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인력시장은 끝났지만 갈 수가 없다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의 고단한 새벽 풍경..."식구들 보기 미안해서"

등록 2013.01.09 17:58수정 2013.0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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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남구로역 2번 출구의 인력시장. ⓒ 김혜승


영하의 칼바람이 매서운 이른 새벽시간 컴컴하고, 후미진 골목을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새벽 4시 영하 13도가 넘는 지난주 혹한의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 일용직 노동자 300~400여 명이 하루 벌이 일감을 찾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공사현장으로 갈  다인승 차량들이 조건에 맞는 인력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오전 6시 오늘의 인력시장은 이미 끝이 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건설 현장 근로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닥불을 피우며 처진 어깨를 녹인다.

"지난주 그리고 이번주 내내 일을 못했습니다."

김길석(52)씨는 목이 멘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갈 수가 없단다. 그러는 사이 형틀 목수 일을 한다고 하는 분이 나서 "요즘은 싼 몸값으로 나서는 중국 조선족들 때문에 일자리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거든다. 수많은 중국 조선족이 일용직 시장까지 뛰어들면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국내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인력은 넘쳐나는데 일감은 줄고, 인건비는 내려가고

"적어도 하루 평균 12만~13만 원은 받아야 중개수수료 떼고 생활비 보태는데 중국조선족들이 공사판 일당을 8만 원까지 낮추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인력시장에서 만난 조춘원씨(60)가 언성을 높였다. 실질적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국내 일용직 노동자들의 박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인력시장 회복에 대한 전망은 이곳에서도 희망적이지 않았다. 3년째 무료 커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송아무개(48)씨는 "겨울철을 감안하더라도 인력 시장에 모인 사람들 규모가 작년 이맘때 절반 수준 정도다. 나와도 일이 없어 아예 포기하고 안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일 것"이라고 전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당 하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구로역 근처에 있는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조선족이 인력시장에 들어오면서 스스로 몸값을 낮췄고, 인력을 찾는 건설사 등이 싼 임금 노동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특히 건설 성수기인 추석 이전까진 많은 노동력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선족 없이 한국인만으로 현장이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찾는 새벽인력시장이 긴 경기 불황과 한파로 꽁꽁 얼어 붙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건설업의 침체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도 인력시장 회복은 쉽지 않다는 신호다. 내일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근로자의 뒷모습이 무겁다.
#인력시장 #건설인력시장 #서민 일자리 #일용직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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