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지, 왜 또 이걸!"... '복댕이'가 나왔습니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 나의 마지막 가정 출산기

등록 2013.02.10 20:29수정 2013.02.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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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동, 정가람 부부가 함께 쓰는 육아일기입니다. 다섯 살 까꿍이와 세 살 산들이, 그리고 갓 태어난 복댕이가 그 주인공으로서 다섯 식구가 어떻게 복작거리며 살아가는지 소소한 일상을 담을 것입니다. 또한 육아와 관련된 상황들을 이 시대의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인식하고 대처하는지 기록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많은 부모들과 좀 더 나은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기는 까꿍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날 끝날 듯 싶습니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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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남매 니들이 키워라, 막내! ⓒ 정가람


오늘은 설날. 재작년 이날만 해도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를 하고 새벽같이 시댁에서 일어나 시어머님과 함께 만두를 빚었는데 올해는 세수도 않고 안방에 누워 늦잠을 자며 뒹굴거리고 있다. 며느리인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정엄마께서도 부러워하신다.

시댁으로 친정으로 오가는 수고로움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날 갓난쟁이와 단 둘이 안방에 누워있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어른들 말씀처럼 그래도 명절은 식구들 다같이 모여 북적거리는 게 제 맛이다 싶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 이 고요하고 나른한 '나 홀로 명절'에 귀에 걸린 입은 내려올 줄 모른다.

처음도 아닌데, 두 번도 아닌 세 번째인데 이상하게 겁이 나고 떨리고 두렵기까지 했다. 처음엔 뭔지 모르니 그야말로 무식한 용감함으로 덤볐고, 그 다음은 두 번째는 쉽다는 말에 별다른 긴장 없이 덤볐는데, 세 번째가 되니 두 번의 경험으로 이도 저도 다 잘 알기에 9개월 동안 문득문득 마음이 살얼음판이 되었다가 콩알만 해지기를 반복했다.

대망의 그날이 다가오자 이는 더욱 심해졌고 평소엔 잘 안하던 기도가 절로 반복재생 되었다. 2월이 되고 그날이 점점 다가옴을 느꼈다. 자는 것도 걷는 것도 뭐든 다 불편해지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잦아졌다. 이번에도 무사히 잘 할 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데…, 뭔지 모를 불안함에 자신감은 뚝뚝 떨어져만 간다.

예정일을 며칠 앞둔 일주일 전, 나부터 시작해 첫째 둘째가 이틀 간격으로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힘든 날들을 보내던 주말, 아무래도 거사를 앞둔 마지막 일요일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식구들 모두 영양보충을 제대로 하자 작정을 하고 토요일 밤 맛집을 찾았다. 그때 아뿔싸! 신호가 시작되었다.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아뿔싸! 신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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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계단 걷기 조금이라도 진행을 빨리 시키려는 야밤의 노력 ⓒ 이희동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잠든 한밤중. 5분 주기로 아파오는 배를 뒤로 하고 거실에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곁에 없어야 신음소리라도 편히 낼 수 있기에. 진통 속에 두어 시간 선잠을 자다 깬 새벽, 남편을 깨워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진통의 강도가 그렇게 세진 않았지만 주기는 5분. 경산모이기에 언제 진진통이 걸릴지 몰라 남편은 새벽이었지만 조산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두 아이 모두 받아준 조산사는 짐을 챙겨 곧바로 집으로 오기로 했다.

새벽 6시경 조산사가 집으로 도착했고, 내진 결과 자궁문은 2cm 열려 있지만 아직 자궁 경부가 부드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빠르면 오전 중에, 늦어도 저녁 전엔 '복댕이'가 세상에 나올 거라 알려주었다. 이미 4시간 정도 진통을 한 상황인데, 최소 6시간이 더 남았다는 말에 힘이 쭈욱 빠졌다. 그래도 셋째인데 9시간 진통을 하고 나온 둘째보다는 빨리 나오겠지 했는데, 20시간 진통을 한 첫째만큼 갈 수도 있다니! 셋째는 30분 만에도 나온다는 행운은 내겐 없는 건가….

아이들에게 동생이 세상에 나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 가정출산을 선택했는데 둘째 낳을 때 진통하는 엄마 곁에서 한 시간 넘게 울어댄 첫째를 생각하니 애들 잘 때 빨리 복댕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과 어서 이 진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에 외투를 입고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서는 나를 따라 남편이 나온다. 마지막 출산이니 계단을 함께 걸어주려나 보다 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 뒤에서 들리는 사진기 소리. 찰칵찰칵 사진기만 눌러대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세 번째 임신이라고 뭐가 먹고 싶다는 것도, 손발이 부어 힘들다는 말도 은근슬쩍 못들은 척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던 남편이었다. 아, 바랄 걸 바라야지.

1층부터 9층까지 계단 걷기를 몇 번 했지만 진통 주기는 좀처럼 짧아지지 않고 계속 5분. 소파에 머리를 박고 진통을 견디는데 남편은 공부방에서 뭘 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전엔 와서 허리도 쓰다듬어 주고 손도 잡아주고 하더니 마지막 출산이라 생생하게 남겨야 한다며 노트북에 내장된 캠코더 시범 작동 중이라 바쁘단다. 아, 나는 누구의 아이를 낳기 위해 이다지도 진통 중에 있는가!

30분 만에 나온다는 셋째... 내게 그런 행운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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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숨죽여서 ⓒ 이희동


겨울엔 9시까지도 늦잠을 자는 아이들이 8시가 못 되어 일어났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그러나 내진 결과, 아직도 자궁문은 3cm밖에 열리지 않았고 자궁경부도 출산하기엔 딱딱한 상태이다. 자궁경부가 얇고 부드러워져야 진진통이 걸린다 하는데, 복댕이는 나와 달리 급할 게 없나보다. 하긴 누나와 형이 장악한 집에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크겠는가. 반신욕을 하면 진행도 빨리 되고 진통도 덜해진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욕조에서 한 시간가량 배를 쓰다듬었지만, 여전히 자궁문은 3cm에서 더 열리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여전히 5분 주기인 진통을 견뎠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만화영화와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과자가 줄줄이 나오자 신이 났다. 오전 11시가 넘으면서 진통의 강도가 세지고 진통 간격도 4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안 열리던 자궁문이 드디어 8cm까지 열리고, 조산사는 경산모이니 지금부터 힘 주기에 들어가자 했다.

안방에서 혼자 진통이 오면 힘 주기에 들어갔다. 진통과 함께 열까지 세며 있는 힘 다해 힘을 주기 시작하자 떠오르는 지난 두 번의 산고의 고통들. 아, 내가 왜 잊었던가, 그 고통들을! 내가 왜 이 고통을 또 자처해서 겪고 있는가, 내가, 왜, 왜!

바보 같은 내가 서러워 몰래 화장실에서 울기까지 했다. 딸 아들, 둘 낳았으면 됐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이러고 있나 하며…. 안간힘을 쓰며 참아내던 고통이 극에 달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만화와 과자가 있어도 안방에서 혼자 복댕이 낳을 준비 중인 엄마가 걱정이 되어 수시로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겁먹은 얼굴로 문간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아이들이 더 놀라지 않게 참자 다짐을 하지만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마지막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남편은 최대한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난 조산사의 손을 잡고, 내 골반에 진입해 360도 회전을 하며 산도를 통과해 내려오는 복댕이를 돕는 힘주기를 계속 했다. 곧 머리가 보일 테니 이젠 아빠가 들어와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조산사의 부름. 몇 번만 더 힘을 주면 이 고통이 끝난다는 걸 알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심신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등 뒤에 앉아 나를 받치고 있는 남편 목을 잡고 다리를 최대한 벌려 힘을 주면 아기가 내려오기 쉬운데, 팔을 뻗어 남편의 목도 잡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며 못하겠다, 그만하자, 병원 가 수술하자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남편은 틈만 나면 이랬던 나를 놀려댄다).

약한 엄마와 달리 복댕이는 씩씩하게 쑤욱 내려와 까만 머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출산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아무리 아파도 몸 뒤틀지 말고 조산사의 말을 잘 듣고 태아가 혼자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심호흡 크게 하며 긴장해야 하는데 나의 고통은 절정에 달했고, 한 번만 더 힘을 주면 되는데 또 쉬어버렸다.

둘째 때도 머리 보이는 찰나에 쉬어 머리에 자국이 열흘 넘게 남았었는데. 자꾸 이러면 회음부가 찢어져 고생한다는 조산사의 말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복댕이 힘드니 정신 차리란 얘기는 흘려들어놓곤 이러면 출산 후 내가 고생할 거란 얘기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힘을 짜냈고, 쑤욱 하고 복댕이가 태어났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순간... '쑤욱' 복댕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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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덩이 그야말로 갓 태어난 신생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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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 현장 마지막 고통, 태반을 꺼내는 순간 ⓒ 이희동


엄마 다리 사이에서 나온 동생을 정면에서 보고 서 있던 두 아이들은 다행히 울지 않았다. 진통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잘 참던 큰아이가 갓 태어나 엄마 배 위에 엎드려 누워 꼬물거리는 동생을 보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누나가 울먹이자 둘째도 울려 한다.

급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갖고 놀아라 했더니, 스마트폰을 받아든 첫째는 거실로 쌩하고 나가버린다. 그래도 둘째는 계속 엄마 곁에서 동생과 엄마를 번갈아 본다. 아직 태맥이 뛰는 탯줄과 작고 어린 복댕이를 쓰다듬으며 울기 직전인 둘째 아이를 보듬으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꼭 마지막이어야 하는 가정출산을 무사히 끝마쳤다.

임신기간 동안, 진통하는 동안 내도록 나를 나약하게 했던 많은 걱정과 달리 아기도 나도 건강했다. 남편은 자궁문이 완전히 열리고 2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복댕이가 태어났다 했지만, 내겐 20시간, 아니 200시간 같았던 출산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게 산고의 고통이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 소리 질러 놓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조산사 선생님과 남편,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첫째 조산원 출산, 둘째 가정출산 이후 셋째 출산을 앞두고 남편부터 시작해 많은 이들이 이번에도 집에서 낳을 거냐 물었다. 어른들은 마지막이고 하니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하고 조리원에 들어가 산후조리도 야무지게 하라고 조언을 하셨지만, 마지막이기에 더더욱 가정출산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막달검사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조산원에서도 가정출산이 가능하겠다는 진료 결과를 주었다. 물론 몇 번은 병원에서 무통주사 맞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아이 낳고 조리원에서 편하게 산후조리 하고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출산이 다가올수록 내가 제일 마음도 몸도 편한 건 가정출산에 내 집에서의 산후조리였다.

앞서 두 번의 출산기에서 썼듯 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을 하고 싶었다. 일명 출산 3종 세트인 회음부 절개, 관장, 제모를 하지 않고, 환자복을 입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진통을 하다 자궁문이 다 열려서야 분만실로 들어가 의사들이 정해주는 자세로 아이를 낳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간호사들이 처치실로 데리고 가버리는 그런 일반적인 분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모든 병원분만이 이런 건 아니다. 가족분만실에서 자연출산에 가까운 출산을 하는 병원도 점점 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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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등장 내가 먹던 엄마 젖인데... ⓒ 이희동

집 가까운 병원이라 해도 갓 태어난 핏덩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걱정이고, 38개월, 20개월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나 조산원으로 오가는 것도 힘들 일이었다. 가까운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가뜩이나 동생의 출현으로 엄마를 나눠야 한다는 불안함이 큰 아이들에게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동생을 안고 등장하는 충격을 주고 싶진 않았다.

혹자들은 엄마가 고통 속에 동생을 출산하는 걸 보여주는 게 더 큰 충격으로 오래 남을 것이라 걱정을 하지만 경험을 미뤄보면 곁에서 출산하는 엄마를 두 번씩이나 본 큰아이는 동생에게 샘도 부리지 않고 출산 후 몸조리 하는 엄마를 아주 잘 이해해준다. 아직도 수유 중인 둘째도 누나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따라해 크게 떼 부리지 않고 동생과 엄마 젖을 나눠 먹고 있다. 

애가 셋이면 애 셋 모두 맑음인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어느 엄마의 말이 내 앞날을 걱정해주지만 낳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둘째 출산 후엔 엄마로서의 뿌듯함이 거의 없었는데, 셋까지 낳고 나니 어쩌면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들에게 다복한 형제애, 동기애만큼 큰 유산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출산 후 마땅히 드려야 하는 감사의 기도도 셋째를 낳고 나서야 낮고 겸허한 마음에서 진심을 다해 우러나왔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진 않겠지. 지금의 다짐과 감사를 까맣게 잊고 소리 질러가며 히스테리 가득한 엄마가 되는 날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롱이다롱이 각기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각기 다른 삶의 지혜를 배우고 쌓아가면서 더 큰 부모가, 더 넓고 싶은 내가 되어갈 것이다.

육아에 밀려 사라져버린 내 꿈에 서러운 날도 있겠지만 길어야 몇 년 육아에 전념하며 아이들을 키워내다 보면 잠시 쉬고 있는 내 꿈도 아이들과 함께 영글어 가리라 믿어본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육아와 살림, 일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번갈아 세 아이 키우는 일상을 이곳에 기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출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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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월, 남동생만 둘 고단한 누나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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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셋째 등장 이후 훌쩍 커버린 둘째 ⓒ 정가람


#가정출산 #육아 #자연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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