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와 정치는 상관 없다? 천만에!

후퇴하고 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 수준, 걱정된다

등록 2013.03.12 13:57수정 2013.03.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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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깜둥이들도 들락거리나?"


흑백차별이 여전하던 미국 남부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관의 지원을 받아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 단체를 방문한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인이라고 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이다. 하긴 국가인권위원장이 '깜둥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용어를 공공연하게 쓰고도 버젓이 연임하는 세상이니.

이런 세상에서 이주노동자는 정치에 눈감고 살아야 할까? 정치 건달의 언어 수준을 보면서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와 정치 문제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와 정치는 아무 상관 없을까

이주노동자는 국내 체류 중에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출입국관리법 제17조 2항은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한 후에, 3항에서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정치활동을 하였을 때에는 그 외국인에게 서면으로 그 활동의 중지명령이나 그 밖에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무부장관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추방' 명령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의 정치 활동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출입국법은 외국인이 국내에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정치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속내를 살펴보면 정치와 아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 할 것 없이, 정권이 바뀌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앞에서 언급한 일과 같은 일은 다반사로 생기고, 외국인력 정책이 바뀌고, 출입국 정책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주노동자들이나 이주인권단체들은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들 외에도 관련 부서 장관들이 갖고 있는 면면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하여 가장 밀접한 부서로는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장관일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력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라는 면에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법무부는 출입국 행정과 이주노동자 체류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임명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간 언론에 거의 회자되지 않던 인물이긴 하지만, 외국인력 정책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를 해 왔던 노동연구원에서 고용과 복지 부분을 주로 연구해 왔던 학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고용허가제에 대한 이해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출입국법 18조는 '외국인 고용의 제한'을 19조는 '외국인을 고용한 자 등의 신고 의무'를 다루고 있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의 국내 체류 중 사업장 변경 등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의 열쇠를 법무부가 쥐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법무부 장관에게는 법무부 소관업무 중 하나인 인권 옹호 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법 집행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주적 가치 실현과 미흡한 제도 개선에 역량을 쏟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후퇴하고 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 수준

미국 국무부가 2001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는 각국 인권수준에 등급을 매기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첫 해 최하인 3등급을 받았으나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째 1등급을 유지했다. 그런데 지난달 16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전 세계 인신매매 공급망 실태의 첫 번째 사례로 한국원양어선의 외국인 선원 부당노동 문제를 지목하면서 2등급으로의 강등을 경고했다.

보고서가 인용한 것은 지난 2011년 7월 뉴질랜드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한국 선적의 원양어선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 결과이다. 보고서는 "이들 해외 이주노동자는 혹독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일하면서 낮은 급여를 받거나 아예 급여를 받지 못했다"면서 "심지어 신체적인 학대나 성추행을 당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보고서가 한국의 모든 이주노동자 인권 상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타국인 뉴질랜드 보고서를 기초로 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이 개선되기보다 점차 열악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이번 미 국무부의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는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 국내 이주노동자 인권상황이 '글로벌'과 '다문화'를 외치고 이주민이라는 말이 넘쳐나면서, 정치인들에게 표가 안 되는 '이주노동자'는 혐오대상이 되었고, 무시하고 배제해도 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하루 속히 인권감수성을 회복하라는 경고 신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깜둥이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지원단체 #인권감수성 #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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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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