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렌즈 든 사람들, 아주~ 저기 바글바글하다"

강서 습지생태공원서 만난 귀한 손님 '검은죽지솔개'

등록 2013.02.16 12:59수정 2013.02.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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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습지생태공원의 조류 관찰대 ⓒ 김어진


새로운 새를 본다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신 나는 일이다. 더더욱 그 새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미기록종이라고 하면 말이다. 최근 한국에 미기록종이나 보기 드문 철새의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고 있다. 북·남미에 서식한다는 BuffleHead (쇠오리), 풀밭종다리, 95년만의 기록이라는 수염수리 등 이 귀한 녀석들이 나타났다고 난리다.

그중에서도 주로 동남아와 인도에 분포한다는 'black winged kite', 한국어로는 검은죽지솔개라는 멋진 녀석도 이번에 한국에 찾아왔다. 새의 이름은 처음으로 관찰한 사람이 지어주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 편의상 임시로 이렇게 부른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검은죽지솔개의 사진을 보고 사진 배경이 강서습지생태공원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거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 다른 미기록종 새들은 너무 멀리 있어서 못 가지만, 여긴 내가 유일하게 가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겠지만,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가보기로 했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강서습지생태공원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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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러기와 오리들이 서울의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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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winged kite 강서습지생태공원에 나타난 Black winged kite가 정지비행을 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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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빙 돌며 먹이를 찾고 있는 털발말똥가리 ⓒ 김어진


지난 9일(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서 강서 습지생태공원에 도착했다. 도착 전부터 진이 다 빠졌지만, 오늘 녀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설렌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갈대와 버드나무를 보니 또다시 기대감이 차오르면서 힘이 솟는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나무 위, 풀숲, 나뭇가지, 하늘 등을 샅샅이 살펴본다. 안 보인다. 사실 그렇게 귀한 새를 찾을 때는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새를 찾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람을 찾는 것이다. 잘 보시라.

"여기 혹시 커~~다란 대포렌즈 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 보셨어요?"

길 가는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즉각 대답이 온다.

"아우~ 저기 아주 바글바글하다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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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대포부대 사진사들의 새를 찍을 때 쓰는 장비다. 이 장비들로 찍으면 사진이 얼마나 멋지게 나올지 궁금하다. ⓒ 김어진


요즘 한국에 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귀한 새가 나타났다고 하면 어김없이 달려가서 사진을 찍는다. 새 사진을 찍는 사람들답게 장비도 입이 떡 벌어지게 큰 대포렌즈들을 들고 다니니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새를 찾으려면 먼저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그 전에 우선 나는 다른 새들부터 먼저 탐조했다. 혼자 서울까지 와서 여유 있게 새들을 보니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이 상쾌하고 딱 좋다. 아, 오늘은 영하 20도란다. 생태공원이라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새들이 사람을 별로 안 무서워하는 편이다. 말똥가리 한 마리가 나무에 앉아 멀뚱멀뚱 주변을 응시할 뿐 가까이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새를 찾으려면 먼저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빠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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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가서도 날아가지 않는 말똥가리.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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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마리가 갈대 위에 앉아 있다. ⓒ 김어진


이곳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깔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과 갈대로 엮은 울타리와 조류관찰대 같은 시설물이 잘 조성되어 있다. 풀숲에는 먹이사슬 아래층에 있는 쥐들이, 강변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기러기와 오리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생태공원 중 제일 생태가 살아있는 공원이다.

아, 찾았다. 저기 사람들이 있다. 과연 사진사들도 보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어른 분들인데 이 자리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대학생들인가?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가서 검은죽지솔개가 여기 있느냐고 물어보니 방금 막 날아갔다고 한다.

'여기가 주 포인트라고 하니, 여기서 꼼짝 않고 기다리면 오늘 중으로 보는 일이 있겠지.'

마음 같아서야 검은죽지솔개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싶지만, 서로 흩어져서 새를 쫓아 찍는 것보다 한 곳에 이렇게 모여서 새를 찍는 것이 새를 덜 괴롭힌다고 생각해서 나도 이 자리에서만 검은죽지솔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해진 사진사들은 눈앞에 보이는 새들을 찍는다. 대체 저런 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얼마나 좋게 나올까 궁금하다. 말똥가리, 큰말똥가리, 털발말똥가리 세 종류의 맹금류들이 서로 어울려 빙빙 돌며 날아다니는데 그 주변으로는 언제나 까치들이 달라붙어 맹금류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능도 좀 높겠다. 까치 녀석들은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재미를 위해서 자신보다 덩치가 큰 맹금류들을 괴롭히는 것 같다. 반면에 많은 사람이 애타게 보고 싶어하는 검은죽지솔개한테는 황조롱이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크기도 비슷하고, 먹이도 같고, 습성도 비슷한데 이 땅에서 꾸준히 살아온 황조롱이가 낯선 이방인은 반가워할 리가 없다. 황조롱이와 검은죽지솔개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데 나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멍하니 찬 바람만 맞으며 새를 기다리다가 하필이면 그때. 옆에 있던 사진사와 얘기하는 중에 갑자기 검은죽지솔개가 나타났다. "아…!" 얘기만 나누지 않았어도 더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는데.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사진사의 카메라에서 '타다다다' 엄청난 속도의 셔터 소리가 났고, 녀석은 사람들이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정지비행을 하며 먹이를 탐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말 딱 몇 초 봤다. 바로 까치에게 쫓겨서 멀리멀리 날아간다.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그런데 뒤에 있던 한 분은 이렇게 말하곤 가셨다.

"원래 한 번 봤으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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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 낯선 이방인인 Black winged kite 를 가만두지 않는다. ⓒ 김어진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사진에 미련이 남아서 오후 4시 30분까지 이곳에서 녀석을 기다렸지만, 또 보지는 못했다. 녀석을 본 시간보다 찬바람만 맞은 시간이 더 많았지만, 녀석을 한 번이라도 본 게 어디냐.

열대 지방에서나 살던 새들이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번식이 확인되는 소식이나 이렇게 미기록종들이 한꺼번에 많이 발견되는 소식들은 많은 사진사의 마음을 들뜨게 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만큼 기후에 이미 많은 변화가 왔다는 뜻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자연환경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많이 발견되는 미기록종들이 어쩌면 이미 기후변화가 많이 진행된 것을 나타나내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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