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깡패 코끼리' 국정원을 어이할까

[주장] 국가안보와 시민인권의 갈림길에 선 국가정보기관

등록 2013.02.15 11:09수정 2013.02.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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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원에 취직한 모든 직원은 ('7급 공무원'뿐 아니라!) 원장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하도록 되어 있다.

"본인은 국가안전 보장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준수·복종하며, 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직원도 분명 이런 선서를 하고 근무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의 유머> <뽐뿌> 같은 곳에서 수십개 아이디를 동원하여 댓글을 달거니 지우거니 하며 야권을 비판한 것이 국가안전 보장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제대로 준수·복종한 것인지, 창의와 성실을 발휘하여 맡은 바 책무를 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의 해명처럼 공식 업무를 수행했던 거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간엔 '한국판 워터게이트'라느니, 대선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느니, 하는 엄청난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정원, 국가안보와 시민인권의 갈림길에서

말이 나온 김에 정보기관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본적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군대가 없는 평화국가 코스타리카에도 보안기관이 있고 심지어 바티칸의 정부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성에서도 정보수집 활동을 할 정도이니 정보기관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그 질문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다만 이 글에서는 이른바 '정상적' 민주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존립과 운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번 사건이 지닌 문제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두 가지 전제를 해두자. 하나, 정보기관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대중의 이면을 파악하려 한다. 즉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그 구성원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높은 일을 한다. 모순적 존재이자, 목적과 수단이 정반대가 되기 쉬운 기관인 것이다.

둘, 국외 정보와 국내 보안정보 간의 업무 구분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지구화 상황, 냉전 종식, 북한 출신 이주자들의 도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등으로 국내외 상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지 않은가. 국내 보안정보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보기관이 대외지향적이냐 대내지향적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후자일수록 권위주의적 체제의 특성이기 쉽고, 그럴수록 정보기관의 주업무가 사회 각계각층의 침투와 시민의 인권침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정원 상층부에 개혁적 마인드를 지닌 인사들이 진출했고, 과거사 규명과 같은 일을 하기도 했으나 최근의 대내지향적 행보를 보면 국정원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게 든다. 이렇게 되면 정보기관이 시민들의 자유를 실제로 침해하느냐 여부를 떠나 이른바 '냉장효과'가 발생하여 언론·사상·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삐 풀려 날뛰는 깡패 코끼리'를 제어하는 방법

정보기관이 정익(政益)을 위한 정책친화적 정보에 치중하는지, 국익(國益)을 위한 정책중립적 정보에 집중하는지 하는 문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 점에서도 MB정권의 국정원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국정원장 자리부터 대통령의 수족을 앉힌 데다 시민운동가나 학자를 고소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보위에 나서지 않았던가.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방식에 대한 질문도 해야 한다. 입법부, 사법부, 법집행기관 등이 정보기관을 견제하는 것을 수평적 통제라 한다. 그러나 이번에 경찰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수평적 통제는커녕 경찰 스스로가 정치의 충견 노릇을 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수직적 통제는 정보기관의 지도부가 하향식으로 직원들을 감독하는 것인데, 이번엔 국정원 스스로가 문제의 직원을 옹호하고 나섰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시민사회와 언론이 상향식으로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영향력이 큰 보수언론들이 대선정국에서 국정원을 제대로 감시했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의 아버지를 인터뷰해서 야당을 비판하는 무기로 삼기도 하지 않았던가? 요컨대, 이번 사건은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가 모든 차원에서 실종된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되레 언론인을 고소하는 국정원을 보고 있자니 "고삐 풀려 날뛰는 깡패 코끼리"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는 1975년 카스트로 암살미수 사건 청문회를 주관했던 프랭크 처치 미 상원위원이 CIA를 질타하면서 쓴 말이다.

정보기관 공직자라면 더욱 철저한 윤리의식을

끝으로, 정보기관 공직자들의 직업윤리 문제가 있다.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직원윤리헌장'을 제정해놓았다. 높은 수준의 전문직 행동규범을 규정해놓은 강령일 거라고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다.

① 정의와 진리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 ② 먼저 알고 앞서 대비하여 국가의 안전을 확고히 보위 ③ 양질의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여 국익증진에 기여 ④ 개인의 명예를 잃는 것이 전체의 명예를 잃는 것 ⑤ 동료애로 화합하고 평생직원으로서의 긍지를 소중히 간직 ⑥ 보안을 생명으로 알고 직무상 기밀은 끝까지 준수

이런 내용은 정보기관 종사자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기본직무이자, 목표완수와 조직보위를 강조한 가치관에 불과하다. 결과에 관계없이 추구해야 할 동기론적 윤리관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것들을 '윤리'라고 내세울 정도이니 국정원의 의식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① 정도가 윤리헌장에 가까운 내용일 텐데, '정의와 진리'라니 이 역시 모호하고 생뚱맞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받들겠다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민의 안전 및 인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 정도는 피력해야 국가기관의 윤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의식구조와 민주적 통제 결여라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정권의 민주적 통제 의지, 조직문화의 철저한 혁신, 시민사회 및 언론의 수직적 비판과 감시가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우리는 민주체제라는 조련사에 복종하는 영민한 돌고래 같은 국정원을 원한다. 고삐 풀린 깡패 코끼리? 독재시절이 그립다고 고백하지 않는 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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