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갉아먹을 추억, 호주에서 구해왔습니다

[버스킹 여행기⑦] 호주에서의 마지막 이야기

등록 2013.02.18 16:16수정 2013.02.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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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버스킹 ⓒ 강동호


"버스킹(거리 공연) 언제 다시 해보겠냐? 진짜 끝이다, 끝."

1월 9일, 그러니까 호주를 떠나기 이틀 전 멜번 알버트 공원에서 한 번 더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 공연이 우리 버스커스(BUSKERS) 팀의 마지막 호주 공연이었다. 사실, 하루 더 공연할 시간이 있었지만 사정이 있는 친구 두 명이 하루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많은 감정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마지막 거리 공연도 끝났다.


이후 우리는 호주를 떠날 때까지 버스킹을 하느라 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캥거루도 몇 마리 봤고, 겨울 해변에서 파도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또, 유명한 기념품도 몇 개 구입했고 아름다운 포도밭과 함께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와이너리 투어(Winery tour)도 다녀왔다. 그동안 비싸서 먹지 못했던 호주산 스테이크도 원 없이 먹었으며 아름다운 공원에서 트레킹도 했다. 내가 이렇게 나머지 자유여행을 짧게 적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호주 구경 못할 거면 왜 여기까지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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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만나는 여름 바다 ⓒ 고상훈


사실 테마별 세계교육기행을 신청할 때 테마는 '길거리 공연'을 적어넣었지만, 공연 이외에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자유여행에 더 눈길이 갔던 게 사실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호주가 아니었던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가 있는 그곳 말이다. '버스킹' 여행이 아닌 버스킹 '여행'을 바랐던 것이다. 신청서에는 우리나라 음악을 알리고 싶다고, 문화로 소통하고 싶다고, 맛있어 보이게 포장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포장된 내용보다 너무 예쁜 포장지에 눈이 갔던 게 사실.

하지만, 이게 웬걸. 막상 포장을 뜯어보니 포장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막상 나누는 대화는 오늘 공연이 어땠네, 내일 공연을 뭘 하자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다. 매일 밤 이어지는 회의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끌어 모을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루 일정은 버스킹으로 시작했고 버스킹으로 끝났다. 어떤 친구는 "이렇게 호주 구경도 못할 거면 왜 여기까지 와서 버스킹 하냐? 서울에도 외국인 많을 텐데"라며 농담 섞인 불평을 할 정도였다. 

"내가 12월 31일,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던 것은 길거리 공연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다. 오페라 하우스는 어떻게 생겼으며, 하버 브릿지는 얼마나 멋있는지. 12월이 여름인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호주의 스테이크는 얼마나 맛있을지가 더 궁금했다. 혹은 화장실 변기의 물은 정말 반시계 방향으로 내려가는지 말이다! 정확히 11일이 흘렀고 나는 지금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천천히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일기를 읽어보는데 이건 뭐 죄다 우리 버스킹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 1월 12일 일기 중


호주 구경 제대로 못했지만, 웃음꽃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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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KERS ⓒ 고상훈


그렇게 우리는 모두 버스킹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나누고 있었고 많은 추억과 행복을 얻어가고 있었다. 호주에서, 아니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이었을지 모를 버스킹이있지만 마음 속에 남아 우리를 넉넉하게 해줄 추억과 기억은 '시작'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것, 언제나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지점이다.

지금도 일기장을 열어 보거나 사진들을 훑어볼 때면 '쿡쿡' 하고 웃음이 난다. 임용고시를 위해 1년 동안 힘들게 공부해야 할 우리가 1년 동안 갉아먹을 만한 추억임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 중인 버스커스(BUSKERS) 친구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얼마 전, 호주에 있는 토니가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안부 인사와 함께 토니의 카메라에 담긴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그 중 호주에서 바다 건너 온 사진 한 장.

사진 속 우리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하다. 버스커스(BUSKERS)와 함께한 버스킹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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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호주. ⓒ Tony Varcoe


덧붙이는 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버스킹 #길거리 공연 #사물놀이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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