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육체성과 금기의 섹스를 다룬 19금 소설

[서평] E. L. 제임스가 쓴 <50가지 그림자> 1~3부

등록 2013.02.18 17:33수정 2013.02.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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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제임스가 쓴 <50가지 그림자> 1부 1권 겉 표지 ⓒ 이윤기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지난 가을 한겨레신문 매거진 esc에 나온 기사 덕분입니다. 기사는 '사랑의 육체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 5선 중 하나로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제리, 더블판타지, O이야기와 함께 이 책을 소개하였더군요.

이들 책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제리'입니다. 1년쯤 전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내는 현직 법조인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독후감을 읽고, 흥미가 생겨 읽었던 책이 바로 '제리'인데요. 호스트바를 전전하는 젊은 청춘들과 그들의 피폐한 일상과 적나라하게 묘사한 젊은이들의 섹스 장면을 읽으며 문화적 충격을 좀 받았지요.


그래서 제리와 함께 한겨레 기사에 나온 소설 5선을 모두 시립 도서관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신문 기사에 열풍을 일으키는 책이라더니 도서관에서도 대출을 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가까운 동네 시립도서관에서는 화제의 이 책을 대출하기가 어려워 좀 멀리 떨어진 시립도서관에 대출 예약 신청을 하였습니다.

19세 판매 금지, 19세 대출 금지 소설

대출 예약 신청을 하고 1주일 쯤 지났을 때, 도서관에서 예약한 책을 대출해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컴퓨터로 검색한 대출기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서가에 들어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책이 없더군요.

혹시 실수로 대출기호를 잘못 적었나 싶어 다시 컴퓨터로 검색을 해봤지만 틀림이 없었습니다. 다시 서가로 가서 대출기호를 살피면서 책을 훑어 봤지만 그 책은 없더군요. 도서관에서 보내준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입구에 있는 사서분에게 갔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대출 예약 신청 했던 책을 빌리러 왔는데 아무리 서가를 둘러봐도 빌리려는 책이 없다고 이야기 했더니 무슨 책을 빌리러 왔냐고 묻더군요. 제가 그 책 빌리러 왔다고 말했더니 창구에서 일하는 젊은 사서가 컴퓨터에 책제목을 검색하려고 키보드에 책제목을 입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뒤쪽 자리에 있던 나이든 사서분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 책은 '청소년 대출금지 도서'라서 서가에 없다고 하면서 책상 뒤편에 있는 캐비닛을 열어서 책을 꺼내 줬습니다. 대출증을 확인하고 책을 건네주면서 한 마디 하시더군요.

"요즘 청소년들이 아무리 인터넷으로 야동도 많이 보고 한다지만, 이런 책을 서가에 꽂아놓고 청소년들이 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헉, 참 보기 드문 19금 소설을 읽게 된 겁니다. 이 책은 1부, 2부, 3부가 각 두 권씩으로 되어 있는데, 3군데의 각각 다른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2부를 빌려 읽었던 두 번째 시립도서관에서는 정말로 '19세 미만 대출 금지'라고 라벨을 붙여 놓았더군요.

책을 빌려줄 때마도 대출증을 꼭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다른 도서관에서도 19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책을 빌려주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19금 도서를 대출해서 읽어보는 것은 난생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다지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탓인지 웬만하면 책을 사서 읽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성인 잡지가 아닌 소설책이 '19금 도서'로 묶인 것도 처음봤습니다. 이 책이 서점에서도 19금으로 판매금지인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잡지도 아닌 소설인데 출판할 때 사전 검열이나 허가를 받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판매금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시립도서관 사서분들이 자의적으로 '19금 도서'로 선정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임의로 '금서'로 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돈을 주고 사서 두고 읽을 만한 책인지 알 수 없어 어렵게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도입부는 도대체 왜 이 책을 19금으로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포르노나 성인잡지처럼 시작부터 벌거벗은 남녀가 등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염한 밀어, 독특한 섹스 취향

그러나 1부 1권의 도입부를 지나 주인공 남녀의 첫 번째 섹스 장면부터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하면서 또한 적나라한 섹스 장면 묘사와 주인공 남녀의 농염한 대화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후배에게 우연히 이 책을 이야기를 꺼냈더니, 정색을 하며 '그런 책 절대 읽지 마라'고까지 하더군요. 그땐 이미 2부까지 다 읽었을 때였는데….

한편, 연애와 섹스를 하면서 주고받는 대화, 독자들에게만 들려주는 주인공 남녀의 속마음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였습니다. 주인공 여자가 남자 주인공과 주고받는 대화의 대부분은 겉과 다른 속마음 대화가 따라다닙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농염하고 세밀한 섹스 장면 때문이 아니라 이런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남녀의 대화와 속마음을 읽다보면 정말 여러 차례 화성남자, 금성여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똑같은 사건이나 장면에서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생각하는지…. 정말 두 남녀는 수없이 많이 말로 다투고 상처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물론 다소 폭력적이고 매우 비현실적이며 일반적이지 않은 주인공 남자의 섹스 기호와 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의 도발적인 섹스가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라는 특별한 섹스 용어로 설명되는 익숙하지 않은 섹스 장면, 채찍, 수갑을 비롯한 특별한 도구들의 사용.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도구들로 가득한 오락실(?) 그리고 정말 수 없이 많은 섹스 장면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2부 2권쯤을 읽기 시작했을 땐 슬슬 섹스 장면이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속담이 생각나더군요. 그리스 조각처럼 잘생긴 젊은 남자와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섹스 장면이지만 조금씩 지루해지더군요. 독자의 지루함을 예견하였는지 작가는 온갖 색다른 섹스 장면을 묘사하지만 점점 흥미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변태라고 하겠지만... 그들은 사랑(?)이라는데

물론 처음엔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섹스에 대한 기호가 다를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변태적'이라고 생각하는 온갖 다양한 시도가 놀라웠지만 그 마저도 반복되니 지겹더군요. 2부 1, 2권을 읽을 무렵에는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섹스 장면을 대충 훑고 지나가도 전혀 아쉽지 않더군요.

어쩌면 모두 3부로 된 이 책이 1부 1권, 2권만 많이 팔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10군데 정도 되는 시립도서관을 검색해보았더니 1부만 구비해놓고 2부, 3부는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2부, 3부를 찾거나 비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만 매권 400쪽이 넘는 소설 책 6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스토리와 홍미 그리고 약간의 스릴러는 담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약쟁이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재벌이 된 주인공 남자의 출생과 입양 과정에 얽힌 비밀과 주인공 남녀를 노리는 숨어있는 범죄자가 누구인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파란만장한 남녀의 사랑과 그 사랑을 이어주는 섹스 장면이 등장하지만 태생적으로 정말 다른 두 남녀가 수없이 다투고 화해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여러 사건들을 겪어가면서 점점 더 평범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 온 두 남녀, 남들과 많이 다른 특별한 섹스 기호를 가졌던 남자 주인공과 청순가련하며 순결하기까지 했던 여자 주인공이 만나서 서로 다른 섹스 퍼즐을 맞춰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놀랍고 기겁할 만한 주인공 남녀의 섹스 취향을 보면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말은 너무도 평범하게 엄청난 부자인 주인공 남녀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것으로 끝이 나더군요.

감동이나 교훈이 있는 책은 아닙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부자인 남자주인공이 재력을 이용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가지 불법을 저지르고도 멀쩡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약간 짜증스럽기도 하였지만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바로 <50가지 그림자>입니다. 1부는 1, 2권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2부 1, 2권은 <50가지 그림자, 심연>, 3부 1, 2권은 <50가지 그림자, 해방> 이렇게 모두 6권으로 된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시공사, 2012


#50가지 그림자 #그레이 #소설 #심연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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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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