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의 첫 대통령 선거!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재일동포들의 첫 대선 그 후, '박정희 시대의 현대사 고통, 기필코 치유하길'

등록 2013.01.01 13:43수정 2013.01.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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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에 참여한 후, 사진을 남긴 재일동포 장호규씨 ⓒ 장호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날은 재일동포들에게 있어 잊지 못할 하루였다. 해방 후 처음으로, 손수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지닌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우리국적을 가졌지만 출생부터 국정참정권이 가로막혀있던 재일동포들. 재일동포들은 2009년 2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졌다. 그런 배경 탓일까.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처음 진행된 재외국민 선거(12월 5-10일)에서 재일동포들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전 세계 단일 공관 중 가장 많은 선거인 등록자(1만3658명)를 기록했고 투표자수도 96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일본에서 재외국민 선거에 임한 재일동포의 수는 2만 5312명에 달했다. 선거 참여의 열기는 고스란히 국내 재일동포들에게 이어졌다.

2012년 12월 19일. 국내에서 체류하는 재일동포들(1만명 내외 추정)은 아침 일찍부터 투표장소로 잰 발걸음을 했다. 궁금했다. 재일동포들의 생에 첫 대통령 선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권자의 입장에서 어떤 고민과 바람이 갖고 있을까. 투표 그 후를 취재했다.

재일동포의 첫 대통령 선거!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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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임한 재일동포 이유임씨, 투표 인증 사진을 남겼다 ⓒ 이유임

지난 2012년 12월 19일 제 18대 대통령 선거 당일, 재일동포 대학생 이유임(24, 대학생)씨는 시험기간의 분주함 속에서도 투표를 잊지 않았다. 대학 시험기간이라 공부에 집중해야 했지만, 투표 생각이 간절했다.

"시험 공부를 하다가 선거 생각이 나서, 투표를 하러 나섰어요. 투표 후에도 선거 상황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궁금함에 TV 선거 생방송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같은 날 아침, 일본 고베 출생의 재일동포 이순남(42)씨도 실시간 속보로 전해지는 투표율을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 순간까지 너무나 긴장을 했어요. 다리가 후들후들 하는 걸 느낄 정도였죠. 집으로 와서 투표율을 확인했는데, (높은 투표율에) 새삼 투표했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문득 단 한번도 투표를 못하고 돌아가신 조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오늘까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하셨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휴일인 대통령 선거 날 늦잠을 잔 재일동포 김겨레(29,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졸업)씨, 그는 피곤함에도 선거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를 잊지 않았다. 오전 11시, 투표소로 향한 겨레씨는 '약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역사인식 뚜렷하다 생각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

이어진 개표 결과는 재일동포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 어떤 후보에 투표했느냐에 따라 미소와 실망으로 표정이 변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재일동포는 웃었고, 반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재일동포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자이니치센쿄'를 운영 중인 김웅기 교수(홍익대 국제경영 일본전공)는 재일동포의 첫 대통령 선거 의의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 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재일동포들의 투표 성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자이니치 센쿄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국국정관련 정보를 일본어로 소개하는 정보공개활동을 표방하고 있다.)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현재 연간 78억원이라는 국가예산을 배정받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이를 지지해 주는 정당을 지지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민단과 무관한 이들은 모국의 손길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선거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이해타산이 아니라 통일이나 민주화와 같은 이념적 측면에서 후보를 선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이름을 알만한 후보에게 고령자들의 지지가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일본 중의원 총선거 결과..... 재일동포가 멘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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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코리안타운 재래시장의 한 풍경,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의 미래는 훈풍일까? ⓒ 장호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12월19일) 사흘 전인 12월 16일, 재일동포들은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결과에 놀란 표정이었다. 일본의 차기 정권이 결정되는 선거에서 자민당이 총480석중 294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제 96대 총리가 아베신조(58)가 된 것도 재일동포들을 낙담케 했다. 이순남씨가 재일동포가 갖는 상실감에 대해 언급했다.

"재외동포의 참정권문제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기 때문입니다. 자민당은 일본 국적으로 귀화를 하지 않은 이상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결코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정은 물론 지방참정권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그들이 참정권과 맞교환을 요구하는 일본'국적'이란 천황폐하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인 일본의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2006년부터 일정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현재 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로인해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지방참정권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2008년 민주당 당대표였던 오자와는 이명박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외국인 참정권부여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그 배경에는 보수적 가치가 뚜렷한 일본 자민당의 반대가 있었다.

1998년 이후, 일본에서 '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법안'은 해마다 상정되고 있지만 자민당의 반대 탓에 법안 처리는 번번히 무산됐다. 2012년 12월 16일 일본 자민당의 중의원 총선거 압승으로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획득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겨레씨는 일본의 자민당 체제가 혹여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더욱 가중시키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이를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과거의 아픔과 함께 살아온 재일동포들에게는 직접적인 상처가 됩니다. 그런 상처를 서슴없이 건드리는 아베 정권을 좋아할 재일동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지방참정권 조차 없는 재일동포들의 슬픈 현실, 재일동포들은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호와 관심을 손길을 내밀어 주길 바라고 있다. 한,일 갈등때면 일본 사회에서 안전마저 위협받는 우리 동포들, 정부는 보듬어 줄 수 있을까?

"한일관계가 갈등에 빠질 때마다 재일동포는 폭력까지 포함하는 직접적 위협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도방문이후, 뉴커머들까지 이제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사회에서 이들역시 조셍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포들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민족차별에 정부가 자국민보호 의지를 보이는 것만, 해도 억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웅기 교수)

재일동포가 본 대선! '지역, 세대갈등 아쉽지만 투표 열기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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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장호규씨의 투표 인증샷, 손에는 거소신고증을 들고 있다 ⓒ 장호규


12월 19일, 대한민국은 제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를 선출했다. 출생지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결과(16일)에 낙담했던 재일동포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순남씨는 지역갈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전히 심각한 지역갈등을 봤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거 하루 전날에는 <26년>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TV뉴스에 나온 광주사태를 어렴풋이 기억해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광주의 투표 결과를 보니,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을 봗았습니다."

재일동포 김겨레씨 역시 대한민국 사회의 세대 갈등, 지역 감정에 대해 지적했다.

"세대갈등과 지역감정의 존재를 바라보면서 역사적 혹은 사회적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최선인가를 공유하기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무엇은 옳지 않은가 정도는 공유되었으면 좋겠네요. 세대와 지역에 따라 이렇게 갈등의 양상이 빚어지는 걸 보면서 솔직히 안타까웠습니다."

대학생 유임씨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낸 4년간의 대한민국 생활보다 나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재일동포들에게, 일본에 사는 동포들에게 인상이 좋았던 대통령을 생각하며 뽑았습니다. 결과를 보며 아쉬움과 불안이 동시에 들었습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기자가 취재한 재일동포들 대다수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갈등과 지역감정'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이었다. 반면 '투표참여열기와 SNS투표독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재일동포 장호규(35.회사원)씨가 말했다.

"저는 이번이 3번째 선거 참여였어요. 한 초등학교에서 10시에 투표를 했는데, 1시간이나 기다려서 투표해야 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어요. 투표를 끝내자마자 스키장에 갔는데 도로며, 스키장이 휑하니 비어있더라고요."

재일동포 김겨레씨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SNS를 이용한 투표 독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한 긴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선거당일 SNS에서 선거 현장의 수많은 이야기가 올라왔죠. 선거 관리인들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 선거를 독려하는 이야기 등이 수시로 나왔어요. 마치 축구 경기를 보고 응원하듯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표정이나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결과가 궁금하고 개표 방송에서 눈을 뗄 수 없었네요." 

재일동포 이유임씨는 대한민국 사회의 '투표 참여열기가 놀랍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는 출생지인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일본과 달리 뜨거운 젊은 층의 투표 열기, 그리고 젊은 세대를 상회하는 고령층의 높은 투표율은 유임씨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도 투표가 있었지만, 한국과는 투표율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략)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고령층에 비하여 높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으로 선거 투표율을 보며 정말 놀랐습니다."

재일동포가 바란다 '박정희 시대의 현대사 고통, 기필코 치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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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바라보는 재일동포의 시선은 다양했다. 첫 여성대통령 탄생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재일동포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함께 존재했다. 과거사 청산 문제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재일동포 이순남씨는 현대사의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근혜 당선인은 첫 여성대통령으로서 큰 기대를 품는 한편 박정희시대의 민주주의 탄압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대사의 고통을 십자가처럼 짊어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짊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필코 치유해야 하기도 하고요."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지원을 부탁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겨레씨는 "이념이나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를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과 우리말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유임씨는 "새 대통령이 해외동포도 국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남,북 간 관계와 동포간 관련성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다가오는 2015년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해. 재일동포들에게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한일 협정의 당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 그의 딸이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이 되어 한일협정 50주년의 국정을 맡게 된 사실은, 문득 '역사가 수레바퀴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반 세기, 50년이란 긴 세월동안 우리 정부는 재일동포, 나아가 재외국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쳐왔는가. 한번쯤 톺아볼 일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재일동포의 외침은 50년 전과 같이, 지금 여전히 뜨거웠다. 한 재일동포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과연 새로운 방향 제시를 할 것인가, 특히 첫 여성대통령으로서 아베 자민당정권과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를 비롯한 한일간의 역사적 갈등에 대해' 어떤 담판을 벌일 것인가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지방참정권 문제는 물론, 민족교육, 연금문제, 전후보상문제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문제제기와 항의를 바랍니다."
#재외국민 선거 #재일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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