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 떨다 꺼내든 '천원'... 마음까지 든든해지네

[불혹 배낭여행기 20] 하롱베이 용선 투어, 즐거웠지만...

등록 2013.02.22 12:07수정 2013.03.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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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끼엠 호수가 피워내는 물안개가 이채로운 도시 베트남의 하노이. ⓒ 홍성식


남부 사이공(호찌민)에서 출발한 베트남 기차여행. 종단열차의 북부 종착역인 하노이에 내렸을 때는 새벽이었다. 2011년 봄. 태평양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일본을 뒤덮은 지진으로 세계가 시끄러웠다. 그 영향이 기상이변을 부른 것일까? 하노이 날씨가 한국의 늦가을처럼 추웠다. 현지인들도 "이런 날씨는 전례가 없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당시 가진 옷이라곤 반팔 티셔츠 3개와 반바지 하나가 전부. 시장으로 가서 할머니가 직접 실로 뜬 점퍼를 15달러(약 1만6000원)에 샀다. 그걸 껴입고, 긴 바지를 사 입었는데도 춥다. 하노이에 이르기 전 여행했던 나라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영상 30도 이상의 지역에서만 두 달 넘게 있었으니, 비까지 추적대는 날씨가 더 서늘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목욕탕에 비치된 것과 비슷한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인 노천식당에서 500원짜리 쌀국수 한 그릇을 청해 국물을 마셨다. 떨어진 체온이 돌아오는 훈훈한 느낌. 내처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속이 든든해지니 마음에도 다소간 훈풍이 분다.


맛있는 베트남 음식들,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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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내가 맛본 가장 맛있는 음식. 이름을 모르겠다. 누가 아시는 분 계신지? ⓒ 홍성식


숙소를 잡아두고 산책에 나섰다. 나라가 멸망 위기에 처했을 때 칼이 솟았다는, 국권을 회복한 후에는 거북이가 나타나 돌려받은 칼을 물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떠도는 호안끼엠 호수. 호안끼엠의 한자 표기는 '還劒'(환검)이다. 칼을 돌려준다는 뜻. 많은 사람들이 느린 걸음으로 호수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인근 카페에서 베트남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개인적 견해를 말하자면, 베트남 음식은 인근 국가인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음식에 비해 조금 더 맛있다.

바게트의 가운데를 갈라 각종 채소와 소시지, 햄 등을 넣어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베트남 샌드위치는 가격 대비 풍미가 그만이고, 한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도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일품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가격이 너무 싸다. 샌드위치는 500~1000원. 쌀국수 역시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잘 된 식당에서도 3000원 이상을 받지 않는다.


그게 후에(Hue)에서였는지, 사이공에서인지 모르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베트남식 요리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거리를 걷다가 숯불에 굽는 양념한 돼지고기 냄새에 멈춰 섰다. 그 냄새를 따라 가니 대나무로 울타리를 친 소박한 식당이 나타났다. 주인도 종업원도 영어를 거의 못한다.

그러나, 무슨 걱정. 손가락으로 잘 익어가는 고기를 가리키며 "저것 먹고 싶어(I Want that)"라고 했다. 구운 돼지고기와 다양한 허브, 몇 가지 양념 종지. 거기에 라이스페이퍼(쌀종이?)까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지? 의문을 해결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여종업원.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 펼치고, 그 위에 고기와 허브를 놓은 후 몇 종류의 양념을 뿌린다. 그리고, 재빠르게 도르르 말아 접시 위에 놓아준다. 보기엔 어렵지 않은데 직접 해보니 잘 안 된다. 쌀종이가 찢어지거나, 고기나 채소의 양이 많아 예쁘게 말리지가 않는다. 그게 뭐가 우스운지 깔깔거리던 종업원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내 옆에서 라이스페이퍼를 말아줬다. 고마웠다. 가격 4달러(약 4500원). 맛도 맛이지만 양이 많아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하롱베이로 가자, 용이 여의주를 떨어뜨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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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롱베이. 기암과 괴석이 수없이 늘어선 풍경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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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대략 이런 풍경이다. ⓒ 서영진 제공


하노이까지 갔으니, 하롱베이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던 용이 추락하는 바람에 만들어졌다는 기암과 괴석. 동양화처럼 펼쳐지는 드라마틱하고 멋들어진 바다 풍광.

용을 본떠 만들었다는 '드래곤 보트'를 타고, 하루나 이틀을 바다 위에서 먹고 자는 여행객 대상 관광상품이 많았다. 그중 하나를 예약했다. 5번의 식사와 음료수 제공, 하룻밤 배 안에 마련된 싱글룸에서 숙박. 숙소에서 하롱베이까지 픽업을 모두 포함 60달러.    

이튿날, 꼬박 35시간을 함께 보낼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동행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호주에서 온 가족 4명(부모와 아들 둘), 미국에 산다는 인도인 부부, 나이 지긋한 헝가리 노부부, 스위스에서 온 커플, 그리고…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세련된 폴란드 아가씨가 자그마치 4명. 동행이 없는 내게는 더없이 멋진 구성이다.

세상의 모든 형상을 빚어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섬 사이를 가르며, 천천히 큰바다로 나가는 배 위에 올라 유유자적하는 하루. 게다가 폴란드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까지 가득하니 이럴 때 낮술 한 잔 안하고 언제 하겠는가.

차가운 백포도주(베트남 고원지대에서 생산된 '달랏 와인'은 유럽에서도 유명하단다)와 먹으면 목구멍을 싸하게 울리는 알코올 도수 40%의 하노이 보드카를 번갈아가며 마셨다. 물론, 폴란드 아가씨들에게도 권했다.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술을 꽤 마신다. 러시아, 몽골 사람들도 그랬다. 폴란드도 겨울 기온이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이 많은 혹한의 국가.

삼성 핸드폰과 디지털카메라 가진 폴란드인들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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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수족관에서 본 재밌는 모습을 가진 물고기. 크기가 엄청났다. ⓒ 서영진 제공


저녁을 먹고, 2층 갑판에 각국 사람들이 모여 앉으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호주에 사는 아저씨는 집 안에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있단다. 스위스에서 온 서른 한 살 사내는 6개의 언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거기에 제 나라말까지.

인도인 부부는 채식주의자라 배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단다. 그랬다. 그 부부는 해산물과 육류 위주로 대여섯 가지 요리가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 내내 감자튀김만 먹었다. 그것도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것이냐?"를 수차례 물어보며.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산다는 퇴직한 수학 교사는 "한국 시인 중에 김춘수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쓴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흥미를 보이며 묻는다. "어떤 내용인데? 슬픈 거야?" 놀란 표정의 퇴직교사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나이든 그의 아내가 조용히 웃었다.

폴란드 아가씨들은 한국 아니, 삼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랬다. 낮에 봤더니 그 친구들 중 둘이 삼성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고, 두 사람은 삼성 로고가 선명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삼성이 한국 기업이지?"
"응."
"우리 집 TV도 삼성이고, 내 노트북 컴퓨터도 삼성이야."
"그래?"
"삼성 제품 정말 좋아. 고장도 안 나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중엔 외국에서 삼성이나 LG 혹은, 현대의 광고판을 보면 뿌듯함과 자긍심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다. 너는 어떠냐고?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자랑스럽거나, 으쓱해지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결국은 그 광고판도 '잉여가치의 극대화'라는 자본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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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사진은 저장한 노트북이 고장남으로써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같은 코스를 여행하고 느낌 좋은 사진을 제공해준 서영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서영진 제공


너희 나라 정부는 왜 가만 있는데?

만약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자신의 삶을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바친 이태석 신부의 얼굴과 지향할만한 행적이 기록된 광고판이 있다면, 그건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지. 같은 한국사람이니까. 이러한 평소 마음이 반영된 것일까. 폴란드 아가씨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삼성… 좋지. 하지만, 한국엔 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 세계적 규모의 기업이면서도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다하지 않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경영권을 옮기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탈세를 편법적으로 저지르고, 게다가 식당업과 제과업에까지 문어발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하거든…." 

내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온 것은 의외로 스위스 사내에게서였다. 그가 감정 섞이지 않은 건조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이 부끄럽고, 아팠다.

"그런데, 왜 너희 정부는 삼성을 가만두는데?"  
#베트남 #삼성 #폴란드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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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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