령궁에서 공주처럼 자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남과 타협할 줄도 모르고 갈등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철권통치를 자행했다. 인디라 간디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빈사상태에 빠뜨린다. 황금사원에서 시위를 하던 시크교도에 대한 진압명령을 내림으로써 2700여 명을 사살한다. 결국 그 여파로 간디는 시크교도에 의해 암살당한다.

부토는 누구도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부토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정책결정은 모두 비서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친척들을 주요관직에 앉혔다. 중책은 아첨꾼에게 돌아갔고 남동생은 거리에서 총살당했다. 남동생의 죽음 뒤에는 그녀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부토는 남편 아지브의 엄청난 비리 연루로 부정부패와 경제난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실각했다.


부통령이었던 메가와티는 러닝메이트였던 와히드 대통령이 무능과 부패로 탄핵되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민생대통령을 자처했지만 전문성이 없어 장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뒤로 물러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녀에겐 '침묵의 정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분리세력과의 평화노력도 실패하고 군사작전에 돌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경제도 살리지 못한 채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셋째, 일찍이 정치에 입문해 바닥부터 남성과 겨루며 자력으로 정상에 오른 경우에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 골다 메이어가 있다. 이들은 남성과 권력투쟁을 통해 승리했기에 남성보다 더 강경한 남성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외국과의 전쟁도 불사해 여성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지지자들로부터는 성공한 리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상대 정차로부터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넷째, 자신의 높은 교육수준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계에 영입된 경우이다. 아일랜드의 매리 로빈슨과 메리 매컬리스, 아이슬란드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대통령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수상이 별도로 존재하는 나라의 상징적 대통령으로 성공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성을 능가하는 전문성을 겸비했고 양성적 리더십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전문성 갖춘 여성리더만이 성공했다

실질적인 여성 리더로서 성공한 경우는 노르웨이의 그로 브룬트란트,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 설리프 정도이다.

브룬트란트는 노르웨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공중보건 석사학위를 받은 후 노동당에 입당해 행정관으로 활동하다 장관으로 영입된 후 총리가 되었다. 클라크는 일찍이 정당 활동을 시작했으나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를 몇 년 하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할로넨은 헬싱키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노동조합 중앙본부 변호사로 재직하다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메르켈 또한 라이프찌히대학에서 물리학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정계에 입문한다. 2011년 여성인권을 옹호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설리프 또한 미국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석사를 받았다. 쿠데타로 그녀가 참여했던 정권이 중단되었을 때에는 미국으로 날아가 세계은행에 근무하기도 했다.

성공한 여성 리더의 공통점은 높은 교육수준과 전문성에 있다. 외국의 명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교수, 연구원 등 전문직에 종사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수상이나 대통령직을 마친 후에는 UNDP, WHO, 유엔인권위원회 등의 사무총장직에 임명될 만큼 국제적인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성공은 개인의 준비성도 중요했지만 그들의 성공을 보장할 만큼 문화적으로나 시스템이 앞 선 나라의 리더였기에 가능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뉴질란드, 독일은 대표적인 복지국가이며 앞의 세 나라는 남녀평등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들 리더십의 특징은 한편으론 단호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약자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양성적 리더십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설리프의 경우가 예외적인데 가부장적인 아시아나 남미의 개발도상국과 달리 아프리카는 여권이 매우 강한 문화적 전통이 있다.

이들은 모두 약자의 복지를 확충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함양한 진보적 정치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르켈이 유일하게 보수정당 정치인이지만 메르켈은 상대정당에 적대적이었던 대처와 달리 지속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대연정을 통해 수상이 되었다.

아버지 후광으로 당선된 맏딸 모두 실패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으로 정상에 오른 여성리더의 경우는 모두 실패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들 여성이 남성의 후광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들 나라가 가부장적인 정치후진국이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정치가 안정되고 발전되었다면 여성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남성의 후광으로 당선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사망으로 지도자가 된 경우는 그나마 집권엔 실패했더라도 독재로부터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상징의 역할이라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선된 맏딸의 경우는 모두 처절하게 실패했다. 맏딸이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었을지 몰라도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한 가부장제의 상징으로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이들이 갈등을 조장하고 부패에 연루되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민주적인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위의 분류에 따르면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 맏딸의 경우에 해당된다. 다른 리더의 경우 독립의 아버지, 민주투사의 아버지를 둔 것과 달리 친일파 독재자 아버지를 둔 점도 특이하다. 수많은 외신이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전례가 없기에 뉴스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아무리 후퇴했다 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맏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건 세계적 뉴스거리임에 틀림없다. 젊은 여성이나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 후보를 여성대통령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커다란 오해이다. 그녀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일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가부장의 유산을 상속한 장남일 뿐이다. 가부장제의 상징에게 여성이란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준비되지 않은 박 후보의 말실수

게다가 박 후보는 준비되지 않았다. "산소가스", "이산화가스", "지하경제 활성화", "5점8조", "민혁당" 등 매번 기자회견이나 토론에서 터지는 박 후보의 말실수는 열거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선진국의 여성리더들이 학력이나 전문성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지도자 수업을 받았는지 비교해보라.

선진국에서도 전문직 여성만이 리더로서 성공한 이유는 삼중의 차별을 받는 여성이 남성을 전문성에서 압도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여성후보에겐 다른 나라의 사례처럼 실패가 기다릴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
#박근혜 #맏딸 #여성대통령 #가부장제 #충원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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