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걸으멍 제주여행' 오름의 신비를 담다

1박 2일 제주 여행기

등록 2013.01.10 21:44수정 2013.01.1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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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떠나는 제주여행의 또다른 맛은 먹고 놀고 잠자기가 편하다는 점이다. ⓒ 심명남


새해를 맞아 여행을 떠났다. 한달 전부터 준비한 1박2일 제주여행. 벌써 그날(6일)이 왔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고흥 녹동항에 도착했다. 녹동항에서 제주까지는 배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여수에서 약 한 시간 20여 분을 달려 녹동회타운에 도착했다. 횟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경매가 벌어지는 수산시장은 중매인들의 활력이 살아있어 좋다. 이날 눈에 띄는 경매가 있다. 문어가 17kg에 31만4000원에 낙찰되었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질문에 중매인은 "요즘 날씨가 추워 고기가 나지 않아 수산물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며 낙찰 받은 문어를 싣고 황급히 사라졌다. 동료들은 배에서 먹을 싱싱한 활어를 회로 떴다. 한마리에 약 1.5kg쯤 나가는 참돔 다섯 마리를 10만 원에 계산했다. 인심 좋은 바닷가 아낙네는 "옜소"하며 덤으로 우럭 한 마리를 더 회로 떠준다. 고흥 인심에 감격이다.

제주여행의 별미, 횟감에 소주 한잔 걸치니 제주 도착 

배를 탔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여객선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8000톤에 1100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여객선 남해 고속훼리호가 드디어 경적을 울리며 항구를 떠난다. 배가 뜨자마자 일행은 준비해간 음식을 폈다. 회에다 술잔이 오가니 여행의 맛은 배가 된다. 이게 바로 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낭만 플러스 쫄깃쫄깃한 참돔 육질에 술이 술술 넘어간다. 1박2일 잠시 가정과 일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그리고 내일은 제주의 정기를 담아 와야 한다. 여행을 떠나면서 세웠던 나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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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장군석으로 불리는 외돌개 너머로 희미하게 범섬이 보인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제주를 강점한 몽고인 목호의 난을 토벌할 때 외돌개 앞바다에 위치한 범섬은 목호들의 최후 항쟁지였다. ⓒ 심명남


순풍이 불어 4시간 만에 배는 제주에 도착했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제주 올레길 7코스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가 장관이다. 이름하여 외돌개. 바다위에 외로이 서 있는 외돌개는 그 높이가 20m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분출하여 굳어진 기암이다. 외돌개는 일명 장군석으로 불린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제주를 강점한 몽고인 목호의 난을 토벌할 때 외돌개 앞바다에 위치한 범섬은 목호들의 최후 항쟁지였단다. 최영 장군은 속임수로 이 외돌개를 장군으로 치장시키자 이에 놀란 목호들이 대장군이 진을 친 것으로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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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중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대장금 촬영지에서 주인공 장금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심명남


올레길 7코스의 시작인 이곳은 중국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발 디딜 틈이 없다. 한참을 걸으니 대장금 촬영지에 도착한다. 이곳 역시 중국인들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중국말을 하는 젊은 처자들이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이 앞에서 사진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대장금의 인기였을까? 제주는 중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단다. 향후 중국인을 겨냥한 치밀한 마케팅을 구사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 올레 7코스의 재미... 놀멍 걸으멍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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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7코스에서 한 제주 여성이 등짐을 지고 올레길을 걷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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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포구 앞에서 한 어부가 낚시로 잡아온 고기를 중매인에게 넘기고 있다. ⓒ 심명남


놀멍 걸으멍. 놀면서 걷는다는 제주인의 방언이다. 섬사람들은 도시인들에게 없는 또 한가지를 간직하고 살아간다. 바로 '마음의 섬'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살다 보니 마음속 한구석에 외로움의 섬이 생겼단다. 올레길을 걸으면 작으나마 원주민들의 삶이 느껴진다. 외돌개에서 돔베낭길을 지나 법환포구에 들렸다. 이후 강정포구를 지나 굿당 산책로에 당도했다. 올레길를 따라 약 4시간 정도를 걸으니 그 유명한 구럼비의 마을 강정이 눈앞이다. 제주에 처음 와본 이들도 이곳이 강정마을이라는 것을 쉽게 직감케한다.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바다 위에 떠있는 기중기들이 온통 바다를 가득 메웠다. 공사공화국이라 불리는 MB정부. 제주에서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한눈에 실감케 한다. 고요함은 평화를 부르지만 요란함은 오히려 평화를 해친다고 했다. 제주는 분명 신이 내린 섬이다. 해군기지 건설로 하늘이 준 천혜의 자연이 파괴되는 이 곳. 제주의 자식을 점지해 주고 제주인을 지켜준다는 삼신할망이 울고 갈 일이다. 노을이 진다. 바다위에 떠있는 기중기 너머로 해가 저문다. 어느덧 제주에서 하룻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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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포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바다위에 떠있는 기중기 너머로 하루 해가 넘어간다 ⓒ 심명남


날이 저물자 숙소가 있는 중문으로 이동했다. 저녁식사는 제주의 별미 흑돼지다. 유난스레 주인아저씨의 입담이 건 식당이다. 5겹살 흑돼지를 굽는 주인장에게 고기가 안타게 잘 구워달라고 말했더니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도 작업지시를 하냐고 핀잔이다. 제주 가서 음식점에서 투정 부리다가는 쫓겨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구수한 입담마냥 주인장의 인심도 후하다. 제주의 술 한라산과 흑돼지 5겹살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부러울 게 없다. 역시 여행의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재미다.

한라산에서 담은 오름의 신비로운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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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탐방로에서 바라 본 운무에 가린 제주 오름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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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가려진 오름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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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가 완전 벗겨진 눈꽃핀 오름의 자태가 장관이다. ⓒ 심명남


중문단지에서 1박을 보낸 후 이튿날을 맞이했다. 오전 5시가 되자 부지런한 일행분들이 단잠을 깨운다. 전날 지인을 만나 밤늦게까지 마셨던 술이 깨지 않아 정신이 몽롱하다.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영실로 이동했다. 눈이 많이 쌓여있는 관계로 영실휴게소까지는 걸어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간 코스는 영실 탐방로를 거쳐 윗세오름 대피소를 찍고 어리목 탐방로를 밟았다. 원래 어리목 탐방로가 아닌 돈내코 탐방로를 걸어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으나 산지기로부터 눈이 많이 쌓여 걷기 힘들 것이라는 안내를 받아 코스를 변경했다.

돌, 바람, 여자는 제주의 대표 아이콘이다. 화산섬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분포되어 있다. 오름은 이름에서 풍기듯 동네 뒷동산 같은 느낌을 준다. 한라산을 오르내리면 수많은 오름을 볼 수 있다. 이중 돌에 얽힌 전설이다. 쭈뼛쭈뼛 솟은 '영실기암'은 빼어난 형세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오백장군의 전설은 구슬프다. 설문대할망에겐 500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에게 죽을 먹이기 위해 큰 가마솥에 죽을 끊이다가 설문대할망은 그만 실수로 솥에 빠져 죽고 만다. 외출 후 돌아온 아들들은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다. 마지막에 귀가한 막내가 어머니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이후 죽을 뜨다가 뼈다귀를 발견한다.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형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 하여 그 길로 차귀도에서 바위가 되고 만다. 또한 나머지 499명의 형제는 한라산으로 올라가 돌이 되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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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오름에 도착하기 직전 눈덮인 약수터에서 동료가 약수물을 뜨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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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 너머로 햇볕이 비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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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한라산 나무가지로 눈꽃이 활짝 피었다. ⓒ 심명남


병풍바위 전망대에 다다르자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 너머로 오름을 둘러싸고 휘감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눈꽃이 핀 오름의 모습에 순간 일행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를 놓칠세라 셔터를 연발하며 그 광경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 여행중 얻은 값진 보물이다. 비록 백록담을 오르진 못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산행의 재미는 더했다. 온 산을 뒤덮은 한라산의 눈꽃, 시시각각 변하는 오름의 우아한 자태에 한라산의 정기가 느껴졌다. 제주도에 다녀온 지 며칠 밖에 안지났지만 벌써 그립다. 왜 그렇까? 내 마음에도 또다른 섬이 생긴걸까. 문득 잘 아는 지인의 시가 떠오른다.

"나눔의 큰 동산에서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이다."
"그가 내 손을 꼬오옥 잡아 주시니 아름다운 새벽이 밝아 오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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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윗세오름에 도착해 동료들과 함께 한껏 ⓒ 심명남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라산 #제주올레길 #제주여행 #윗세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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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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