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서 제동 걸린 교과부장관 '교과서 수정명령'

대법원 "장관이 검정제도 훼손하거나 잠탈하지 못하도록 한 것"

등록 2013.02.16 18:40수정 2013.02.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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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난 2008년 금성출판사가 발행한 고등학교 <한국 근ㆍ현대사> 역사교과서에 대해 교과부에 설치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수정명령을 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대법원은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고 "교과부장관이 수정명령의 형식으로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이를 잠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부여해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교과부 검정 거쳤는데 '좌편향 교과서'?

사건은 약 10년 전인 2004년 10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들이 고등학교 2~3학년 심화선택 과목 교과서인 금성출판사가 발행한 <한국 근ㆍ현대사>(대표저자 김한종)에 대해 좌파적 편향성이 심각하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 교과서는 2002년 7월 교과부로로부터 검정 합격을 받았다. 

이후 보수학자들 중심으로 결성된 '교과서포럼', 통일부, 국방부 등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이 교과서에 관한 수정요구사항을 제출했다. 이에 논의와 심의를 거친 교과부는 2008년 10월 한국검정교과서를 통해 금성출판사를 포함한 고등학교 근ㆍ현대사 교과서 발행사들에 대해 55항목에 대한 수정권고를 했다.

이에 <한국 근ㆍ현대사>의 대표저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은 금성출판사를 통해 "수정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을 나눠, 상당수 항목에 관해 수정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교과부는 금성출판사에 38곳을 수정할 것을 명했고, 이에 금성출판사는 저자들의 동의 없이 교과부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과부는 이 과정에서 교과부 내에 설치된 교과용도서심의회가 있음에도, 별도로 교과부 1차관이 선정한 12명의 위원으로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수정요구안 검토를 의뢰했다.


당시 학계를 대표하는 수십 개의 역사연구단체들이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는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결국 김한종 교수 등 저자들은 2009년 2월 "교과부장관의 역사교과서 수정지시 처분은 교과서검인정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위헌ㆍ위법한 처분이자 정권의 의도에 따라 학생들의 역사관을 획일화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처분"이라며 교과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이들은 "교과부는 수정대상 부분이 헌법정신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거나, 학습내용이 고등학교 학생 수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이 사유가 있어 수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교과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이 사건은 이미 검정을 거친 교과서에 대해 교과부가 아무런 제한 없이 수정명령을 행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1심 "교과부 처분은 위법하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이진만 부장판사)는 2010년 9월 김한종 교수 등 <한국 근ㆍ현대사> 저자들이 교과부장관을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교과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저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객관적으로 명백한 잘못이나, 학설상황의 변경에 따른 수정명령도 아니고, 오히려 피고가 2002년에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합격결정을 한 교과서에 대해 일부 내용이 검정기준에 어긋남을 이유로 수정할 것을 명하는 것으로서, 피고 자신이 한 검정처분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수정명령을 하려면 관계법령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과서 검정은 교과부에 설치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이 사건 처분은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 없이 행해진 것으로서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교과부의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

그러자 교과부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김창석 부장판사)는 2011년 8월 "교과부의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판단해 1심 판결을 뒤집고, 교과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가 처분을 하기에 앞서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이 협의회에 수정요구안 검토를 의뢰해 검토하도록 한 후 수정권고안을 제출받아 처분한 것으로 정당한 검토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교과부장관, 교과용도서심의회 절차 안 거친 것 잘못"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5일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한국 근ㆍ현대사> 저자들이 교과부장관의 교과서 수정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교과부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은 먼저 이 사건 처분을 통한 수정명령의 대상이나 범위에 명백한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 등을 바로 잡는 것을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포함돼 있는지를 따져 보고, 그러한 것이 있으면 피고가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심리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수정명령의 요건과 절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날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판결은,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되는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검정제도의 취지 등을 근거로, 교과부장관이 교과서에 대해 수정명령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검정절차상의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함으로써, 교과부장관이 수정명령의 형식으로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이를 잠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교조 "이명박 정부 내내 계속돼 온 교과서 수정 행위가 부당함을 지적한 것"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 판결은 저자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판결임과 동시에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판결"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또한 이명박 정부 내내 계속돼 온 교과서 수정 행위가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며, 앞으로 국가권력의 힘과 교과부장관의 주관적인 역사관으로 교육내용을 흔들지 말라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로,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는 행위가 부당함을 확인한 만큼, 지난 1월21일 교과부장관의 교과서 수정 명령권한 및 감수권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교과부 #수정명령 #김한종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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