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지향의 실체들... 쉽게 볼 수 있다

빨간 옷 입고 다니는데 "빨갱이" 운운... 아직도 구태다

등록 2012.12.16 15:08수정 2012.12.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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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던 시절, 교회의 복음정신 상실을 우려하는 마음으로 정 추기경을 비판하는 글을 여러 번 썼다. 당연히 신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인터넷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정 추기경을 옹호하며 내 글을 반박 또는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조 속에는 증오와 광기가 번득인다는 점이었다. 논리를 갖춘 것 같으면서도 살벌한 저주가 있고, 신앙을 빙자한 욕설들도 많았다.

반면 내 글에 찬동하는 사람들은 품위가 있고 명확한 논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왕왕 저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마구잡이로 내던지는 폭언들 가운데서 애당초 정상적인 토론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사실에서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정진석 추기경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과 심리상태가 저런 정도라면 그 '지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야말로 정 추기경의 약점이요 교회의 불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지층 간의 현격한 성격 차이

바야흐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정권 연장'이 기본 축인 박근혜 후보 측과 '정권 교체'가 기본 축인 문재인 후보 측의 선거전이 매우 치열하다. 어느 쪽의 승리도 장담하거나 예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박빙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양측은 더더욱 사력을 다한다.


그런데 두 후보의 지지세력 간에도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가 노출되곤 한다. 노년층은 대부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젊은 층은 압도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데, 지지 이유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젊은 세대들은 미래지향 세대인데다가 보편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처지여서인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논리들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사리가 명확하다.

반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노년층의 지지 이유들 가운데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버지가 민생고를 해결하고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그 딸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있고, '15년 동안이나 대통령 꿈을 꾸어왔으니 이제 대통령 한 번 해야 한다'는 것도 있고, '여자도 대통령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도 있다. 모두 논리와는 관계없는 이유들이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속에 그런 맹목적인 이유들이 적잖이 존재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고작 저런 정도의 유치하고 허약한 지지 이유들이 다수를 점하는 그 지지율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런 수준의 지지율 자체야말로 박근혜 후보의 약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지지를 확대시키는 것은 그대로 과거지향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과거 지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의 '가치'로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과거의 사고방식과 관습과 행태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과거의 행태들에 대한 집착

다시 말해 과거지향이란 말은 '역사의 후퇴'를 의미한다. 새누리당은 '새'라는 관형사를 사용하는 그 이름과는 달리 인적 구성부터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부터 '유신공주'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유신독재의 상속자이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다수가 친일과 군사독재의 상속자들이다. 또 구태의 재연인 온갖 형태의 정치철새들이 다 모여 있다.

하지만 인적 구성이나 구태의 인물들만을 가지고 과거지향을 논할 수는 없다. 그보다도 더 문제인 것은 그들 집단의 관성 작용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과거지향적인 행태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구태적인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하게 만든다.

방송을 장악하여 대중조작을 꾀하는 것은 독일 나치정권의 선전상 괴벨스 이래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자들의 교과서적인 필수 항목이다. 오늘의 공중파 방송들을 보노라면 이명박 정권이 왜 그토록 방송 장악에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전에 열차를 탈 기회가 있어 천안역과 서울역의 대합실 풍경들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다. TV 수상기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놀랍게도 하나같이 종편방송들에 채널이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채널을 바꿀 수가 있었다. 그렇게 채널이 고정된 채로 종편방송들은 '대선특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박근혜 후보를 돕는 노력들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열차 역 대합실들의 TV 수상기들까지 관장하는 그 집요하고 치밀한 의지는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중조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재 권력의 생리를 알게 모르게 노출시키는 과거지향의 한 가지 실체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 많은 국민들이 투표시간 연장을 갈망했다.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일인시위 풍경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나는 투표시간은 무려 40년 동안이나 유지되어 온 구태다. 그것을 바꾸자는 국민적 요구는 비용이 100억 원이나 든다는 이유를 내세운 박근혜 후보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투표율이 문제임을 알 사람은 다 안다.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게 유리하고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게 유리하다는 사실, 그 '등식'에 얽매인 탓이다. 더 많은 국민들을 투표에 참여시킴으로써 정정당당하게 선택을 받아보자는 웅지를 포기하고, 낮은 투표율에 의존하려는 꼼수를 발휘한 것이다. 그것 역시 과거지향의 실체다.

일에 얽매여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처지를 헤아려 투표 시간을 연장하자는 것조차 거부할 정도로 민생을 도외시하는 사람이 태연히 민생을 말하고 '민생정부'를 내세운다. 희화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것 역시 과거지향의 실체이기는 마찬가지다.

빨간 옷을 입고 빨갱이 타령을 하는 사람들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그래서 소공동체 모임을 함께 하는 천주교 신자 자매님에게서 며칠 전에 들은 얘기다. 자매님이 무슨 일로 어떤 공공장소를 갔는데, 거기에서 새누리당 사람들이 입당원서를 내보이며 입당을 권유하더란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 놀란 자매님이 거부를 하니 붉은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불쑥 이런 말을 하더란다.

"빨갱이 될라구 그러슈?"

자매님은 너무 놀라 정신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새누리당 입당을 거부한다고 빨갱이 소리를 해대는 그 사람들의 정신이 과연 온전한 거냐며 자매님은 기막혀 했다. 그러며 그 자매님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말을 했다.

"그렇게 노상 빨갱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자기들은 왜 그렇게 빨간 옷을 입고 다니는지 몰라."

그것 역시 모순이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빨간색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에는 진부 고루한 색깔론을 탈피하고 진취적으로 인식의 전환을 표면화하자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노상 빨간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색깔론에 물들어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겁박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모순 또한 지독한 과거지향의 실체다.

박근혜 후보의 말과 행동, 새누리당 사람들의 갖가지 행태들에서 과거지향적인 모순들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리 분별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것을 알 수 있다. 온갖 구태에 찌들어 구태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리,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나이 든 사람들보다 분별의 눈이 더욱 정확하다. 내게 있어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희망'이다.

희망의 등불을 들고, 젊은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선거 혁명을 이루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송고했습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과거지향 #미래지향 #새누리당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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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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