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권력문제가 술자리 폭력 만든다

[평등한 대학 만들기①] 대학 내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

등록 2013.03.06 17:01수정 2013.03.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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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3월 7일 오후 2시 30분]

새내기의 계절인 3월이 왔다. 수능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이들에게 대학은 세상과의 첫 만남 그 자체일터. 하지만 괴담처럼 전해지는 대학 내 전설들로 이내 등골이 오싹해진다. 신입생 환영회 때 지나친 음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부터 성추행을 부추기는 게임을 강제로 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누구나 이러한 '대학 내 전통'이 지나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대학에 적응해야 하는 신입생이라면 이를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기자단(이하 한여전기자단)'은 지난 한 달간 최근 3년동안 보도 된 대학 내 사건사고 기사들을 조사하여 대학 문화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 문제를 분석하였다. - 기자 말

대학 내에 존재하는 권력 불평등 문제

2008년에 모대학 경호학과에서는 체력단련을 마친 신입생이 뇌사상태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피해자의 몸에 생긴 심각한 구타 흔적으로 보아 체력단련이라는 명목 하에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학과 측에서는 내부관행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선배라는 이름의 폭력은 강제적인 술자리와도 연관된다. '사발식'(대학가에서 새내기를 맞이할 때 행하는 음주 형태. 보통 사발 같은 큰 그릇에 술을 가득 담아 한 번에 마신다), '후배는 한잔, 선배는 반잔'처럼 후배들은 선배들이 주는 술을 강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C대학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개인적인 이유로 술을 거부하는 순간 분위기 깬다고 욕을 들었다"며 "이제는 동기들도 서로에게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는 분위기라서 뒤풀이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신입생이 만취한 상태로 건물에서 추락사하거나, 선배들의 술 강요를 못 이겨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계속 되는 이유이다.

성폭력에 무뎌진 대학생들

이러한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성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대학 성희롱사건의 가해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응답자 78%가 선배를 지목했다.  

2011년 한 대학 새터에서는 성관계를 묘사하는 행위를 신입생에게 강제로 요구했던 사진이 유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해당 학과측에서는 옛날부터 해온 행사이며,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그 게임을 해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후배들과는 다른 반응이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술자리와 모임에는 대학 내 권력문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강제적인 신체접촉과 언어적·정신적 성희롱을 당하고, 이를 똑같이 다른 이에게도 가해야 하는 술자리 문화는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제기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술자리 성추행을 진지한 문제로 여기지 않을 만큼 대학생들은 성폭력에 무뎌지고 있다.

폭력이 반복되는 이유

새터를 비롯해 대학 내 폭력은 왜 반복되고 있을까. 먼저 후배나 신입생은 학과 내 분위기에 저항하기 힘들다. 권력 하위에 있는 이들에겐 선배·교수의 말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또한 '전통'이라는 명목은 사회에 갓 나온 신입생들의 불만을 입막음하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이를 대물림함으로써 피해자를 가해자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한여전기자단이 조사한 2013년 서울지역 40여개 대학들의 새터 프로그램에는 선배가 후배의 군기를 잡는 행위가 학과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 대학 내 폭력이 발생했을 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다시 마주쳐야 하며 오히려 피해자가 학과에서 외면 받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피해자 중에는 심적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관두거나 휴학하는 학생들도 있는 실정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교내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했으나 상담소에서 가해자에게 연락을 취해 사건이 해결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의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법원의 판결도 각양각색이다. 2011년에는 새터에서 과도하게 술을 마신 뒤 숙소에서 추락사한 피해자의 부모가 학교와 인솔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하지만 법원은 새터 주최자는 학교가 아닌 학과 학생회라며 이를 기각했다. 반면 MT 장소에서 술에 취한 학생이 계단에서 굴러 중상을 입은 사건에서는 "교수들은 학생들이 술을 마실 것을 알면서도 과음을 말리거나 사고 예방을 위한 주의를 지시하지 않았다"며 학교 측에 책임을 물었다. 이처럼 판사에 따라 다른 판결은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엄격하게 처벌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대학이 후배에게 '폭력'을 전수하는 장이 된다는 사실은 참 모순이다. 선후배간 화합을 위해서 또는 대학 고유의 전통을 잇는다는 명분하에 수많은 피해자와 심지어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현실. 이를 더 이상 '대학 문화'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대학 내 폭력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 기자단(김소영, 김소현, 박윤서, 황나리)이 기획하고 황나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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